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한반도정세처럼…정전70주년맞은 판문점은 희뿌옇고 냉랭했다

김예진 2023. 2. 8.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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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을 열고 뚜벅뚜벅 걸어나온 곳, 그런 실황이 사상 처음으로 전세계 언론매체에 생중계된 곳, 이듬해에는 남·북·미 정상이 모여 손을 잡고 넘나든 곳, 그런 모습에 전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 곳. 바로 판문점 군사분계선이다. 7일 기자가 찾은 판문점은 당시 뜨거운 관심이 언제였냐는 듯 썰렁하기만 했다.
7일 경기도 파주 판문점 군사분계선 너머에 북한군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남측과 북측이 서로 마주보며 경계하고 있던 곳이지만, 코로나19가 발생한 뒤로 북한군은 판문각 밖으로 나와있지 않는다고 한다. 파주=연합뉴스
◆코로나로 썰렁한 북측

이날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주최로 판문점 내 방문 취재행사가 열렸다. 국내외 기자 약 40명이 참석했다. 기자가 찾은 판문점은 마치 한반도 정세처럼 썰렁하고 냉랭한 공기가 내려앉아 있었다. 

유독 썰렁한 느낌을 준 건 외부 경계인력이 전원 철수한 북측 풍경때문이었다. 그간 판문점은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북 병사들이 얼굴을 맞대고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상징적 장소였다. 물론 처음에 만들어졌을 땐 쌍방 관계자들이 구역 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어 명실상부 ‘공동’으로 경비하는 구역인 적도 있었다. 1976년 북한이 도끼 만행 사건을 저지른 이후 공동경비구역 내에도 군사분계선을 표시하고 그 경계를 기준으로 서로 침범하지 않는 ‘분할’ 경비 체제가 돼 지금까지 이어졌다. 전과 같은 ‘공동’경비는 아니나, 경비 ‘공존’ 구역이긴 했던 셈이다.

그러나 이날 현장엔 군사분계선 남쪽에 국군과 유엔군 관계자들만 나와있었고 북측에는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아 남측 인원만 경비를 서고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북측 인원은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코로나19 방역으로 강력한 통제·봉쇄책을 써온 북한의 실태가 실감났다.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관계자가 7일 판문점을 찾은 취재진에게 2018년 남북이 맺은 9·19 군사합의에 따라 폐쇄된 초소 앞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 파주=연합뉴스
취재진을 안내한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관계자는 “모두 북측 판문각 건물 안에서만 근무하며 밖은 카메라나 장비를 통해서만 지켜보고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북한을 찾은 관광객에게 판문점 유료 견학을 시키기도 했는데, 코로나19 발생 이후 이 같은 방문객도 일절 사라졌다고 한다. 남측 ‘단독’ 경비구역이 된 모습이었다.

◆언제 어떻게 급변할 줄 모르는 정전 상태

“정전협상 당시에는 정전협정은 약 70일이나 90일 정도만 지속되고 평화협정이 이어질 줄 알았다고 하는데, 그것은 요원했고, 아직도 70년간 정전협정인 상태네요.”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를 대표해 이날 취재진을 안내한 그리프 호프만 중령의 말이다. 이날 판문점은 고요함 속에서도, 한편으론 언제든 상황이 급변할 수 있다는 걸 상기시키는 70년의 흔적들이 곳곳에 보였다.
판문점에서 국내외 취재진이 7일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파주=연합뉴스
도끼만행사건 추모비부터, 2017년 판문점 귀순 사건 당시 오청성 씨를 쫓던 추격조가 남측을 향해 쏜 총탄의 흔적도 보였다. 

호프만 중령은 “당시 북한군이 끝까지 오청성씨를 추격했다면 교전, 확전으로까지 번질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추격하던 북한군들은 군사분계선을 넘어왔다는 걸 인식하자 스스로 발길을 돌려 돌아갔다”며 “정전협정을 상기할 수 있었고, 북측의 정전협정 준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사건”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9·19 합의 흔적

비무장지대 내 ‘실질적 비무장화’를 약속한 2018년 9·19 군사합의로 인해 변화된 모습도 보였다.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바로 코앞에 나란히 마주보고 지어진 남, 북 초소 건물에 자물쇠가 채워지고 문을 열지 못하도록 봉인지가 붙어 있었다.

호프만 중령은 “남측 건물엔 북측 인원이 내려와서 자물쇠를 채우고 봉인지를 붙였고, 거꾸로 북측 건물엔 남측 인원이 올라가서 똑같은 자물쇠를 채우고 봉인지를 붙였다”고 설명했다. 9·19 군사합의에서 ‘쌍방은 비무장지대 안에 감시초소(GP)를 전부 철수하기 위한 시범적 조치로 상호 1km 이내 근접해 있는 남북 감시초소들을 완전히 철수’키로 한 데 따른 것이다.
7일 취재진이 방문한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에 9·19 군사합의에 따라 폐쇄된 초소의 출입문에 봉인지가 붙어있는 모습. 파주=연합뉴스
그는 “9·19합의란 건 북한과 대한민국 양자합의로 유엔사나 미국은 개입하지 않았지만, 합의 지원 측면에서 유엔사는 JSA 내 비무장화를 추진했다”며 “예전엔 ‘비무장한 인원이므로 공격하지 말라’는 표시로 일부 인원이 별도의 노란 완장을 차고 근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9·19 합의 이후 이젠 이곳에선 누구도 무장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남북 정상 단 둘이 대화한 ‘도보다리 회담장’은 공사로 폐쇄된 상태였다. 근처엔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라고 새겨진 기념석과 기념식수가 남아있었다.

희망과 실망, 절망이 수십년 교차한 한반도 역사의 가장 상징적 장소에서 근무 중인 호프만 중령에게 “정전 70주년을 맞은 소감이 어떠냐”는 취재진 질문이 나왔다.

그는 “정전 서명 후 70년 세월이 흘렀는데 오늘날까지 잘 유지가 됐다는 것을 다시 한번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 “정전 체제 하에서 유엔사 인원으로서 말할 수 있는 것은, 협정을 잘 준수해 전쟁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파주=공동취재단,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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