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아무리 추워도 봄은 봄이니까
우리는 농사 맞춰 입춘이 첫 절기
과학보다도 민중의 삶에 더 초점
삶은 팍팍해도 봄은 시작되었다
지구에서 볼 때 1년에 걸쳐서 태양이 하늘을 이동하는 경로를 황도라고 한다. 황도가 지구 적도면과 일치한다면 지구에는 계절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나 지루한 일인가. 다행히 지구 자전축이 23도 기운 덕분에 매일 태양이 뜨는 위치(황경)와 태양이 머리 위로 오르는 높이(남중고도)가 달라졌다. 덕분에 우리에게는 계절이 있다.
태양신을 섬겼던 고대 로마의 새해 시작은 March(3월)였다. 해가 길어지는 춘분이 들어 있으면서 만물이 소생할 때 새해의 시작이라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쩌다가 당시 열한 번째와 열두 번째 달이었던 January와 February가 1월과 2월이 되면서 첫 번째 달이었던 March가 세 번째 달이 되었다.
이걸 어떻게 아느냐고? 문어(octopus)의 다리는 여덟 개이고 십계명(Decalogue)은 열 개의 명령인데 October는 10월이고 December는 12월인 걸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까닭은 달력이 단순히 과학의 산물이 아니라 과학과 권력의 이중주로 탄생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우리의 절기는 황경 0도의 춘분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첫 번째 절기는 입춘이다. 보통 2월4일에 오는데 이때 황경은 315도다. 입춘은 봄의 시작이라는 뜻이지만 이때 봄이 시작된다고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올해도 입춘 때는 전국이 엄청 추웠다. 이쯤 되면 우리는 의문을 품어야 한다. 첫째, 우리 선조들은 왜 황경 0도인 춘분이 아니라 황경 315도인 입춘을 첫 번째 절기로 삼았을까? 둘째, 이렇게 추운 때 왜 감히 입춘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섬진강가 곡성 들녘에서 농사지으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소설가 김탁환은 깨달았다. 봄이 2월에 시작하는 까닭은 따뜻해서가 아니라 농사에 맞췄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농사에 중요한 24절기에 따르면 봄은 2, 3, 4월이고 여름은 5, 6, 7월이며 8, 9, 10월은 가을이고 11, 12, 1월은 겨울이다.
농작물과 농부의 삶에 따른다면 추수를 마친 11월부터 겨울이고, 얼음이 녹고 꽃이 피기 시작하는 2월부터 봄이다. 또 모내기는 여름이 시작되는 5월에 하고, 8월 광복절 즈음에는 가을바람이 불며 이때 김장용 배추와 무를 심는다.
춘분, 하지, 추분, 동지는 천문학적인 의미가 있을지언정 농사와는 별 관계가 없다. 따라서 굳이 그 지점을 절기의 중요한 꼭지로 둘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 과학자들과 관리들은 과학 자체보다도 민중의 삶을 더 우선에 두었던 셈이다. 천문학적으로 의미 있는 네 날 중 오직 동지에만 팥죽이라도 쑤어 먹는 것은 농한기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이 기후변화 때문에 봄과 가을이 사라지고 있다고 느낀다. 그런데 봄은 오히려 길어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최근 30년을 비교하면 6일 정도 늘어났고 여름은 20일이나 늘었다. 따뜻하고 더운 계절이 거의 한 달이나 늘어난 것이다. 대신 추운 날은 더 매섭게 춥다.
아무리 추워도 입춘이 지났으니 봄은 이미 시작되었다. 실제 날씨보다 마음은 더 춥다. 그래도 난방비, 전기료, 택시비 대신 볕, 바람, 풀 내음을 떠올려 보자. 봄은 봄이니까.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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