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현장] '아톰 할배'들이 꿈꾼 원전 자립, 23년 뒤 현실로 만든 그 후예들

손현덕 기자(ubsohn@mk.co.kr) 입력 2023. 2. 8. 16:06 수정 2023. 2. 8.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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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장
설 연휴인 지난달 23일 매서운 추위가 몰아닥치기 하루 전이었다. 다행히 아침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도 없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왼쪽)과 주한규 원자력연구원 원장. 대한민국 원전을 책임지는 두 사람은 자전거 마니아다. 틈만 나면 자전거 타고 전국을 일주하는데 이날은 가볍게 한강변을 달렸다. 운동을 마치고 서울 충정로에 위치한 방사선보건원에서 별도 시간을 내 대담을 가졌다. <박형기 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탈원전. 그래도 우리에겐 원자력의 날이라는 게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을 수출한 2009년 12월 27일을 기념한다. 이를 계기로 원자력 안전의 중요성도 알릴 겸 명칭을 원자력 안전 및 진흥의 날로 정했다. 그러나 나는 대한민국 원전에 관한 한 이날보다 훨씬 의미 있는 날이 있다고 본다. 그게 12월 14일. 역사의 시곗바늘을 37년 돌려 1986년으로 간다.

대덕연구단지를 향하는 차가 북대전IC를 빠져나오면 오른쪽에 큰 간판이 하나 보인다. 한국 원자력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한국원자력연구원(당시는 연구소)이다. 그날 이곳에선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미국으로 출장 가는 연구원 소속 44명을 위한 일종의 환송식인데 화기애애한 축하 자리가 아니라 비장하기 이를 데 없는 출정식이었다. 장소는 미국 동부 코네티컷주에 위치한 윈저라는 소도시. 거기엔 훗날 웨스팅하우스로 합병된 세계 최고의 원전 회사인 컴버스천 엔지니어링(CE)의 설계센터가 있었다. 대한민국 원자력 전사들은 그곳에 2년간 파견 근무하면서 원자로 계통 설계 기술을 배워와야만 했다.

출정식엔 총사령관 격인 고(故) 한필순 소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필(必) 설계 기술 자립'이라고 쓰인 액자가 있었다. 모두가 그 액자에 쓰인 글을 삼창했다. 그 결연한 외침이 추위를 녹였다. 그들은 설계 기술 자립을 이루지 못하면 "태평양에 빠져 죽겠다"며 서로를 얼싸안았다. 그렇게 3년간 연인원 200여 명의 한국 기술자들이 미국으로 떠났다.

한국이 오늘날 원전강국으로 우뚝 서기까지에는 숱한 우여곡절이 있다. 1978년 이 땅에 세워진 첫 원전, 고리1호기는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지어서 우리에겐 열쇠만 준 발전소이다. 우리가 제공한 건 자갈과 시멘트가 전부였다. 이때부터 원자력을 공부한 대한의 청춘들 가슴 한복판엔 기술자립이라는 오기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59년 원자력연구원 창설 멤버로 무려 70년을 원자력에 매달린 이창건 박사. 계속되는 야근과 가슴 죄어오는 압박감 속에서도 연구를 계속하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서경수 박사.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적이 있다"며 어렵사리 취득한 미국시민권을 포기하고 고국을 찾았던 장인순, 김병구 박사. 그리고 당국으로부터 온갖 조사 다 받은 한 소장. 우리는 이들을 '아톰 할배'라 부른다.

사실 1986년 그날의 주인공은 한 소장도, 44명의 파견 직원도 아닌 이 액자였다. 원자력 설계 기술이 없으면 노예국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우리 한번 미쳐보자"는 자발적 만세삼창을 만들어냈다.

