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펀드 손 잡은 에스엠… 이수만, 경영권도 불안
라이크기획·관계사 문제까지 수면위로 급부상
경영환경 급변한 SM엔터… “이수만 지위 위협”
SM엔터테인먼트가 지난 3일 회사 창업자인 이수만 총괄프로듀서 체제에서 벗어나 여러 개의 제작센터와 레이블이 이끄는 ‘멀티 프로듀싱’ 체계를 갖추기로 결정했다. 독립성을 가진 제작센터 5개를 신설해 각 아티스트를 배분하고, 사내외 레이블을 만들어 음악적 저변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아티스트들의 체계적인 활동을 지원하자는 취지이지만, 사실상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이 프로듀서와 결별 수순을 밟았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이 PD는 거시적 방향성 뿐 아니라 가사·의상·안무 등 디테일을 챙기면서 SM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이사진을 비롯해 이 PD와 혈연관계인 이성수 공동대표마저 그에게 등을 돌린 이유로 관심이 쏠리고 있다.
◇ “KB자산운용과는 달랐다”… 얼라인 공세로 변화 시작
업계에서는 SM의 지분 1.1%를 보유하고 있는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의 공세로 모든 변화가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RR) 상무였던 이창환 대표가 지난 2021년 9월 설립한 행동주의 펀드다. 지배구조의 문제로 인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해 저평가된 국내 상장주식의 가치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얼라인은 SM에 직함을 두고 있지 않은 이 PD가 개인회사 ‘라이크기획’을 통해 SM매출의 6%가량을 수수료로 수취하고 있는 점을 문제 삼았다. 연간 영업이익의 최대 46%를 프로듀싱 용역으로 가져가는 구조로 SM의 주식가치가 저평가돼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문제는 지난 2019년 KB자산운용의 주주제안으로 이미 수면위로 올라왔던 내용이다. 당시 KB자산운용은 ▲라이크기획과 SM엔터의 합병 ▲배당성향 30%의 주주정책 수립 등을 제안하며 표 대결 채비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KB자산운용은 종합자산운용사가 가진 한계로 행동주의 전략을 고수하지 못하고 돌연 보유 지분을 매도하며 퇴각을 결정했다.
얼라인은 KB자산운용과 달리 적극적인 캠페인을 펼치며 SM엔터를 압박했다. 작년 3월에는 라이크기획과의 프로듀서 용역 계약 종료를 요구하는 공개 주주서한을 SM측에 보냈고, 곧이어 열린 주주총회에서는 얼라인이 감사 후보로 추천한 곽준호 감사 선임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주주제안 감사 선임에는 유효의결권 중 81%가 찬성표를 던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얼라인파트너스가 다른 투자자들이 지적했던 라이크기획과 SM의 관계를 잘 파고들었다”면서 “이 전략이 성공하면서 이 PD의 처조카인 이성수 공동대표마저 등을 돌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라이크기획이 받은 1600억 논란… 관계사 문제까지 수면위로
곽준호 감사가 회사로 들어오면서 SM의 경영환경은 급변했다. 얼라인 측이 회사 내부사정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아티스트의 육성과 데뷔, 곡 선정, 헤어스타일까지 라이크기획을 통해 개입해온 이 총괄의 활동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얼라인의 공세에 시달리던 이사진과 이 PD의 사이는 점차 벌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라이크기획이 SM을 통해 수취한 수수료를 두고 논란이 불거졌다. 현재까지 SM이 라이크기획에 지급한 수수료는 약 1600억원에 달한다. 얼라인은 SM이 매년 수백억원을 라이크기획에 지급하면서 주주가치를 훼손했다고 주장하며 라이크기획과의 계약 종료를 주장했다.
이 PD가 보유한 관계사들과 SM의 거래도 제동이 걸렸다. SM은 콘서트 기획과 아티스트 굿즈 사업을 ‘드림메이커엔터테인먼트’와 ‘에스엠브랜드마케팅’ 등 관계사에 맡기고 있다. 브랜드마케팅의 경우 지분 41.3%를 이 PD가 보유하고 있으며, 드림메이커도 일부 지분을 이 PD와 가족 등이 보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공세에 시달리던 이사진은 결국 긴급 회동을 열어 얼라인 측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내부 검토 결과 이 PD가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얼라인이 작년 8월 SM 이사회를 상대로 주주 대표 소송을 검토하겠다고 압박한 것이 주효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얼라인이 제안한 개선안에는 라이크기획과의 계약 종료를 포함해 SM과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관계회사, 자회사와의 거래를 면밀히 검토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내부거래위원회’를 신설하는 방안도 담겨있었다. 이 조항이 모두 통과되면서 이 PD의 영향력은 크게 악화됐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 PD가 프로듀싱 용역 제공에 따라 대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받은 돈이 적정했느냐를 둘러싸고 판단이 엇갈릴 수 있다”면서 “SM이 라이크기획에 너무 많은 돈을 지급했다면 배임으로 볼 소지가 있다. 경영진도 이 부분을 고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최대주주 지위 위협받는 이수만… 카카오, 주식 취득하며 2대주주 등극
카카오가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SM 주식를 취득하면서 이 PD는 최대주주의 지위까지 위협받고 있다. SM 이사회는 지난 7일 긴급 이사회를 개최해 카카오에게 제3자 배정방식으로 약 1119억원 상당의 신주(123만주)와 약 1052억원 상당의 전환사채(보통수 전환 기준 114만주)를 발행하기로 결의했다.
작년 9월 말 공시된 SM의 주식 수와 신주·전환사채 인수 과정에 새롭게 발행된 주식 수를 감안하면 카카오가 확보한 SM의 지분은 9.1%다. 주요 주주 중에선 439만2368주를 보유한 이수만(16.8%) PD에 이어 두 번째로 지분이 많다. 국민연금공단(8.1%)과 KB자산운용(4.7%) 등이 뒤를 잇는다.
업계 관계자는 “카카오가 보유한 지분에 이 PD의 경영권 확대에 반대했던 KB자산운용 및 얼라인파트너스의 지분을 합치면 15%에 달한다”면서 “표대결이 벌어질 경우 최대주주인 이 PD의 경영권이 위협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 PD도 반격에 나서고 있다. 그는 지난 7일 SM이 주식회사 카카오와 신주·전환사채 인수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법적 대응을 예고하고 나섰다. 이 PD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화우는 “회사의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제3자에게 신주 또는 전환사채를 발행하는 것은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면서 “가처분을 통해 SM 이사회의 불법적 시도를 봉쇄할 것”이라고 했다.
업계에서는 오는 3월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이 PD와 카카오·얼라인 측을 중심으로 표대결이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전환사채는 통상 3개월 이후부터 주식으로 전환 가능해 가처분이 기각되더라도 이번 주총에서는 이 PD의 주장이 관철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다만 이후 열리는 주총에서는 이 PD가 경영권을 방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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