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평 “농업에 정치 개입땐 갈등만...철저히 경제논리로 풀어야”

정혁훈 전문기자(moneyjung@mk.co.kr) 2023. 2. 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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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소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장 매경 인터뷰
“단기적으론 힘들어도 정확한 길 가면 좋겠다”

장태평 대통령소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장(74)은 옛 경제기획원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기획원 출신 관료로는 드물게 농업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 사무관 시절엔 기획원에서 농업예산을 담당했고, 국장 땐 농림부에서 농업정책국장과 농업구조정책국장을 연달아 맡았다. 2008년 8월부터 2년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도 역임했다. 장관 시절엔 시장경제에 익숙한 경제관료답게 지원 일변도의 농업을 경쟁력 위주 농업으로 바꾸기 위해 다양한 개혁을 시도했다.

그가 새 정부의 첫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장으로 선임된 것만으로도 이 정부의 농정 방향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장 위원장이 취임한 직후 사무국 내에 농어민단체와 학계,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자유롭게 출입하며 소통할 수 있는 ‘제로 라운지’를 설치한 것도 조직문화가 자유로웠던 기획원 출신이라는 점이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다. 장 위원장은 최근 매일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 농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농업과 정치를 분리해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농업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장태평 대통령소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집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이충우기자>
―9년여 만에 공직으로 돌아왔는데.

▷농업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게 내 운명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마지막 봉사하는 자리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우리 농민들의 농업 기술도 상당하지만 농업 주변 기술들이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리고 충분한 자본이 있어서 지원 시스템을 잘 갖추기만 한다면 농업 발전을 위해 아주 좋은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사명감을 느낀다.

―우리 농업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인구 절벽과 고령화로 인한 세대 교체와 노동력 부족 문제, 크게 낙후한 우리 농업의 국제 경쟁력 문제, 식량 자급률 저하 문제, 그리고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 등 많은 과제가 있다. 예민한 현안으로는 쌀과 축산 등 농산물 가격 안정과 농가소득 문제 등도 있다. 이런 문제들을 정치적인 관점으로는 해결하기 힘들다. 오히려 농업 발전을 가로막고 서로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경제적이고 산업적인 관점에서 원칙적으로 대응해야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 단기적으로 힘들더라도 정확한 길을 갔으면 좋겠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시장 원리를 존중하는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 예를 들어 시장이 개방된 축산은 국내 축산 시장이 과거에 비해 축소된 것이 아니라 계속 확대돼 왔으며, 우리 축산 능력이 상당히 향상됐다. 앞으로 첨단기술을 더 적용하고 경영을 혁신해 현재 수입에 의존하는 부분까지 우리가 더 담당해야 한다. 쌀 지원 제도도 합리적으로 개선해 적절한 생산을 유도하고, 자급률이 미흡한 다른 작물이 증산될 수 있도록 지원해 곡물 자급률을 향상시켜야 한다. 이것이 농가소득을 늘리고, 식량안보도 확보하는 길이다. 그리고 농업 보조금과 정부 융자제도도 개선돼야 한다. 직불금이나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한 지출 등에 소요되는 불가피한 보조금은 유지돼야 하지만, 개별 농민들에게 선택적으로 지원하는 사업보조금 제도는 문제점과 실효성을 면밀히 검토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 정부 융자제도도 마찬가지다.

쌀 수요는 빠르게 줄어드는데
양곡관리법 인위적 가격 지지
쌀 과잉생산 해소에 도움 안돼
―남는 쌀에 대한 시장 격리를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이 논란인데.

▷정부의 인위적인 가격 지지를 법제화하면 쌀 과잉생산 문제는 더욱 악순환이 될 것이다. 쌀 수요가 빠르게 줄어드는 것을 감안한다면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정부의 쌀 관리 예산은 상상을 초월하고, 쌀 과잉 문제 해결은 점점 더 요원해질 것이다.

―쌀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가루쌀 정책이 묘수가 될 것 같다. 일반 쌀 재배 면적을 줄이면서 동시에 밀가루를 대체할 수 있어 쌀 공급과잉을 완화하면서 곡물 자급률은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반 벼에 비해 재배 기간이 짧아 이모작을 늘릴 수 있는 것도 곡물 자급률을 높일 수 있는 요인이다. 그다음으로 농민들이 쌀 대신 대체 작물을 재배해도 충분한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꾸준히 구사할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는 쌀을 정치재가 아닌 경제재로 바라보고, 쌀 수급을 시장 기능에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

장태평 대통령소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최근 서울 종로구 집무실에서 가진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답변하고 있다.<이충우 기자>
농업은 이제 하나의 산업
개인 아닌 기업형 육성 필요
―농업을 산업으로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농촌진흥청에서 매년 농가별·작목별 소득조사를 한다. 어떤 작목을 재배하느냐에 따라 소득에 큰 차이가 나고, 같은 작목을 재배하더라도 농가에 따라 소득이 천차만별이다. 노지 재배뿐만이 아니라 비닐하우스나 유리온실 같은 시설 농업도 누가 운영하느냐에 따라 단위면적당 소득에 2~3배 정도 차이가 나기도 한다. 이제 농업을 농사로 봐서는 곤란하다. 농업은 산업이다. 경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과가 달라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기업형 농업을 강조하는 배경은.

