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매니아들이 이태원에 몰려간 까닭은...

85년생 美 작가 타이렐 윈스턴

26일까지 가나아트보광 전시

‘현대의 신화’스포츠로 개념미술

뒤샹 등 세련된 오마주로 눈길

타이렐 윈스턴 전시 전경<사진제공=가나아트 보광>

바람 빠진 농구공과 헤진 농구 골망, 립스틱 자국이 선명한 담배꽁초 등으로 예술작품을 만들자 헐렁한 운동복 차림의 스포츠 매니아들이 이태원의 낯선 갤러리에 모여들었다.

서울 용산구 가나아트 보광에서 미국 LA출신 개념미술 작가 타이렐 윈스턴(38)의 국내 첫 개인전 ‘Stealing Signs(서명 훔치기)’ 모습이다. 오랫동안 방치됐던 은행 건물을 날것 그대로 개조한 갤러리 공간과 어울린다.

버려진 농구공을 배열하는 대표 작품 ‘Build Me Up Buttercup’(2022) 앞에 선 타이렐 윈스턴 <사진제공=가나아트 보광>

전시장에 들어서면 마르셀 뒤샹(1887~1968)의 첫 번째 레디메이드 조각 ‘자전거 바퀴’(1913)를 오마주한 ‘Trace Elements’(2022)부터 눈에 들어온다. 자전거 바퀴가 아니라 농구 골대가 스툴 위에 세워진 형체다. 2021년 요절한 천재 패션디자이너 버질 아블로(1980~2021)가 소장한 것으로 알려진 작품의 연작이다. 애초 아블로와 2인전을 꿈꿔왔던 작가는 그를 추모하는 마음에서 그 작품을 놓았다. 아블로의 ‘3%의 미학’처럼 작가는 기성품을 살짝 비틀어 영리하게 작품화하고 있다.

독학으로 작가가 된 윈스턴은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단기 일자리조차 구하기 힘들 정도로 막막한 시절을 견뎌내야 했다. 당시 자기 모습이 마치 ‘인간쓰레기’ 같다고 여기던 때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우연히 접한 ‘다다이즘(Dadaism)’ 전시가 영감을 던졌다. 이때부터 브루클린과 맨해튼의 버려진 물건에 담긴 인간 개개인의 역사를 창의적으로 결합하는 ‘아상블라주’ 기법으로 희망과 절망, 부활과 재생, 생명력과 무모함이란 주제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뉴욕 양키스 로고를 변형한 회화 작품 Dogman (2022) <사진제공=가나아트 보광>

그는 뉴욕의 바 앞길에서 퇴근 후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한 모금 피웠을 담배꽁초를 줍고, 길거리 공원에서 스트레스를 날리려고 굴리던 농구공 혹은 시커멓고 헤진 농구골망을 보며 개개인의 이야기를 읽었다. 지난해 미국 크랜브룩미술관에서 처음 미술관 전시를 열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그의 오프닝파티 때는 그가 리복과 컬래버레이션한 하얀 운동화 ‘Club C 85’를 신고 와서 사인을 요청하는 젊은이들도 목격됐다.

윈스턴은 “멋진 도시 서울에서 전시를 열어 방문하니 기쁘다”며 “스포츠와 예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분야에 걸쳐 작업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고 했다.

Build Me Up Buttercup (2022) <사진제공=가나아트 보광>

데이베드 해먼스의 ‘Untitled(Night Train)’(1989)를 창의적으로 재해석한 타이렐 윈스턴의 작품 ‘Those Are Some Big Holes in Your Underwear’(2022) <사진제공=가나아트 보광>

스포츠잡지로 작업한 타이렐 윈스턴의 콜라주 작품 ‘ Beware of this Dog’ <사진제공=가나아트 보광>

최근 회화로 확장 중인 작가는 전시 제목과 통하는 ‘Punishment Paintings’ 연작도 선보였다. ‘Bigger than the Pope(Michael Jordan)(교황보다 큰 마이클 조던)’(2022) 등 유명 선수의 자필 서명을 반복적으로 쓰고 지우는 방식으로 표현해 유명인에 대한 집착을 꼬집는 작품이다. 버려진 성조기를 하얗게 칠해 걸어둔 작품 ‘White Trash(백인 쓰레기)’ 제목에서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도 읽힌다. 낡은 농구 골망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골망으로 교체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도 현지 지역사회에서 화제가 됐다.

전시는 26일까지.

타이렐 윈스턴 전시 전경 <사진제공=가나아트 보광>

타이렐 윈스턴 전시 전경 <사진제공=가나아트 보광>

가나아트 보광 전시장에서 타이렐 윈스턴

가나아트 보광 전시장에서 타이렐 윈스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