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잘못된 약 처방과 복종
최근 한 대형 병원에 미리 예약한 검사를 받으러 갔다. 검사실 앞 간호사에게 이름을 얘기했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3~4분쯤 지났을까. 간호사가 오더니 "미안하다"고 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의사 선생님의 약 처방이 잘못됐다"고 했다. 검사 전에 먹을 시럽 제제의 약을 다시 처방받아야 하니 좀 더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수납도 한 번 더 해야 한다고 했다.
불편한 일이지만 그 간호사에게 감사하기로 했다. 의사 처방의 오류를 챙기는 성실한 간호사를 만난 것도 행운이다. 정신과 의사인 찰스 호플링이 주도한 실험에 따르면 그런 간호사는 극소수다. 실험에서 한 남성이 가짜 의사 역할을 맡았다. 병동 간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애스트로텐(astroten)이라는 이름의 약 20㎎을 환자에게 투약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이는 '전화 또는 얼굴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처방 지시를 받지 않는다'는 병원 규정 위반이었다. 약 용량도 과다했다. 20㎎은 약병에 적힌 최대 투여 용량의 두 배였다. 더욱이 그 약은 처방 가능한 약 리스트에도 없는 가짜 약이었다. 연구팀은 사전에 간호사 12명과 간호대 학생 21명에게 '그런 상황이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간호사는 10명, 학생은 21명 전원이 처방을 이행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실험 결과는 정반대였다. 간호사 22명 중 21명이 처방을 그대로 이행하려고 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간호사들이 의사의 권위에 순응하고 복종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조직에서 권위를 가진 권력자에게 의문을 제기하고 반대하면 벌을 받는다는 것을 직감으로 안다. 그래서 권위에 순응해 지시를 그대로 이행하게 된다. 그 지시가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지 않게 된다. 미국 에머리대 의과대학 연구팀의 실험은 이를 입증한다.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있는 사람들의 뇌를 fMRI로 스캔했더니, 뇌에서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영역의 스위치가 꺼져 있었다고 한다. 권위에 복종하는 순간, 인간은 의사결정 능력을 잃는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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