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 완전정복] 손가락으로 꽃 그리는 거리화가, MZ세대 영웅되다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3. 2. 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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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카쿠 아야코
독학으로 그린 천진한 소녀
화사한 색상·귀여움으로 인기
MZ 여성작가 판매 1위 등극
국내 경매서도 낙찰총액 급등
2022년 약 18억원의 최고가로 일본 SBI 경매에서 낙찰된 '무제' . 【사진 제공=SBI】

지난해 11월 24일 롯카쿠 아야코는 런던의 스튜디오에서 인스타그램으로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생중계했습니다. 키 156㎝인 작은 몸집의 작가는 거대한 캔버스 앞에 서서 다섯 손가락을 자유롭게 사용해 아크릴 물감을 섞고 문지르며 그림을 완성해 나갑니다. 화사하게 꽃이 만발한 캔버스에 숨어 있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긴 팔다리의 눈이 큰 소녀. 수천 명이 보는 가운데 소녀의 눈이 채색되며 그림은 완성됐고, 즉시 미술 플랫폼 아방아르테(Avant Arte)에서 에디션 판매가 시작됐습니다. 단돈 500유로에 만 하루 동안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습니다.

1982년생으로 일본 지바시에서 태어난 롯카쿠는 팬들과의 소통에 거리낌이 없는 작가입니다. 인공지능(AI)이 그림을 그리는 시대에, 전통적인 몸의 그림으로 MZ세대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그림을 그려온 롯카쿠는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업하는 독학 화가입니다. 거리의 예술가(Street Artist)가 모이는 곳에서 손그림 퍼포먼스를 펼치는 '거리의 화가'였습니다.

이 무명 화가가 일약 스타가 된 것은 2003년 무라카미 다카시가 설립한 게이사이 아트페어에서 신진 작가로 뽑히고, 2006년 스카우트상을 받은 게 계기였습니다. 같은 해 아트 바젤에 출품된 작품이 완판되면서 일약 인기 작가로 도약했습니다. 2010년부터 베를린에 거주하며 도쿄는 물론이고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 등을 누비면서 개인전을 왕성하게 개최했고, 작년 5월에는 쾨니히 런던에서 성대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쾨니히 전시를 앞두고 아트넷 인터뷰에서 롯카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 제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저 자신을 위해서만 그림을 그렸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내 그림을 집에 걸어놓았을 때 얼마나 행복한지 말할 때 저는 더 행복해집니다. 이 긍정적인 에너지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작년 국내 경매시장에서 롯카쿠는 독보적인 스타가 됐습니다. 전년보다 낙찰총액이 무려 48.2% 늘어난 약 56억1000만원어치를 팔아 12위에서 5위까지 순위가 수직 상승했습니다. 급랭한 시장에서도 2위에 오른 구사마 야요이와 함께 일본 미술의 인기를 쌍끌이했습니다. 아트프라이스닷컴의 '2022 초현대미술 리포트'에서도 2021년 하반기~2022년 상반기에 초현대미술 작가(40세 이하) 낙찰총액에서 여성 작가 중 가장 높은 순위인 2위에 당당하게 올랐습니다. 작년 5월 크리스티 홍콩에선 약 17억원에 '무제'가, 7월에는 일본 SBI 옥션에서 '무제'가 1억8400만엔(약 18억원)에 연이어 낙찰되며 기록 경신을 이어 갔습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MZ세대 작가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천진난만한 화풍과 무엇보다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움이 인기 비결입니다. 아이 상상력의 무한함에 매료된 작가는 회화의 전통을 벗어납니다.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고 캔버스 외에도 골판지나 나무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합니다. 롯카쿠의 그림은 구상과 추상 중 어느 한쪽으로 분류하기가 어렵습니다. 마크 로스코와 사이 트웜블리의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하는 작가는 서양의 추상화와 일본 가와이(귀여운 그림) 문화의 영향을 자연스럽게 혼합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급등한 가격과 미디어의 환호, 폭발적 생산량은 거품 염려를 낳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롯카쿠는 일본 팝아트의 대부인 다카시(61)가 발탁했고, 나라 요시토모(64)의 '가와이' 예술의 적자이자, 구사마 야요이(93) 이후 여성 작가 계보를 잇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대교체가 필요한 일본 현대미술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셈입니다. 롯카쿠의 가치는 일본 미술의 바로미터로 시장에서 상징성을 띨 가능성이 큰 이유입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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