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아침] ‘인천 정신’ 말살

경기일보 2023. 2. 9. 03:01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희제 인천언론인클럽 회장

인천은 전국에서 근대건축물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나 그 가치를 제대로 발현하지 못하고 있다. 풍부한 역사문화자원을 도시브랜드로 살려내지 못할망정 보물과 같은 건축자산을 뭉개고, 부숴버리기 일쑤다. 2017년 이후 철거된 옛 건물들을 떠올리더라도 한심하기 그지없다.

붉은 벽돌공장 애경사를 비롯해 일제강점기 강제노동역사를 알릴 미쓰비시 줄사택과 산곡동 영단주택, 노숙자시설이었던 내동 직업소개소 및 공동숙박소, 목선 못을 만들던 신일철공소, 식민지 노동역사를 알려줄 아베식당과 오쿠다정미소, 신흥등 적산가옥단지가 줄줄이 사라졌다. 요즘 인천 3·1운동 발상지인 창영초교 이전과 부평 미군부대 내 조병창 병원건물 철거, 최초 근대극장 협률사의 맥을 잇는 애관극장 보존 논란이 뜨겁다.

해외에선 역사문화적 시가지 보존과 재생을 통해 도시 혁신을 이룩한 사례가 수두룩하다. 공장지대를 예술특구로 만든 베이징 다산즈, 고급문화와 디자인도시로 주목받는 미국 포틀랜드, 안드르센 문학도시인 덴마크 오덴세, 교황 유폐 역사를 살린 프랑스 아비뇽축제, 폐광촌에서 예술도시로 거듭난 영국 게이츠헤드 등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인천도 창조적 문화도시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과 잠재력은 충분한데도 지역자원을 살려낼 프로젝트, 이를 추진할 인재 시스템, 민관협치가 부족하다는 소리가 늘 나온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가장 큰 이유는 공공기관의 도시철학 부재를 꼽을 수 있다. 1911년 일본인 사업가에 의해 건립된 이후 80년 세월을 지켜온 경인철도변 애경사 철거를 관할 구청이 단행했다. 이후 각계 비난이 쏟아지면서 인천시가 근대건축물 보존과 활용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으나 별다른 진척이 없다.

인천시교육청이 최근 ‘인천 정신’의 뿌리로 일컬어지는 창영초등학교 이전을 강행하고 나섰다. 시민사회의 반발이 잇따르자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에서 이전 계획을 일단 부결했으나 합리적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교육청 논리를 살펴보면 지역 역사와 문화를 중시하는 정신이나 교육철학이 너무도 빈약하다.

도시재개발로 늘어날 학생을 감당할 창영초 학급 증설은 문화재지구에서도 시설 증축을 이뤄낸 영화국제관광고처럼 인천시와 협의해 풀 수 있는 문제다. 인천에 100년 전통을 잇는 학교가 18개나 있는데 그중 창영초는 3·1운동 때 인천 최초로 독립만세를 외친 ‘인천 얼’의 상징이다. 한국 미학의 선구자 고유섭, 일장기 말소사건의 주인공 이길용 기자, 극작가 함세덕, 의사이자 향토사학자 신태환, 그리운 금강산 작곡자 최영섭, 2대 대법원장 조진만, 구국의 화신 강제구 소령, 야구선수 류현진 등 수많은 인물을 배출한 학교다. 이런 학교의 이전은 ‘인천 정신’ 말살이다.

경기일보 webmaster@kyeonggi.com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