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만원 명품백 사려니, 300만원 쓴 다음 오라네요

송혜진 기자 2023. 2. 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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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사고 저래도 사잖아?” 명품업계는 손님이 만만하다
서울 신세계 강남점의 한 명품 매장에서 문 열기를 기다리며 줄을 선 쇼핑객들의 모습.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지난해 명품 구입액은 전년보다 24% 늘어난 168억달러(약 20조9000억원)에 달했다. /김지호 기자

“245만원짜리 가방을 사려면 300만원을 더 써야만 한다니, 제가 뭘 잘못 들은 건가요?”

지난 2일 회원 60만명이 넘는 한 온라인 명품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중 하나다. 고가(高價) 가방·의류를 파는 프랑스 패션 업체 고야드가 작년 말부터 연간 300만원 이상 구매 실적이 있는 고객에게만 자사 인기 제품을 판매한다는 정책을 내세워 논란을 빚고 있다. ‘보헴’이라는 품목의 가방이 작년 3월 출시된 이후 국내에서 워낙 잘 팔리면서 고객들이 몇 개월씩 기다려도 제품을 구하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자, 본사에서 이젠 300만원 이상 구매 실적이 있는 고객에게만 제품을 팔겠다고 안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고야드 본사 관계자는 본지의 통화에서 “고정 고객에게 먼저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이런 정책을 내놓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고야드 보헴백. /고야드

해외 명품 업체들이 한국 소비자들을 상대로 벌이는 ‘신종 갑질’이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한국 명품 소비가 급작스럽게 팽창하자, 이젠 특정 인기 제품을 사려면 몇 시간씩 줄을 서는 것도 모자라 몇 백만원, 혹은 몇 천만원어치의 구매 실적을 쌓아야만 살 수 있다는 조건을 내세우는 곳도 나왔다. 제품 구매 대기자로 등록하려면 몇 백만원에 이르는 가격 전액을 사전에 지불해야 하는 이른바 ‘완불 웨이팅’을 요구하거나, 특정 인기 제품 구매 수량을 갖가지 조건을 내세워 제한하기도 한다.

◇245만원짜리 가방 사려면 300만원 더 써라?… 고객이 ‘乙’

제품 구매 대기자로 등록하기 위해 몇 백만원에 이르는 가격 전액을 사전에 지불해야 하는 이른바 ‘완불 웨이팅’을 요구하는 곳도 늘고 있다. 루이비통·샤넬·디올 같은 업체 대부분이 매장에 상품이 아예 없어 제품을 실물로 보지도 못해도 제품 가격 전액을 모두 지불해야만 구매 대기자로 등록할 수 있다. 심지어 돈을 다 냈는데도 그사이에 가격이 오르면 구매 대기를 취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작년 말 디올은 제품 가격이 인상되자 “추가 인상된 만큼의 금액을 더 내지 않으면 미리 받은 주문을 모두 취소하겠다”고 안내해 고객들에게 원성을 사기도 했다.

샤넬은 ‘리셀’을 방지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클래식 플랩백 같은 인기 상품은 1년에 한 개만 살 수 있도록 제한하기도 한다. 돈을 내는 고객이 업체로부터 구매 개수조차 제한을 받는 것이다.

◇가격 올리면서 예약 주문 무더기 취소 소동도

프랑스 보석·시계 업체 까르띠에도 제품 가격 인상 직전에 접수된 고객 주문을 일방적으로 취소해 논란을 빚은 곳 중 하나다. 작년 11월 가격 인상 하루 전날에 접수된 온라인 시계 주문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이다. 상담원에게 상품 배송 안내까지 받았던 고객 수백명이 고객상담센터에 항의 전화를 계속했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공동 항의를 하자는 움직임까지 일었다. 이에 까르띠에 측은 뒤늦게 “시스템 오류였다”고 해명하고 주문이 취소된 고객들에게 상품을 배송하기로 약속했다.

에르메스도 올해 초 가격 인상을 앞두고 공식 홈페이지에서 접수된 소비자 주문을 일방적으로 취소해 논란을 빚었다. 에르메스 관계자는 “재고가 부족한 상태에서 시스템 오류로 주문을 잘못 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일부에선 국내 소비자들의 과도한 명품 사랑 때문에 명품 업체들의 황당한 행태가 반복된다고 지적한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지난해 명품 구입액은 168억달러(약 20조9000억원)에 달했다. 1인당 구매 금액은 325달러(약 40만원)로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미국(280달러)은 물론 명품을 많이 소비하는 나라로 알려진 중국(55달러)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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