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미래] 창작자들의 낯선 조명

김태권 만화가 2023. 2. 9.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창작 환경이 바뀌어 있다. 이 숱한 변화 사이로 한 줄기 굵직한 흐름이 보인다. 어렴풋하게지만 말이다.

김태권 만화가

최근 창작자끼리 화제는 챗GPT다. 어지간한 글쓰기는 인공지능이 해주는 시대다. 미드저니는 몇 가지 열쇳말만 주면 쓸 만한 그림을 뽑아낸다. 이 와중에 나는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읽었다. 다독가 K선생이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다. 사실은 책의 제목이 눈에 밟혔다. 나도 넷플릭스 드라마를 1.5배속으로 돌려 본 일이 있다. 지은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묻는다. 이 현상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일지 말이다.

눈길을 끄는 구절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작품 감상”이라고 하지 않고 “콘텐츠 소비”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옛날에는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감독을 챙기고 감독의 인터뷰도 챙겼는데, 이제는 창작자를 달걀을 낳는 닭처럼 생각한다”는 지적을, 지은이는 다른 글에서 재인용했다. 어디 영화와 드라마뿐이랴. 웹툰과 웹소설 업계에서는 ‘전작이 성공했다고 이번 작품이 더 주목받는 것은 아니다’라는 규칙이 유명하다. 작가 입장에서는 자기가 존중받지 못한다고 섭섭할 수도 있다. 세태를 원망하는 일부 지식인의 울분도 이해는 된다.

그렇다고 독자 또는 관객을 탓할 수는 없다. 옛날 독자와 달리 요즘 독자가 어리석다는 유의 겉핥기 비평에는 동의할 수 없다. 독자는 수동적이지 않다. 변화를 능동적으로 이끌어간다. 창작물을 자기네 취향에 맞게 “커스터마이징”하여 즐긴다는 것이다. 빨리 감기도 애초에 관객의 정보 처리 능력이 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관객은 실속도 챙기고 있다.

‘빨리 감기 현상’은 즐길 거리가 많아졌다는 현실과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다.

산업 전반은 어떤가. 양적 확대가 질적 빈곤을 의미하는 것처럼 비관하는 지식인이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그 반대 같다. 작품의 양이 늘면, 질이 뛰어난 작품이 나올 가능성도 크다. 틈새도 커진다. 나는 요즘 지식만화 전문 플랫폼에 웹툰을 그리는데, 이런 플랫폼이 출현한 것도 웹툰 산업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창작자는? 일부 창작자는 옛날에 생각하지 못한 수입을 거두어들인다. 하지만 나는 창작자의 미래에 대해 회의적이다. 돈 문제가 아니다. 창작자의 지위가 변하기 때문이다. 한때 창작자는 돈이 많든 배를 곯든 작가였다. 작가의 이름이 브랜드였다. 지금은 창작물을 시장에 납품하는 팀의 일원이다. 창작자란 과거만큼 매력적인 직업인가?

산업은 앞으로도 발전할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말처럼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동물”이다. 챗GPT 같은 기계가 만든 이야기건, 한때 ‘작가’라 불리던, ‘콘텐츠 산업의 닭이 낳은 달걀’이건 말이다.

창작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창작자의 미래는 어떨까. 설령 빛이 보이더라도, 그 빛은 우리에게 낯선 조명일 것 같다.

김태권 만화가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