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法理 따랐다지만 “50억 뇌물 아니다” 판결, 누가 납득하겠나
대장동 비리 사건으로 기소된 곽상도 전 국회의원이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에 대해 1심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화천대유 직원이던 곽 전 의원의 아들이 받은 거액의 퇴직금을 곽 전 의원에 대한 뇌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법원은 증거와 법리로 판결해야 한다.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라고 증거가 없고 법리에 맞지 않는데 죄를 물어선 안 된다. 하지만 이 판결에 대해선 법원이 너무 소극적으로 법리를 적용했다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곽 전 의원의 아들은 화천대유에 6년 정도 근무하고 31세이던 2021년 퇴직금과 성과급 명목으로 50억원(실수령액 25억원)을 받았다. 누가 봐도 과한 액수다. 곽 전 의원은 법조인 시절부터 김만배씨와 알고 지내던 사이였고 국회의원으로서 김씨의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곽 전 의원의 아들이 아니었거나 국회의원이던 그에게 무언가를 바라지 않았다면 50억원을 줬겠는가. 화천대유에 근무하던 일반 직원 중 곽 전 의원 아들 이외에 그런 거액을 받은 사람도 없다.
법원은 그가 받은 금액에 대해 “연령, 경력, 직급과 담당 업무, 성과급 액수의 결정 절차 등에 비추어 볼 때 사회통념상 이례적으로 과다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돈이 곽 전 의원에 대한 대가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권력을 이용해 사업을 도왔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법원은 또 “성인으로 결혼을 해 독립적인 생계를 유지해 온 아들에 대한 법률상 부양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며 아들이 받은 돈을 곽 전 의원이 받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곽 전 의원이 아들을 통한 금품 제공을 요구했다는 증언이 담긴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 내용도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런 논리라면 이해 관계자가 권력자 자녀를 취업시켜 금품을 제공해도 구체적인 청탁이나 알선 행위가 없으면 법으로 단죄할 길이 없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혐의 입증을 위해 증거를 보강해야 한다. 법원도 법리를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적용해 사회 정의에 반하는 판결을 내린 게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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