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윤희 칼럼] 아이낳을 결심 못하게 만드는 사회

심윤희 기자(allegory@mk.co.kr) 입력 2023. 2. 8. 17:24 수정 2023. 2. 8.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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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정 양립 힘든 현실 여전
돈으로 아이를 살 수는 없다
길잃고 위축된 저출산委
파격적 해법 내놓을수 있나

대한민국에서 아기가 가장 많이 태어난 해는 1971년이었다. 무려 102만4774명. 나도 '1971 돼지띠'들과 함께 이 땅에 왔다. 합계출산율은 4.54명. 정부가 1961년 산아제한 정책을 시작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던 셈이다. 1971년 당시 인구정책 슬로건은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국가정책에 부응해 둘만 낳았지만, 자녀가 4~5명인 가정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그 후 산아제한 정책 효과는 놀랍도록 빠르게 나타났다. 계몽과 함께 불임시술 가정에 대한 생계비 지원 등 유인책이 힘을 발휘했다. 위기감을 느낀 정부가 출산억제 정책을 폐기한 것은 합계출산율이 1.4명으로 주저앉은 1996년이었다. 그러나 한 번 꺾인 출산율은 계속 곤두박질쳤다. 급기야 2021년 합계출산율은 0.8명.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까지 한국의 '인구 붕괴'를 우려했을 정도다.

지난 60년간의 출산율 하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뭘까. 임신·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인식 변화가 아닐까 싶다. 산아제한 운동의 출발점은 1920년대 '피임할 권리'를 주장한 사회운동가 마거릿 생어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어머니가 될지 말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면 어떤 여성도 자유로울 수 없다"며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했다. 여성들이 교육을 통해 '자발적인 모성' 개념을 체화하면서 출산을 더 이상 당위로 여기지 않게 된 것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들고, 경력 단절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출산을 꺼리게 만든다. 국공립 보육시설 부족, 주택가격 상승, 사교육비 증가 역시 장애물이다. 정부는 저출산을 국가의 경제 기반을 흔들 위기로 접근한다. 나라가 망할 지경이니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국가 경쟁력을 위해 내 경쟁력을 포기할 여성은 없다.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면 지금껏 해온 출산 장려 정책으로는 어림도 없다. 2006년부터 15년간 380조원을 퍼부었지만 인구절벽은 더 심각해졌다. 돈으로 아이를 살 수 없다는 게 입증된 셈이다.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컨트롤타워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2005년 출범시켰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았지만 매번 국정 우선순위에서 밀렸고 정책은 실패했다. 최근 나경원 전 의원이 저출산위 부위원장을 맡아 영향력 발휘를 기대했으나 대출을 탕감하는 '헝가리 모델'을 언급했다가 해임되면서 저출산 정책은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악용 논란도 있지만 이 정책은 1.24명까지 떨어졌던 헝가리 합계출산율을 2020년 1.52명으로 끌어올렸다. 실험적인 정책이라고 예단해 검토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할 것은 출산율을 반등시킨 국가들의 정책이다. 일본은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프랑스를 본떠 자녀가 많을수록 세금을 깎아주는 'N분 N승' 제도 도입을 논의 중이다. 스웨덴은 '부모 보험제도'를 통해 육아휴직 급여를 실제 임금 수준으로 높였고, 480일간 육아휴직을 허용하되 90일을 아버지가 사용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선진국의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과 출산율이 동시에 높은 것은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탄탄한 제도 덕이다. 외신들은 2021년 출산율(0.8명)이 발표되자 "한국은 여전히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인구정책을 국가 어젠다로 끌어올리려면 저출산위의 존재감과 영향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나경원 사태'로 위축된 상황에서 과연 도발적이고 전향적인 정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저출산의 저주'는 이미 시작됐다. 소아과·산부인과의 폐점이 줄잇고, 대학은 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 저출산 대책의 열쇠는 남성도 아이도 아닌 여성에게 있다. 100년 전 마거릿 생어가 여성들의 인식을 바꿔놓았듯, 여성들이 아이 낳을 결심을 하게 할 인구정책의 '코페르니쿠스적전환'이 필요하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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