이날의 출정식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원전 자립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머나먼 이국땅에서 배워온 원자로 계통 설계 기술은 나중에 '원자력 한국'의 토대가 된다. 이들의 노력과 헌신은 제3세대 신형 원자로 APR1400을 잉태했고 그것이 결국 수출로 이어졌다. 1986년 12월 14일의 출정식은 23년이 지나 2009년 12월 27일 첫아이를 출산했다. 그리고 3년이 채 안된 2012년 7월 4일 둘째 아이를 출산하게 되는데 그게 SMART 원전이었다. 영어로 영리하다고 해서 스마트가 아니라 System-integrated Modular Advanced ReacTor, 즉 시스템을 통합한 소형 모듈형 원자로로 2012년 표준설계 인가를 받았다. 세계 최초다.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글로벌 원전강국이 된 날이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다. 그것이 오는 2028년 인가를 목표로 하는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두 번째 아이인 스마트원전을 세계로 수출하고 세 번째 아이 iSMR의 산파역을 맡은 핵심 인물이 있다. 그들은 공교롭게도 1986년 같은 해 원자력연구원에 입사한다. 밖에서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터졌고, 안에서는 원전 자립을 외쳤던 바로 그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황주호 사장과 원자력연구원의 주한규 원장이다. 황 사장은 미국 조지아공과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주 원장은 서울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나이는 황 사장이 여섯 살 위지만 입사는 주 원장이 일곱 달 빠르다. 황 사장은 그 후 경희대 교수로 자리를 옮기는데 그때까지 5년간 두 사람은 한솥밥을 먹었다. 전공은 달랐지만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황 사장은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맡았고, 주 원장은 원자로 설계 담당이었다. 원전의 맨 처음에 주 원장이, 맨 마지막에 황 사장이 있었다. 1986년 출정식이 있던 날 미국으로 파견 가는 직원들 모두가 현관 앞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에 오른쪽 끝 구석 언저리에 주 원장의 앳된 얼굴이 있다. 그는 2년 후 돌아와 원자로 설계에 관한 중요한 성과를 올리게 된다. 그게 영광(현 한빛) 3·4호기 프로젝트였다.

세월은 흘러 2009년 우리나라 최초의 원전 수출이 이뤄졌을 때 대한민국은 이 두 사람의 공로를 기억했다. 1년 전인 2008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황 사장을 청와대로 불렀다. 그 자리엔 김중수 경제수석과 이재훈 산업부 차관이 있었다. 이미 그때 MB는 원전 수출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황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원전은 대통령의 비즈니스"라고. 그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분과위원장으로서 이 거대 프로젝트에 힘을 보탰다. 이듬해 그는 철탑산업훈장을 받는다. 주 원장은 UAE에 수출한 APR1400의 핵심 설계 코드를 국산화하는 데 한몫했다. 한국형 원전이 있기 전 우리는 미국 CE에서 개발한 모델을 개선해 한국표준형원전(KSNP·Korean Standard Nuclear Plant)을 탄생시켰고 해외사업을 위해 그 브랜드를 OPR(Optimized Power Reactor) 1000이라고 했다. 주 원장은 "이 원전은 미국의 설계 코드를 그대로 썼다"면서 "이는 우리는 원리를 모르고 그 원리가 담긴 블랙박스를 사용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주 원장이 이걸 우리 것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 역시 이듬해 원자력학회에서 수여하는 두산원자력기술상을 받게 된다.

이제 둘째 아이 출산. 스마트원전이다. 표준설계 인가를 받은 건 2012년이지만 이 프로젝트의 출발은 1997년이었다. 당시 원전을 하는 세계 여러 국가가 중소형 원자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러시아가 전력질주를 했고 심지어 남미 아르헨티나에서도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개발 선봉에 주 원장이 있었다.

중소형 원전에 목을 맨 가장 큰 이유는 안전이다. 원자력발전은 핵심이 되는 원자로라는 게 있고 여기서 발생하는 열로 증기를 만들고 이 증기가 전기를 생산하는 구조다. 그래서 원자로와 증기발전 부분을 둘로 나누고 이를 연결하는 배관이 있다. 어느 누구도 상상하기 싫은 최악의 사고 가능성은 바로 배관이 끊어지는 거다. 그러면 물이 순환하지 못해 원자로를 냉각시키지 못하고 결국 노심이 녹아내리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다. 그게 이른바 LOCA(Loss Of Coolant Accident)라는 냉각재 상실 사고이다. 이는 미사일이 원전을 때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미사일, 심지어 핵공격을 받아도 원자로의 격납설비만 튼튼하면 방사능 유출 사고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노심이 녹는다면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 원전 개발에 말로는 다 못할 숱한 난관이 있었다. 자금줄이 막히고 중간중간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등 시어머니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황 사장은 스마트원전에 관한 한 든든한 우군이었다.

그러나 이런 난관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휘몰아친 탈원전 폭풍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통령 선거가 있기 전인 2016년 말부터 이들은 위기를 직감한다. 그해 겨울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영화 '판도라'가 개봉된다. 비현실적 허구가 현실적 사실을 압살했다. 당시 서울대 교수였던 주 원장이 맞섰다. "스카이다이버가 낙하할 때 주낙하산이 안 펴지면 보조낙하산을 편다. 물론 그것도 고장 나 안 펴질 수는 있다. 그런데 원전에는 비상냉각펌프 등 다양한 보조낙하산이 있다. 최소 4개는 있다. 그 4개가 다 안 펴진다고 전제하고 만든 영화다."

