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회-교육청, 이번엔 ‘농촌유학’ 갈등···학생·학부모는 불안

김나연 기자 2023. 2. 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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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 ‘농촌유학’ 예산 0원에도 계속 추진
시의회 국민의힘 ‘감사 청구안’ 제출
농촌유학 예정 학생·학부모 “계획 틀어질까 불안”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해 12월22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315회 정례회 제7차 본회의에서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서정화씨(41)는 오는 새 학기에 초등학생 3형제와 전북 정읍초등학교로 ‘농촌유학’을 떠날 계획이다. 서씨는 “아이들과 (농촌유학을 갈) 학교에 다녀와 보니 서울과 달리 넓은 잔디 운동장과 예쁘게 꾸며진 공간이 많더라”며 “아이들은 정읍으로 내려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서씨는 최근 서울시교육청에서 ‘예산이 확보되지 못할 경우 2023학년도 농촌유학 지원금 지급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정읍행 준비를 하던 와중에 너무 갑작스러웠다”며 “마음 한 쪽에 불안감을 갖고 정읍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의 아빠인 A씨(52)는 올해 자녀와 함께 전북 임실군으로 농촌유학을 떠나기 위해 지난해 말 직장을 그만뒀다. A씨는 “아이는 이미 (전북에) 내려가서 선생님도 뵙고 친구들을 만났다. 기존에 다니던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한 상태”라고 했다. 이어 “아이와의 약속을 어떻게든 지키고 싶어 불안하지만 어렵게 농촌유학을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달 12일 농촌유학 신청 학부모들에게 보낸 안내 문자. 서정화씨 제공

농촌유학은 서울 소재 초·중학교 학생이 6개월 이상 농촌 지역 학교로 전학을 가 ‘텃밭가꾸기’ ‘전통놀이’ 등 생태·농촌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서울시교육청은 2021년부터 전남·전북교육청과 협약을 맺고 농촌유학을 떠나는 학생에 초기 정착금과 매달 유학비로 30만~60만원을 지원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1학기에 223명, 2학기에 263명이 농촌유학을 떠났다.

지난해 말 서울시의회는 서울시교육청의 올해 예산 중 5688억원을 삭감했다. 이 중에는 농촌유학 비용으로 쓰는 생태전환기금 10억원도 포함됐다. 예산 삭감에도 서울시교육청은 농촌유학 모집 공고를 내는 등 사업을 예정대로 진행했다.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의원 전원은 지난 6일 서울시교육청 농촌유학 사업에 대한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안’을 시의회에 제출해 다시 제동을 걸었다. 농촌유학을 준비하다 ‘고래 싸움’에 낀 학생과 학부모는 현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서정화씨는 “(농촌유학을 가면) 환경이 아예 바뀌는 것이다 보니 신경 쓸 게 많은데 사업이 불안정하다고 하니 더 부담”이라고 했다. 이어 “당연히 지원될 거라고 약속됐던 것들이 지켜지지 않게 되니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관련 예산이 삭감됐지만 사업 종료가 결정된 것은 아니다. 최호정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의원은 8일 기자와 통화에서 “의회에서 예산이 삭감된 사업을 강행하는 게 올바른지에 대한 감사를 청구한 것”이라며 “사업을 아예 못 하게 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추경을 통해 보충하는 방향 등 다양한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사업 공고 자체는 했던 것으로 안다”며 “의회와 소통해 접점을 빨리 찾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지역 교육청에서 예산을 더 부담하거나 농촌소멸기금을 활용하는 방안 등을 통해 예산을 최대한 확보할 것”이라며 “감사 결과 문제가 없다면 진행이 안 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의회와 교육청의 갈등으로 사업이 아예 중단된 사례도 있다. 학교 밖 청소년 교육참여수당 예산 8억5000만원이 전액 삭감되면서 수당으로 생계나 학원비를 의지했던 청소년들이 당장 타격을 입었다. 교육후견인제 사업 예산 4억원도 전부 깎여 위기아동에게 1대 1로 제공되던 지원이 끊겼다. 전자칠판과 교육용 스마트기기 지급 사업(디벗) 등 조희연 교육감의 역점 사업 추진 여부도 불투명해지면서 서울 학생들이 IT교육 등에서 뒤처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학생 인권 신장을 이끌어왔다고 평가받는 서울 학생인권조례도 폐지 위기에 놓여있다. 서울시의회는 서울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거나 일부 조항을 수정한 ‘학교구성원 인권증진 조례안’으로 대체할 방침이다. 기존 학생인권조례와 달리 이 조례안에는 학생 소지품 검사를 금지한 ‘사생활의 자유’ 조항이 없다. 조 교육감은 7일 기자간담회에서 “과거로 퇴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 줄어든 서울시교육청 예산에 사각지대 아이들 지원 줄줄이 끊겼다
     https://www.khan.co.kr/national/education/article/202301041644001


☞ 두발 단속·일제 소지품 검사 부활하나···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 위기
     https://www.khan.co.kr/national/education/article/202301261608001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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