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락 ‘기간제 교장’ 짱구쌤의 티타임 [6411의 목소리]

한겨레 2023. 2. 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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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우리 학교 아이들은 나를 ‘짱구쌤’이라 부른다. 그렇게 부르면 교장의 권위는 사라지고 아이들은 버릇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그런 기우는 접으시라. 아이들은 누구보다 사리분별을 잘한다. 내 이름과 외모에서 나온 ‘짱구쌤’ 별명은 아이들과 거리를 가깝게 하는 마법의 힘이 있다.
용방초등학교 아이들 모습. 필자 제공

이장규 | 용방초등학교 교장

“왜? 오늘 표정이 안 좋네. 숙제 안 했니? 걱정하지 마, 선생님이 설마 어떻게 하겠냐? 그리고 급식이 마라탕이야!”

아침 교문맞이, 기간제 교장이 하루 일을 시작한다. 첫 통학차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고 교문에서 아이들을 기다린다. 요즘 같은 추운 날엔 눈만 빼꼼한 중무장에 쉼 없이 제자리 걷기를 반복하며 체온을 유지하는 게 상책이다. 70여명 아이가 모두 등교할 때까지 손바닥을 마주치며 매일 아침맞이를 하는 것은, 학교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즐거운 곳이어야 한다는 오랜 바람의 실천이다.

나는 전남 구례 시골학교에서 일하는 3년 차 내부형 공모 교장이다. 공모를 통해 교사에서 바로 교장이 된, 이른바 ‘무자격 교장’이다. 기존 승진 체제(교사-교감-교장)에 변화를 주기 위해 도입된 내부형 공모 교장제는 새로운 리더십을 구축해 민주적인 학교문화를 형성했다는 평가와 함께 승진 구조 와해, 특정 교원단체의 전유물 등 비판도 받아가며 10여년째 시행되고 있다. 전남은 전체 학교의 2% 정도에서 시행 중이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나를 ‘짱구쌤’이라 부른다. 그렇게 부르면 교장의 권위는 사라지고 아이들은 버릇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그런 기우는 접으시라. 아이들은 누구보다 사리분별을 잘한다. 내 이름과 외모에서 나온 ‘짱구쌤’ 별명은 아이들과 거리를 가깝게 하는 마법의 힘이 있다. 2교시를 마치면 ‘누구나 교장실’에서 예약한 아이들과 우아하게 차를 마신다. 남자친구, 케이팝, 수업 이야기 등이 끝없이 이어지지는 동안, 난 그냥 함께 차를 마시며 웃어주면 된다. “짱구쌤, 오늘은 무슨 차에요. 김칫국물 맛이 나네요.” “보이차야.” “그럼 남자만 먹어요?”

일주일에 네시간 정도 수업을 한다. 30년간 해오던 일이니 교장이 됐다고 관둘 이유는 없었다. 담임들과 교과와 시간을 협의해 체육, 국어, 실과, 창체(창의적 체험활동) 등 다양한 수업을 진행한다. 놀이, 실내화 빨기, 서시천 산책하기, 그림책 읽어주기, 자전거 타기 등 재미와 의미를 함께 추구한다. 지난해 가을에는 우리 학교 대표 교육활동 중 하나인 ‘섬진강 자전거 마라톤’에서 1학년 아이들의 완주를 지도했다. 아이들과 함께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달리던 순간이 지금도 선명하다. 수업을 통해 내가 배우며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또 교실과 학생들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하고, 교사들의 어려움도 잊지 않게 된다.

‘섬진강 자전거 마라톤’ 모습. 필자 제공

제주도의 그림책 작가 니카는 “해녀는 페미니스트다. 그것을 증명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누구보다 강인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짱구쌤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교사는 휴머니스트다. 그들은 아이들의 오늘과 내일을 믿는다. 그것은 증명할 필요가 없다.” 사실 평교사 시절, 내가 휴머니스트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썼다. 교장이 교실의 교육력을 믿고 전적으로 지원하면 아이들과 교사는 배움과 열정으로 화답한다.

학교 안에 있는 모든 어른은 선생님이다. 수업하는 교사뿐 아니라 교무실과 행정실, 급식과 안전을 담당하는 모든 교직원은 아이들의 선생님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장하는 일을 멈출 수 없다. 모든 교직원과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만들어 학교 건축, 생태교육을 공부하며 함께 성장해 나간다. 정기적인 수업 공개(나눔)를 통해 자기 수업과 교실을 열고, 교사의 교수법 넘어 아이들의 배움을 이야기한다. 교장은 꼼꼼하게 아이들을 관찰해 어려운 부분을 지원해주면 된다. 우리가 세운 목표를 다 이룰 수 없다고 해도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은 될 수 있다.

운동장 너머에 노고단이 보이고 울타리를 따라 섬진강 지류인 서시천이 흐르는 아름다운 학교에서 근무하는 것은 행운이다. 2년 뒤에는 그 풍경에 딱 어울리는 세상에 하나뿐인 학교가 다시 지어진다. 긴 복도와 사각형 교실에서 벗어나, 천창과 거실, 툇마루가 있는 목조 지붕의 아늑한 학교가 탄생한다. 지난 30년 교사로 살면서 꿈꿨던 학교 건축에 관해 동료들과 수많은 대화를 나눴다. 2년 동안 모든 용방 가족들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설계했다. 어떤 뛰어난 개인도 집단지성을 넘어설 수는 없다는 믿음으로. 10년 전, 17명의 폐교 위기에서 지금에 이르렀듯, 우리 학교는 소멸의 위기를 넘어 계속 나아갈 것이다.

훌륭한 교사가 훌륭한 교장이 된다고 믿는다. 여러 평가 속에서도 교사에게 공모 교장의 기회를 주는 제도가 존속돼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자격증에 기대지 않은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기대이다. 우리는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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