당시 원자력학회장이었던 황 사장은 5명의 대통령 후보 중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고 모두가 탈원전을 주장한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는 대통령 선거 기간 중 '대안 없는 탈핵 주장에 대한 학회의 입장'이라는 성명서를 낸다. 2017년 3월 29일이었다. 그는 원전을 없애고 이를 신재생으로 대체하는 데 대한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열거하면서 현실적이고 책임감 있는 에너지 정책 수립을 촉구했다. 그는 "원전하는 사람들에겐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다"면서 "그러나 주위에선 좀 점잖게 있으라며 오히려 목소리 내는 걸 말렸다"고 당시 엄혹했던 상황을 회상한다.

주 원장이 바통을 이어받는다. 그는 23개 대학 230여 명의 교수들 의견을 모아 6월 1일 성명서를 발표한다. 그리고 7월 5일 한 번 더 세를 불려 탈원전 정책 추진을 중단하라고 촉구한다. 60개 대학에서 417명의 교수가 이름을 올렸다. 문 정부가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을 때였다. 이 원전이 바로 우리가 UAE에 수출한 바로 그 모델, APR1400이었다. 이 두 사람의 용기 있는 행동이 없었다면 어쩌면 신고리 원전 공사는 중단되고 대한민국 원자력발전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을지도 모를 일이다.

윤석열 정부로 정권이 바뀐 후 대한민국 원전 정책은 다시 제 궤도에 올라탔다. 탈원전의 잔재가 말끔히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만큼은 거의 180도 돌아섰다. 그 시절 탈원전을 극렬히 반대했던 두 사람이 한수원 사장과 원자력연구원장으로 임명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들 앞에 놓인 과제가 크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스마트원전의 수출이고, 다른 하나는 iSMR의 개발이다. 얼마 후면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손님이 온다. 오일샌드가 많은 앨버타주는 샌드오일 채굴에 필요한 전력과 증기를 비화석 에너지로 공급하려고 하는데 우리의 스마트원전이 그야말로 딱이다.

그리고 새로운 개념의 소형모듈원자로, 혁신형(Innovative)이란 이름을 앞에 붙인 iSMR이다. APR1400 같은 기존 대형 원자로의 100분의 1 크기의 원자로와 증기발생기를 하나의 용기에 집어넣은 꿈의 원자로다. 스마트원전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지만 원자력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 당시 기존 원자로 규제 요건 때문에 시도하지 못했던 중요한 개념을 실현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게 소위 무(無)붕산 기술. 자동차가 속도를 내기 위해선 역설적으로 브레이크가 필요하듯, 원자력발전에서도 노심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브레이크가 필요한데 중성자를 잡아먹는 제어봉과 붕산이 그것이다. 그중 붕산을 넣다 뺐다 하는 장치를 원자로에 설치하면 부피가 커진다. iSMR은 붕산을 사용하지 않고도 안전 정지가 가능하다. 또 격납건물도 없다. 밖에서 보면 원전은 돔 같은 외형에 가둬놓는데 iSMR엔 그게 없더라도 안전성 면에서 월등하게 설계돼 있다. 원자로 4개를 하나의 모듈로 붙일 수도 있어 전기출력이 680메가와트(170×4)까지 올라갈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출을 타진 중인 스마트원전(110×2)보다 4배는 높아 그만큼 경제성도 좋다. 혁신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 주한규 원자력연구원장. 대한민국 원자력의 기틀을 다진 아톰 할배들의 자랑스러운 후배들이다. 비록 문 정부 5년 동안 탈원전으로 허송세월하지 않았으면 벌써 세계를 제패했을 그런 원자로이지만 우리에겐 그래도 아직 시간이 있고 실력이 있다. 자전거 마니아이기도 한 두 사람이 한강변을 힘차게 질주하는 모습에서 한국 원자력의 밝은 미래를 느껴본다.

'사람과 현장'은…

머리보다는 가슴, 가슴보다는 발로 쓰는 글을 좋아한다. 경제기사가 따분한 이유는 발로 쓰지 않고 머리로 써서 그렇다. 발품을 팔아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쏘다니다 보면 글이 나온다.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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