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윤심’ 위에 민심 있다
전대 앞두고 당에 대통령 의중 전달
정치 중립 의무 대통령도 예외 없어
헌법 안 지키면 국민이 업신여길 것
윤석열 대통령이 탈당만은 절대 하고 싶지 않은 듯하다. 윤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는 신평 변호사가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당 대표가 될 경우 대통령이 탈당할 수밖에 없다고 연일 주장하는 것을 보며 든 역설적인 생각이다. 윤 대통령은 기존 여의도 정치인들을 물갈이하고 신진 세력으로 내년 총선에서 승리해 노동·연금·교육 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겠다는 계획을 가졌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의중을 실천할 당 대표를 뽑아 공천권부터 장악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 만에 하나 안 의원에게 당 대표 자리가 돌아간다면 계획이 틀어질 수 있다. 탈당도 어려운 선택이다.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측근 의원 47명과 탈당해 ‘탄핵 열풍’에 힘입어 총선을 이겼지만 지금 그런 기적은 난망하다. 지금 윤 대통령이 ‘윤심’은 김기현 의원에게 있음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각인시키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아무리 그래도 요즘 윤 대통령의 전당대회 개입은 과하다. 특히 안 의원을 겨냥해 “국정 운영의 방해꾼이자 적”이라는 등의 말을 측근들을 통해 흘리는 것은 거북하다. 지난해 대선 단일화 과정에서 윤 대통령이 안 의원을 국정 파트너라고 치켜세웠던 일을 국민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친위 세력들은 당 대표 적합도 국민 여론조사에서 유승민 전 의원이 1위에 오르자 전당대회 룰을 바꾸더니 국민의힘 지지층 여론조사에서 나경원 전 의원이 1위를 달리자 불출마를 강요했고 이번에는 강력하게 부상하는 안 의원을 난타하고 있다.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맡던 옛날에도 보기 어려웠던 살풍경이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줄곧 당무 불개입과 전대 중립 원칙을 밝혀왔다. 그러던 대통령실이 표변해 “대통령은 한 달에 300만 원 당비를 낸다”면서 “(의원들에 비해) 10배는 더 내는데 당원으로서 할 말이 없을 수 없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대통령은 우리 당의 최고 당원이고 1호 당원”이라며 “당무에 관한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고 강변했다. 그런 식이라면 윤 대통령이 ‘1호 국민’이라는 억지 논리를 세워 총선·대선 등에 마구 개입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헌법 제7조는 1항에서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2항에서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라고 규정했다. 공직선거법 제9조 1항은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기관·단체 포함)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돼 있다. 헌법과 공직선거법이 모든 공무원에게 명령한 정치 중립 의무가 대통령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2500년 전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국가’에서 “친구와 적을 구별해 이익과 해악을 나누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상대가 누구이든, 해악을 끼치는 행위는 정의로운 자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정치 지도자에 대해서는 “진정한 의미의 통치자는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우지 않는다. 국민들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지시하는 것이 통치자”라고 정의했다. 비슷한 때 동양의 노자는 ‘도덕경’에서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백성들이 그의 존재만을 겨우 알 뿐이고, 그다음은 친근감을 느끼고 그를 칭찬하고, 그다음은 그를 두려워하며, 그다음은 그를 업신여긴다”며 좋은 정치 지도자와 나쁜 정치 지도자의 기준을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어떤 지도자인지 단정하기 아직 이르다. 집권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았으므로 남은 기회가 많다. 다만 헌법과 법률이 요구하는 민주주의에서 멀어지면 국민은 윤 대통령을 심히 두려워하다가 업신여기는 지경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앞으로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명심할 것은 ‘윤심’ 위에 민심이 있다는 사실이다. 2023년의 대한민국 정치가 2500년 전보다 더 퇴행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우리 국민은 굳게 믿고 있다.
문성진 논설위원 hnsj@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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