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상대 손해배상 승소… 탈북 국군포로 한재복씨 별세
6·25 때 북한으로 끌려가 강제 노역을 했던 국군 포로 한재복(89)씨가 8일 별세했다. 한씨는 지난 2020년 북한과 김정은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기념비적인 법원 판결을 이끌어냈던 인물이다. 조선중앙TV 저작권료 등 북한 자산을 압류해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생전에 판결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게 됐다. 이로써 국내에 생존해있는 탈북 국군포로는 14명에서 13명으로 줄었다.
한씨는 8일 오후 향년 8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934년 전북 고부군(현 정읍시)에서 태어난 그는 1951년 4월 17살의 나이에 자원 입대했다. 7사단 5연대 수색소대 2분대 소총수였는데 그해 12월 강원 회양군 전투에서 북한에 포로로 붙잡혀 2001년 8월 탈북하기 전까지 50년을 그곳에서 지냈다. 탄광 노동자로 일했던 한씨는 생전에 “북한에 있을 동안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인권 유린이었다”며 “신분이 낮고 자유가 구속됐으며 성분이 좋지 않아 자녀들도 여러 불이익을 받았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1년 한국에 들어온 한씨는 7사단에서 뒤늦은 전역장을 받았다. 지난 2020년에는 “노동력을 착취당했다”며 국군포로 노사홍씨와 함께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 승소했다. 북한과 김정은에 대해 우리 사법부의 재판권을 인정하고 손해배상을 명령한 최초의 판결이었는데, 당시 법원은 피고들이 한씨와 노씨에게 각각 2100만원씩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한씨는 승소 소감을 밝히며 “국군포로에 대해 물망초(대북인권단체)를 제외하곤 관심을 갖지 않는다”며 “이게 참 섭섭하다”고 했었다. 그는 생전에 북송된 비전향 장기수들에 대해서도 “국군포로와 동급으로 취급하는 것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이 송환을 요구한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보냈지만, 북한 정상과 만난 세 명의 한국 대통령 어느 누구도 국군포로 송환을 요구하지 않았다. 2014년 유엔 북한인권위원회(COI)는 북한에 남아 있는 국군포로 숫자를 500여명으로 추산했는데 지금은 그 숫자가 훨씬 더 줄어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한씨는 물망초의 조력을 받아 조선중앙TV 등 북한의 영상 저작물을 국내에 유통하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을 상대로 추심금 청구 소송을 냈다. 하지만 작년 1월 1심에서 패소했고, 항소해 재판이 진행중이었다. 이 사안에 밝은 한 인사는 “항소심 재판부가 조금 더 서둘러서 재판을 진행했다면 더 좋았을텐데 끝내 판결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으시게 됐다”고 했다. 빈소는 9일 오전 10시부터 수도통합병원 장례식장(202호)에 차려질 예정이고, 발인은 1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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