▷농민들이 개인으로 농업을 하는 것보다는 기업을 만들어 농업을 하면 훨씬 효율적이다. 기업을 설립하면 주변 농업인들이 지분 참여를 할 수 있고, 해당 기업에 근로자로 채용될 수도 있다. 지금 영농조합법인이나 농업회사법인도 바로 그런 기업이다. 기업이 활성화되면 투자와 기술이 농업계로 유입될 수 있고, 일자리 창출 효과도 크다. 그리고 종자, 농자재, 첨단시설 개발 등도 가속될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기업이 농민들과 상생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모델은 해외 농업 시장을 개척하는 데도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농업에 첨단기술 접목 갈수록 활기
보조금 대신 민감금융 활성화해야
―그러자면 투자가 필요한데.

▷이제는 농업에도 다양한 첨단기술이 접목되고 있고, 우수한 인재도 필요한 만큼 정부 보조금이 아니라 민간금융을 활용한 지원이 활성화돼야 한다. 현재는 정부의 직접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시설자금과 운영자금 규모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민간 자금이 자유롭게 유입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유럽 등 선진국에서처럼 금융기관에 대한 이차 보전을 통해 농업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면 오히려 지원 규모를 훨씬 키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장태평 대통령소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장이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답변하고 있다.<이충우 기자>
―요즘은 농식품 분야에 스타트업도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그렇다. 과거 IT나 바이오 산업에 창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정부와 민간금융의 과감한 투자가 있었다. 요즈음 첨단기술을 접목해서 농업을 하려는 시도들이 많은데, 이들에게 정부가 마중물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관련 스타트업에 민간금융의 투자가 활성화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농식품부 장관 시절 농식품 스타트업 투자를 늘리기 위해 농식품투자조합법을 만들어 모태펀드를 조성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모태펀드 도입 10년이 넘었다. 개선할 점은.

▷기본적으로 펀드 규모를 크게 확대할 수 있도록 예산 지원을 늘려야 한다. 그리고 투자조합을 조성할 때 성격에 따라서 다양하게 운용될 수 있도록 자율성을 갖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 규모도 다양하게 하고, 새로 창업한 스타트업은 물론 기존 기업의 새로운 사업에도 투자할 수 있도록 신축성 있게 운영하면 좋겠다. 네덜란드 라보뱅크는 농업인들에게 자금을 지원할 때도 과감하고 적극적이지만, 사업 운영과정에서도 기술과 경영 등 다양한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 우리나라 모태펀드 기반 투자조합들도 스타트업에 대해 경영 컨설팅과 정보 제공 등 다양한 지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으면 한다.

K팝처럼 K농업 확산되려면
정부 지원시스템 혁신 필요
―-스마트 농업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스마트 농업이 농업 전 분야에서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스마트팜 하면 시설농업을 떠올리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센서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다양한 첨단 기술을 적용했을 때의 효과는 노지 배재에서 더 클 수도 있다. 생육 상태에 따라 물과 비료 등을 자동으로 조절하고, 드론으로 파종하거나 방제를 하는 이른바 정밀농업을 노지에 적용할 경우 생산성 제고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난다. 비닐하우스나 유리온실 같은 시설농업에서의 스마트 농업 효과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 등장하고 있는 AI농업은 미래 농업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농업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AI를 통하여 평생 농업에 종사한 사람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우수 인재들이 농업계로 유입될 조건이 만들어졌다고 본다.

―-정부 역할이 중요할 것 같다.

▷그렇다. 새로운 농업의 시대에 맞게 정부 거버넌스를 획기적으로 바꿀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행정 시스템과 농업 관련 제도를 시대에 맞게 바꾸자는 것이다. 농업 분야 연구개발(R&D) 지원 조직을 새롭게 바꾸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나라 청년들이 K팝이나 골프 등으로 세계 시장을 호령하듯이 농수산식품 분야에서도 우수한 청년들이 화끈하게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 분야의 정부 지원 시스템을 혁신시켰으면 좋겠다.

농진청, 농산업진흥 서비스기관으로
농협은 진정한 ‘농업인의 농협’ 되길
―-R&D 혁신의 방향은.

▷지금 농업 분야 R&D기관은 농촌진흥청과 그 산하 국립농업과학원, 국립식량과학원,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국립축산과학원 4개 연구기관이 있다. 전부가 공무원 조직이다. 장기적으로는 다른 산업계의 정부 연구소처럼 농진청 산하 연구기관을 별도 연구소로 독립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농진청은 농업기술진흥원 및 광역시·도 농업기술원과 합쳐 농산업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원스톱 서비스 기관으로 거듭나면 어떨까 한다. 일반 산업 분야의 중소기업진흥공단 역할처럼 말이다.

―-농협의 역할은 어때야 하나.

▷농식품부에서 국장 때 두 차례, 장관 때 두 차례 농협 개혁안을 실행했다. 농협은 우리 농업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농협 개혁을 추진했던 목적은 시종일관 농협을 실질적으로 ‘농업인의 농협’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 농협이 잘 되어야 농업이 잘 된다. 앞으로 농협이 우리 농업인들을 위해 공동출하, 공동구매, 교육 지도 사업에 더욱 효과적인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농촌인력 부족 문제 등 현안으로 떠오르는 과제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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