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버블’의 붕괴…역전세·갭투자 파산·미입주 대란 ‘3각 파도’ 밀려온다
전세 폭락이 초래한 주거 위기
‘전세 버블 붕괴’라고 할 정도로 전셋값이 급락하고 있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연간 아파트 전세가(1월 말 기준)는 전국 6.93%, 서울 9.50%, 경기도 11.01%, 인천 10.48% 하락했다. 서울에서는 송파(-15.25%), 성북(-14,1%), 강남구(-11.18%), 경기도에서는 광명시(-18%), 수원 영통구(-17.34%), 인천에서는 연수구(-16.13%) 등이 10% 이상 폭락했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 낙폭이 매매가(-5.2%)보다 2배 가까이 크다.
개별 단지별로는 2021년 하반기 고점보다 30~60% 하락한 전세도 속출하고 있다. 전세 거품 붕괴는 역전세, 깡통 전세로 인한 보증금 미반환 사고, 신축 아파트 미입주 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세 가격이 고점이었던 2021년에 한 전세 계약이 2년이 지나는 올해 본격적으로 만기가 도래, 역전세 대란이 발생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김진유 경기대 교수는 “전세 사기는 1억~3억원 하는 빌라에 집중됐지만, 전세금 급락에 따른 보증금 미반환 사고는 일반 아파트로 확산돼 ‘중산층 주거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임대차 3법이 만든 전세 버블
전세 가격 폭락은 2020년에 도입된 임대차 3법 부작용과 저금리가 만든 전세 버블이 꺼지는 과정이라는 분석이다. ‘부동산을 공부할 결심’의 저자인 배문성 애널리스트는 “기준금리 인하와 재건축 이주 수요 등으로 전세 가격이 상승하는 시기에 임대료를 통제하는 법이 도입돼 전세 가격이 폭등했다”고 말했다. 전세 계약 기간을 2년에서 ‘2+2′년으로 연장하고 임대료 인상 폭을 5%로 제한하는 ‘임대차 3법’이 2020년 7월 말 도입되자 전세 매물이 급감하면서 전세 가격이 폭등했다. 부동산 정보 업체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2020년 7월 초반 4만3000건에서 임대차법 실시 이후 8300건까지 급감했다.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 상승률은 KB국민은행 조사 기준으로 2020년 6월 0.35%에서 7월 1%, 8월 1.18%, 9월 2.0%로 급등했다. 연간 12.25%의 대폭등 장세를 기록했다. 당시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며 재건축 아파트 2년 실거주 의무 제도 도입, 매물 부족 사태를 극대화했다. 일부 아파트는 전세가가 2배 이상 폭등하기도 했다. 배문성 애널리스트는 “임대차 3법은 장기간 변화가 없던 월세 임대료까지 곧추세운 흑마법이었다”고 분석했다.
◇무갭투자 파산 속출 불가피
비정상적으로 치솟은 전세 가격은 고금리와 입주 물량 급증으로 폭락세로 전환하면서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전세를 끼고 집을 사들이는 갭투자가 급속도로 늘었다. 갭투자 비율은 2017년 서울 아파트 매매의 14%였지만, 2021년 43%까지 급증했다. 정부가 주택 구입 대출은 규제하고 전세 자금 대출을 확대한 정책도 갭투자 증가에 일조했다. 2017년 말 전세 자금 대출 잔액이 48조6000억원에서 2021년에 170조까지 늘어났다. 당시 젊은 층에서도 전세금이 매매가와 같거나 높은 집을 사는 ‘무갭투자’가 크게 유행했다. 무갭투자는 매매가와 전세가 상승을 전제로 한 투자다. 지금처럼 전세가와 매매가 동반 급락하면 파산이 속출할 수 있다.
◇입주 폭탄에 역전세 대란, 미입주 대란
한국부동산원의 ‘공동주택 입주 예정 물량 정보’에 따르면 2023년~2024년 2년간 입주 물량이 79만6000가구로 직전 2년 입주 물량(63만3000가구)에 비해 26% 늘어난다. 특히 올해 입주 물량은 44만3000가구로 전년도(33만7044가구)보다 31.4% 증가한다. 집값 상승을 주도했던 서울 강남권도 입주 물량이 급증, 역전세 대란이 확산될 전망이다. 서초, 강남, 송파 등 강남권의 2023~2024년 입주 물량이 3만3000여 가구로 추산된다.
깡통 전세도 급증할 전망이다. 주택금융연구원의 ‘보증금 미반환 위험의 추정’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매매가격이 10~20% 하락할 경우, 2023년 상반기에 전세 만기 주택의 4.6%, 2023년 상반기에 12.5%, 2024년 상반기에 14.5%가 깡통 전세가 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지역별로는 대구, 울산 충남, 충북, 전북 등은 30% 이상, 경북은 40%의 주택이 깡통 전세가 될 것으로 추정됐다.
신규 아파트 미입주 대란 우려도 나온다. 최민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 “신규 아파트에 입주하려면 기존 주택을 팔거나 전세로 분양 잔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전세금이 폭락하는 상황에서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미분양이 급증하는 가운데 미입주 대란까지 벌어지면 자금난이 심화되는 건설사에 치명타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집값 폭락 방아쇠 당긴 반토막 전세]
보통 매매가 하락하면 전세가 상승… 고금리로 매매·전세 수요 동반 위축
전세 가격 급락이 집값 폭락의 방아쇠를 당겼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보통은 전세가가 집값 하락을 저지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번에는 전세가가 매매가 하락을 촉발했다”고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집값 하락기에는 수요자들이 집을 사기보다는 전세를 선택해서 전세 가격을 끌어올린다.
집값이 하락한 1992~1994년, 2011~2014년에는 전세 가격이 상승세를 보였다. 전세 가격이 집값 급락을 막는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세가 급락이 매매가 하락을 유도하고 있다. 전세금이 고점에 비해 반 토막이 난 단지가 속출하고 있다.
여유 자금이 없는 일부 다주택자는 돌려줄 전세금을 마련하지 못해 집을 급매로 내놓고 있다. 특히 송도, 검단 등 입주 물량이 많은 지역에서 매매가격이 반 토막 난 것은 전세가 폭락의 영향이 크다. 전세로 중도금 대출을 상환하고 잔금을 마련하려던 신축 아파트 주인들도 매물을 내놓아 기존 주택 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
매매가와 전세가 동반 급락은 금리 충격 탓이다. 급격한 금리 인상이 매매 수요를 위축시켰을 뿐 아니라 전세 시장도 위축시키고 있다. 금리가 급등했던 외환 위기 때도 매매와 전세 가격이 동반 폭락했다. 특히 고금리로 월세 전환율이 시장 금리보다 낮은 데다,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빈발하자 세입자들의 월세 선택에 속도가 붙고 있다. 전세 수요 자체가 쪼그라들면서 전세금 하락 폭이 커지고 있다.
☞역전세
전세금이 크게 떨어져 임차인이 전세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
☞깡통 전세
매매가가 전세금 이하로 떨어져 집을 팔아도 보증금 반환이 불가능한 전셋집
☞무갭투자
전세가가 집값과 비슷하거나 더 높아 자기 돈 들이지 않고 집을 사는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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