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윤의 맛 세상] 혼술 열풍 타고 1조 시장으로… ‘와인 한류’ 시대도 열릴까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2023. 2. 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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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즐기는 술’로 음주 트렌드 바뀌면서 와인 시장 폭발적 성장
1990년대 이후 유럽·남미에 밀렸던 국산 와인 부활 계기될지 주목

소주의 상징 두꺼비가 와인병에 뛰어올랐다. 지난해 11월 하이트진로가 대표 브랜드 ‘진로’의 이름을 건 첫 와인 ‘진로 레드와인’을 출시했다. 하이트진로가 이전부터 와인을 수입·유통해왔지만, 직접 개발한 와인은 처음이다. 이 와인병 라벨에 하늘색 두꺼비가 들어갔다. 와인이 소주를 제치고 국민술 자리를 넘본다더니, 두꺼비마저 소주로부터 빼앗으려는 모양이다.

그만큼 와인 시장 성장세가 폭발적이다. 2017년 처음 2억달러를 넘은 와인 수입액은 꾸준히 증가하다가 지난 2021년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며 5억5981달러(약 6782억원)로 전년 대비 69.6% 껑충 뛰었다. 와인 소매시장 매출은 2020년 7347억원을 넘겼고, 지난해는 1조원을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 글로벌 와인 리서치 기관 ‘와인 인텔리전스’가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와인 시장 2위로 꼽은 것도 놀랍지 않다. 코로나 이후로 술의 주요 소비처가 유흥업소에서 집으로 이동했다. 취하려고 마시는 게 아니라, 술 자체를 즐기는 방향으로 음주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와인은 ‘홈술’과 ‘혼술’의 최고 수혜주로 꼽히며 주류(酒類)의 주류(主流)로 부상했다.

/일러스트=이철원

조짐은 몇 년 전부터 보였다. 2020년 논란과 화제를 일으킨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는 거의 매 회 와인이 등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백미(白眉)는 8화에서 주인공 지선우(김희애)의 ‘와인 병나발’ 장면이었다. 남편의 외도로 고통받던 지선우는 마트 와인 코너에서 진열대에 놓인 와인 4병을 쇼핑카트에 쓸어담는다. 그러곤 집으로 돌아와 와인을 병째로 벌컥벌컥 마신다. 예전 같으면 당연히 소주 병나발을 불었을 장면이었다.

한민족의 와인 음용은 의외로 역사가 길다. 전통주 연구자 이대형 경기도농업기술원 농업연구사가 최근 펴낸 ‘술자리보다 재미있는 우리 술 이야기’(시대의창)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기록은 13세기 고려 시대까지 올라간다. ‘고려사’에 충렬왕 11년(1285년) “황제가 왕에게 포도주를 하사했다”고 나온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최초의 유럽 와인은 1653년 일본으로 가다가 폭풍을 만나 제주도에 난파한 네덜란드 선원 하멜이 관련됐다. 그가 쓴 ‘하멜 표류기’에는 배에 싣고 왔던 스페인산 레드와인을 지방관에게 상납했다는 내용이 있다. 유럽 포도나무로 와인 제조를 처음 시도한 건 대한제국 농상공부 소속 원예모범장이었다. 1901년부터 1910년까지 미국·일본·중국·프랑스·이탈리아에서 153개 포도 품종이 도입됐는데, 특히 1910년 프랑스로부터 수입한 리슬링·피노누아·모스카토 등 양조용 포도나무를 재배했다. 1912~1914년에는 68개 품종별 당분과 총산 함량을 분석해 주류 제조업자들과 정보를 공유했다.

와인 제조법은 1504년 편찬된 고조리서 ‘수운잡방’에 처음 나온다. 전통적인 쌀술 제조법에 포도를 넣은, 쌀과 포도가 결합된 혼합주 형태로 요즘 와인과는 다르다. 와인다운 와인은 1970년대부터다. 정부가 식량 부족을 이유로 곡물보다 과일로 만든 술을 장려했다. 1974년 국산 포도로 만든 해태주조 ‘노블와인’이 출시됐다. 1977년에는 동양맥주에 이어 롯데주류가 지금도 생산하고 있는 ‘마주앙’이, 1981년에는 진로에서 ‘샤토 몽블르’를 출시했다. 파라다이스 ‘올림피아’와 대선주조 ‘그랑주아’ ‘앙코르’, 금복주 ‘두리랑’ ‘엘레지앙’ 등이 뒤따랐다. 하지만 1990년대 수입 자유화로 유럽·미국·남미 등에서 수입되는 와인에 밀려 자취를 감추었다.

요즘 한국 와인은 과거 들척지근하면서 향은 부족하다고 혹평받던 ‘달달이 와인’이 아니다. 와인에 대한 이해와 양조기술이 쌓이면서 품질이 월등하게 높아졌다. 몇 년 전부터는 국가 행사에 건배주로, 청와대 만찬주로 선정되고 있다. 이대형 연구사는 “FTA가 체결된 2004년을 기준으로 볼 때 한국 와인은 만들기 시작한 지 채 20년도 되지 않는다”며 “한국 와인은 새로운 출발선에 있다”며 미래를 기대하고 있다.

이번 출시된 진로 레드와인은 가격 대비 맛과 향이 꽤 훌륭하다. 단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최대 와이너리로 꼽힌다는 ‘카를로 펠리그리노’ 와이너리와 공동 개발했다는 점은 아쉽다. 쉽게 말해 이탈리아에서 OEM 방식으로 생산한 와인이다. 한국 땅에서 재배한 포도로 생산한 진정한 한국 와인이었다면, 라벨에 들어앉은 두꺼비가 더 반가웠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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