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사람보다 회사가 더 많아...대체 뭐가 있길래 [Books&Biz]
-할 와이츠먼
美 바이든 36년간 델라웨어 의원
덩치는 미국에서 2번째로 작지만
절차 없애고 효율은 극대화 추구
하루에 기업 683개씩 등록
탈세 회계부정 돈세탁 문제점도
이런 델라웨어가 요즘 특히 주목받고 있는 것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때문이기도 하다.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 델라웨어다. 태어나기는 펜실베니아주에서 태어났지만 서른 살이 되던 1972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최연소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돼 이후 내리 36년을 의원직을 맡으면서 매일같이 기차를 타고 델라웨어에서 워싱턴DC까지 통근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금요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델라웨어 집으로 갔다가 일요일 저녁에 백악관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델라웨어에 대체 뭐가 있길래?
할 와이츠먼의 저서 ‘What‘s the Matter with Delaware?(Princeton University Press)’은 초미니 주(州) 델라웨어의 생존비결을 담았다. 미국의 50개중 첫번째 주인 델라웨어주가 지난 200년간 부(富)와 권력에 어떻게 봉사하면서 살아남았는지를 낱낱이 파헤쳤다. 만약 바이든 대통령이 주말 집에 가는 길에 이 책을 집어들었다면 읽기 거북할만한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독자들에게는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델라웨어 방식(Delaware Way)’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미국 기업과 역사·정치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는 조금 있는 독자라면 재밌게 읽을만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작가의 말처럼 기실 바이든 대통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델라웨어 방식’을 이해하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책 표지는 델라웨어주에서 법인 등록할 때 기록하는 양식지다. 법인명·사업 목적·사업자명 등 몇가지만 적어넣으면 간단히 등록을 마칠 수가 있다. 심지어 신분증도 필요없다. 가명으로 서명해도 무방하다는 얘기다. 심지어 그마저도 변호사들이 대신해 주기도 한다. 각종 서류작업을 줄이고 효율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델라웨어 방식’의 중심에는 효율이 있고, 그 바탕에는 관료주의를 최소화하고 창의적인 해법을 찾아내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정신이 건국때부터 깔려있다. 자연인보다 법인이 많은 이 주(州)의 독특한 생존법이다. 시장을 감독하는 감독기구나 국회의원들조차 법인을 위해 존재하는 듯 하다는 것. 작가는 이를 두고 덩치가 조금만 컸더라면 이런 발상은 힘들었을 텐데, 주 정부·의회·전문가 등이 똘똘 뭉쳐 갱단처럼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사이즈가 작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의석수도 많고, 주정부 예산도 큰 주였다면 이해관계가 엇갈려 이렇게 일치단결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얘기다.
법인세를 예로 들어보자. 미국의 법인세는 연방세(세율 21%)와 지방세인 주법인세로 이원화돼있는데, 델라웨어는 주 법인세가 낮은 주로 유명하다. 델라웨어 등록 기업들은 다른 주에서 벌어들인 수익에 대해서는 세금을 내지 않는다. 설령 델라웨어주에서 번 돈이라고 해도 특허나 저작권 같은 무형자산에 발생하는 이익에 대해서는 과세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델라웨어에 등록된 법인은 대부분이 지주회사 형태다. 지주회사는 사업 자회사로부터 경영컨설팅 수수료나 저작권 수수료 등을 받아서 이익을 내지만 델라웨어에 있으니 세금을 안내도 된다.
가령, 건축자재 등을 판매하는 세계 최대 소매체인 ‘홈디포(Home Depot)’의 본사는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지만 델라웨어에 ‘호머(Homer TLC)’라는 법인체를 갖고 있다. 호머는 홈디포의 상징물인 오렌지색 작업모를 쓴 캐릭터인데, 전국에 있는 홈디포 매장에서 이 캐릭터 사용로로 순이익의 5%씩을 떼서 ‘호머 TLC’로 보낸다. 이렇게 해서 호머가 번 돈은 세금 한푼 안내고 고스란히 이익으로 돌아가는 셈. 우리나라였다면 진작에 공정거래위원회의 철퇴를 맞았겠지만 미국에서는 합법적인 절세다. 이렇게 해도 델라웨어의 세수가 빵꾸날 일은 없다. 기업별로 내는 세금은 적지만 워낙 등록한 법인수가 많다 보니 전체 세수는 늘어나는 구조다. 델라웨어주에 등록된 기업은 약 160만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에도 매년 25만개씩 늘어났다. 하루에 기업이 683개씩 생겨나는 주인 셈이다.
물론 효율 극대화에 대한 부작용도 상당하다. 회계부정, 돈세탁 등 검은 거래가 횡행한다. 대표적인 게 지난 2000년초 닷컴버블 붕괴를 가져온 월드컴 회계부정사태다. 미국 2대 장거리 전화 회사였던 월드컴은 전국에 있는 사업자회사들이 델라웨어에 있는 지주회사에 경영컨설팅 비용을 지불하도록 해서 이익을 빼돌리고, 사업회사들은 비용을 이익으로 허위공시하면서 주가를 조작했다. 결국 파산에 이르러 미국 투자자뿐만 아니라 전세계 증시를 마비시켰지만 델라웨어주는 친기업 정책 노선을 바꾸지 않았다. 델라웨어 입장에서는 크게 잃을 게 없었기 때문. 세수가 줄어든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델라웨어주 변호사 수임료만 뛰었다. 기업과 투자자들을 상대로하는 변호사들의 일감이 늘어나면서 지금도 델라웨어주의 평균 시간당 변호사 보수는 캘리포니아나 뉴욕보다 높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최근에는 뉴욕에 있는 경매장에서 거래된 고가의 예술품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델라웨어로 상당량 반입되고 있지만 이 또한 합법적인 절세인지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게 또다른 문제가 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도 선거과정에서 탈세 문제로 시달리면서 유권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델라웨어 방식’이 관료주의를 배격하고 효율을 중시하며 목표를 위해서는 정부·의회할 것 없이 하나로 움직이는 것이었다면 워싱턴에서도 이런 방식이 통할지는 좀더 지켜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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