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경제 성장과 은행의 역할

경제 성장과 금융구조, 특히 은행과의 관계는 아주 오래되고 다양한 갈래를 가진 논쟁 주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논의들을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대다수의 연구들은 경제성장과 은행이 밀접한 정(+)의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평가한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개념적으로 은행(그리고 금융시장)은 가계의 저축을 투자로 연결시키는 자금중개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저축자와 투자자 간에 발생하는 정보 및 거래비용을 줄여준다. 무엇보다 은행의 핵심 기능은 자본의 한계생산성이 가장 높은 투자계획에 자금을 배분하는 것이다. 여러 투자계획들을 평가하기 위한 정보의 수집, 리스크 분산방법을 제공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더 위험하지만 더욱 생산적인 기술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게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 경제에서 은행은 향후의 기술혁신과 투자 그리고 경제성장에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은행은 대출, 자산 형성 및 보전, 무역 거래, 자본시장의 촉진에 있어 핵심적인 기능을 하는 전통적인 금융회사의 역할을 해왔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산업 간 융·복합, 기후변화 대응, 미래 성장동력 육성 등이 우리 경제의 지속성장을 위한 당면 과제인 시대에 은행의 역할은 무엇일까? 몇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지속 가능 경제로의 전환 촉진 역할이다. 은행은 탄소 고배출 기업들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면서 녹색 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자금 조달을 지원하는 목적특화형 대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지속 가능성 실현에 기여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산업에 걸쳐 지속 가능성을 달성하기 위한 이니셔티브 관련 R&D 활동을 지원할 수도 있다. 한편, 은행은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의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다. 지속 가능성 관련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은 그린본드(green bond)를 통해 조달할 수 있으며, 은행으로서 ESG 기반 M&A 실사 및 ESG 연계 상품을 활용하여 지속 가능성을 지원할 수 있다.

둘째, 혁신과 핵심산업에 대한 투자 역할이다. 은행은 이미 국내 및 해외기업 모두에게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요한 파트너이지만, 특히 국제무역 분야에서 단순한 자금공급자 대신에 산업별 전문성을 가진 무역 파트너로 진화할 수 있다. 또한 은행은 블록체인과 같은 분산원장기술(DLT)을 활용하여 국제 무역 비즈니스의 편의성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다. 손님 편의성 개선을 목적으로 DLT를 활용하여 트랜잭션 뱅킹 서비스를 제공하는 외국 은행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한편, 혁신초기 단계에 있는 기업 내지 유망기업에 대한 자금조달 지원을 통해 산업혁신을 촉진시키는 역할도 가능하다.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을 위한 포괄적인 비즈니스 생태계는 기업의 계좌관리와 신용대출과 같은 전통적인 금융상품 외에도 비즈니스 등록, 마케팅, 회계 지원 및 맞춤형 시장 정보 등의 비금융 서비스도 포함되어 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과 같이 벤처캐피털과의 협력을 통해 유망한 기업을 대상으로 은행서비스와 비즈니스 전략지원을 동시에 제공하는 모델도 검토할 만하다.

셋째, 고객 계층별 맞춤형 서비스 제공 역할이다. 은행은 통상 연령대와 자산규모가 다른 다양한 고객층에 대한 자산 형성 및 보전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고객의 자산을 유지하고 증식하는 은행의 전통적인 역할은 이제 종합 자산관리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 은행은 광범위한 손님 기반과 노하우를 활용하여 파트너십 및 생태계를 구축하고 포괄적인 자문 프로그램에 필요한 일련의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령층과 준부유층을 위해 퇴직 후 지출관리나 상속 지원 등 자산의 축소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젊은 MZ세대를 대상으로 투자상품 리서치 정보를 전달하고 투자 결정을 지원하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모델을 개발하는 것도 가능하다.

전통적인 자금중개와 상품판매를 넘어서 맞춤형 복합서비스(end-to-end 서비스)와 투자를 통해 경제의 효율성 및 산업 혁신을 촉진하는 은행의 역할 확대 노력이 더욱 필요한 때이다. 은행의 가장 큰 사회적 역할은 여기에 있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