행정수도, 메가시티... '충청의 꿈' 미세먼지에 발목 잡힐라

정민승 2023. 2. 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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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계절에 충청권 연일 '매우나쁨'
서울 경기보다 더 나빠 '전국 최악' 오명
초미세먼지는 물론 전구물질 배출 최다
충청 4개 시도 "공동대응" 효과 미지수
'수도권보다 좋을 줄 알았던 대전 세종 충청 공기의 배신...' 7일 오전 미세먼지에 뒤덮인 세종시내 풍경. 8일에도 세종시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서울, 경기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독자 제공

지난해 서울에서 세종으로 이사한 오모(40)씨는 최근 연일 ‘놀라운’ 날을 마주하고 있다. ‘수도권을 벗어나 대전, 세종 정도에서 살면 서울보다 더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겠지…’ 생각했지만, 본격적인 미세먼지의 계절이 오면서 그 기대가 깨진 것이다. 오씨는 “수도권 밖인데도 공기 질이 수도권보다 더 나빠 놀랐다”며 “충청 지역이 그 어느 지역보다 성장 잠재력이 큰 것은 분명하지만, 미세먼지 문제와 관련해서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8일 환경부 대기환경정보(에어코리아)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 기준 대전시의 1시간 평균 초미세먼지 농도는 ‘매우 나쁨’ 수준인 ㎥당 100㎍(마이크로그램·100만분의 1g)을 기록했다. 이는 같은 시각 경기(73㎍), 서울(58㎍), 인천(39㎍)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전국에서 가장 공기 나쁜 충청권

중부권미세먼지연구관리센터 관계자는 “미세먼지가 인구·차량 밀도와 상관관계가 있지만, 그보다는 화력발전소와 각종 산업단지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며 “전국 화력발전소 터빈 58기 중 29기가 충청권에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지역의 공기질은 이해 가능한 수치”라고 말했다. 발전터빈 29기는 모두 충남에 있는데 태안과 당진이 각각 10기, 보령 8기, 서천 1기다.

대전뿐만이 아니다. 이날 대전 북쪽에 인접한 세종시의 초미세먼지 농도도 수도권보다 높은 91㎍을 기록했고, 그 동쪽의 충북도도 93㎍을 기록했다. 서풍이 불면 유리한 충남도는 71㎍을 기록했다.

8일 낮 12시 기준 전국 초미세먼지 농도. 네이버 캡처

세종시가 행정수도를 내다보고 있고, 수도권 집중으로 가속하는 지방소멸 위기 상황에서 충청권이 문제해결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인재 유입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삼성전자가 구글 출신의 전문가 하나를 신설 부서 책임자로 채용하려고 했지만, 희뿌연 서울 도심 풍경 때문에 좌절된 게 단적인 예다.

당시 구글 전문가 채용을 추진했던 삼성 임원은 “공기 나쁜 서울에서 어린 자녀들과 살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게 고사 이유였다”고 말했다. 나쁜 공기가 유능한 인재 영입을 막았던 만큼 세종을 중심으로 한 충청권 성장에 필수적인 인재들의 충청행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2021년 12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환경부가 실시한 미세먼지 분석 결과에 따르면, 충청권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는 26.05㎍으로 전국 평균(23.3㎍)을 상회하는 등 전국 최상위권에 속한다.

중국발 32%...나머지는 ‘충청 내부’

충청권 공기 질이 전국 최악에 오른 배경은 복합적이다. 전국 절반의 화력발전소와 함께 소백산맥 등 지형적 영향으로 밖으로 배출이 안 되는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에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국립환경과학원이 중국, 일본과 공동 연구한 한중일 3국의 장거리이동 대기오염물질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내 미세먼지 32%가 중국에서 온다.

대전시 문평대교에서 본 대덕산업단지 풍경. 중국발 초미세먼지가 적지 않지만 더 많은 초미세먼지는 화력발전소와 각종 산업단지에서 배출된다. 사진 속 공장 굴뚝 연기는 수증기다. 정민승 기자

그러나 내부에서 훨씬 더 많이 발생하는 만큼 중국 탓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가미세먼지정보센터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충남에서 배출된 초미세먼지는 1만5,314톤으로 서울(2,732톤)과 인천(2,548톤), 경기(9,880톤)에서 배출된 것보다 많다.

여기에 더해 충청지역, 특히 충남에서 대량 발생하는 전구(前驅)물질도 충청권의 높은 초미세먼지 농도에 기여한다. 전구물질은 각종 산업, 발전, 축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암모니아 등 독립적인 가스상의 물질이지만, 햇빛 등과 반응하면서 초미세먼지로 발전한다.

미세먼지정보센터 관계자는 “서해안의 화력발전소와 서산 화학산업단지를 비롯해서 충남 지역에 집중된 철강산업단지에서 전구물질이 많이 배출된다”며 “이를 감안하면 지역의 실제 초미세먼지량은 더욱 많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2019년 충남에서 배출된 황산화물은 6만2,332톤으로 수도권 3개 시도가 배출한 것보다 3배 이상 많다. 암모니아도 5만3,469톤으로 수도권 3개 시도 배출량보다 많다.

충청권 ‘공동 대응’ 첫걸음마

충청권 지자체들도 문제의식을 갖고 나름 노력을 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표적인 게 나무 심기 사업이다. 충남 천안시는 지난해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나무 1천만 그루 심기에 나섰고, 아산시도 몇 년 전부터 대대적인 나무 심기 사업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효과가 언제 나타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대전녹색환경센터를 중심으로 충청권 4개 시도가 충청권 푸른하늘 포럼 운영 등을 통해 공동 대응에 나선 배경이기도 하다.

국내 최고 수준의 스마트도시인 세종시내를 세종시교통공사 소속의 버스 한 대가 매연을 뿜으며 달리고 있다.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지만, 세종에서는 난폭운전을 일삼고 환경 오염을 유발하는 버스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독자 제공

녹색환경센터 관계자는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 운행 제한을 받는 차량 중에서도 영업용인 경우 제한을 안 받는 곳이 있었다”며 “공동 대응하면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만큼 시도 차원에서 함께할 수 있는 과제 발굴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말했다.

충남도 관계자는 “충청권의 나쁜 대기질 배경에 화력발전소가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오염물질 배출이 적은 신형 발전기로 교체를 요구하되, 충남 지역에 편중된 화력발전 문제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정민승 기자 msj@hankookilbo.com
이준호 기자 junh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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