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난방비’까지 챙기라는 윤 대통령…또 꼬이는 경제 정책

박종오 2023. 2. 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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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세 감세·반도체 세액공제 등 정책 혼선 가운데
윤 대통령 “중산층까지 난방비 경감 방안 마련” 지시
소비절감 정책과 엇박자…정부 “시간두고 고민” 난색
연합뉴스

“중산층과 서민 난방비 부담 경감 방안을 마련하라”는 윤석열 대통령 말 한마디에 정책 당국의 스텝이 꼬이고 있다. 대통령 지시를 외면하기 어렵지만, 중산층까지 정부 지원 대상에 포함하는 건 ‘에너지 가격 현실화’라는 정책의 큰 방향성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난처한 상황에 놓인 정부는 “중산층 지원은 시간을 두고 고민하겠다”며 고심에 빠진 모습이다.

8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중산층 난방비 지원 방안을 검토 중이나 정책 우선순위에서는 멀어진 분위기다. 기재부 관계자는 “중산층에게 10만원 내외 물가 지원금을 뿌리는 건 지금 상황에서 큰 의미가 없다”며 “중산층 지원 방안은 내부적으로 시간을 두고 고민 중이며 조만간 대책을 발표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정부 내부에서는 최근 포근한 겨울 날씨가 이어지며 ‘난방비 대란’ 이슈가 잠잠해질 거라 기대하는 기류도 읽힌다. 여론을 달래기 위해 중산층 지원에까지 재정을 투입할 필요성이 줄었다는 판단이다.

이런 모습은 전날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도 드러났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전 국민에게 에너지값(난방비)을 국가가 예산으로 지원하는 건 합리적인 정책이 아니다”라며 “현재의 재정 상황에서는 우선 취약계층에게 지원을 집중하는 정책이 합리적이다”라고 말했다. 한 총리도 중산층 지원에 신중한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중산층 난방비 지원 논의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중산층 서민의 난방비 부담을 경감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참모들에게 지시하며 시작됐다. 대통령실은 다음날 “우선 서민계층 지원을 최대한 두텁게 할 계획을 빠른 시일 내 관계 부처에서 발표할 예정”이라며 “중산층도 관계 부처에서 현황을 점검하고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지난달 26일 에너지 바우처 지원금액과 가스 요금 할인 폭을 2배 늘리는 지원 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이달 1일 모든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 계층(중위소득 50% 이하면서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닌 계층)에게 59만2천원씩을 지원하는 추가 지원책을 내놓았다. 다만 중산층 지원 방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7일 열린 국회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관가에서는 중산층 난방비 지원 확대에 회의적인 견해가 적지 않다. ‘중산층’의 정의와 범위가 모호하고, 국민 전반으로 지원을 넓히는 건 에너지 소비 절감을 유도해야 하는 필요성과도 상반되기 때문이다. 경제 부처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 지시인 만큼 이를 모른 체할 수는 없다”면서도 “중산층을 지원하면 당장 이들보다 난방비 부담이 큰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도 ‘우리는 왜 지원해 주지 않느냐’는 형평성 논란이 나올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국 통계청은 중산층을 주로 중위소득(소득 순서대로 줄 세웠을 때 한가운데 있는 사람의 소득)의 50∼150%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간주한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중위소득의 75∼200%를 중산층으로 보기도 한다. 올해 중위소득 기준으로 4인 가구 월소득 약 1080만원, 연소득 1억3천만원인 고소득 가구까지 정부의 난방비 지원 대상에 포함되는 셈이다. 중산층 지원은 에너지 소비자들에게 잘못된 정책 신호를 보낼 가능성도 있다. 가스요금의 단계적 현실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소비 절감을 이끌지 못하면 결국 나중에 그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까닭이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정책 혼선이 생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7월엔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기재부 업무보고에서 “중산층과 서민층 세 부담 경감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며, 올해부터 고소득자 감세 절대액이 저소득자보다 큰 역진적인 소득세법 개정이 단행됐다. 소득세 최저세율(6%)과 바로 위 세율(15%) 적용 구간을 상향 조정하며 소득이 높을수록 세금 부담도 많이 줄어들게 됐다. 이 방침은 당시 기재부 안에서도 이견이 있었으나 결국 대통령 의중이 그대로 관철됐다. 대기업의 반도체 시설투자액 세액 공제율 상향(8→15%) 역시 윤 대통령 주문에 기재부 입장이 뒤집힌 대표적인 사례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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