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맛 납니다" 삼시세끼 공짜에 혁신 근무공간..HD현대 GRC 가보니 [르포]
공간·에너지 효율 극대화한 정육면체 건물 우뚝
창립 50주년 맞아 ‘100년 기업’ 준비할 요람으로
계열사 5000명 한곳에…역량 집결해 R&D 매진
삼시세끼 ‘공짜’에 헬스장까지 “일할 맛 나겠네”
[판교(경기도)=이데일리 김은경 기자] 이게 중공업 이름을 달았던 회사 건물이 맞나. HD현대 신사옥 앞에 서서 든 생각이다. 배 만드는 조선부문을 주력사업으로 둔 회사답게 신사옥도 중후장대(重厚長大)스러운 면모가 남아 있을 줄 알았던 건 착각이었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니 HD현대가 왜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주요 정보기술(IT) 기업이 모인 경기도 분당 판교 한복판에 새로운 사옥을 지었는지 알 만했다. IT 기업과 견줘도 손색없을 만큼 혁신적인 근무환경과 첨단화된 시설, 편하게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세심한 설계와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창립 50주년을 맞아 HD현대로 이름을 바꾸고 서울 종로구 계동 사옥에서 나와 판교 글로벌R&D센터(GRC)에 새 둥지를 틀었다. 앞으로의 미래 50년은 이곳에서 맞게 된다. 그만큼 HD현대가 이 건물에 두는 의미는 남다르다. 권오갑 HD현대 회장은 지난해 12월 이곳에서 비전 선포식을 열고 “과거 50년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영광의 역사였다면 미래 50년은 기술과 환경, 디지털이 융합된 혁신과 창조의 역사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건물에는 스마트 시스템을 도입해 일반 대규모 오피스 대비 40% 정도 낮은 저에너지 건물을 실현했다. 천장에는 복사 냉난방 시스템을 적용해 여름에는 차가운,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지나가 에너지 효율을 높였다. 천장에 온돌이 깔린 셈이다. 박수근 한국조선해양 GRC 운영팀장은 “이 시스템은 네이버 신사옥인 1784와 우리, 이렇게 두 곳만 쓰고 있다”고 자부했다.
건물의 백미는 메인 로비가 있는 4층이다. 건물 한가운데를 뻥 뚫어 거대한 보이드(void·빈 공간)를 만들었다. 올려다보면 햇빛이 내려와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기분도 환기된다. 4층부터 20층까지 한눈에 올려다보이는 이곳은 조명이 달린 개방형 엘리베이터가 위아래로 바쁘게 오가며 미래 도시를 연상케 한다. 로비에 초대형 고화질 미디어월에는 시간대별로 주요 뉴스와 그룹사 소식, 계절감 있는 영상자료가 상영된다.
그 시험실 중 하나인 6층 디지털관제센터를 둘러봤다. 이곳은 현대글로벌서비스의 HGS 스마트솔루션(ISS·HiEMS·DATS)이 장착된 모든 스마트선박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웹서비스·성능분석보고서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두뇌와 같은 장소였다. 이곳에서 분석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선주들에게 선박 리포트도 제공한다. 배를 학생으로 치면 생활기록부 격이다.
장민성 현대글로벌서비스 디지털연구센터 책임매니저는 “HD현대 스마트쉽솔루션이 탑재된 선박들의 현재 위치와 운항 속도, 엔진 등 기자재 상태까지 확인할 수 있어 선박의 경제적 운항과 유지보수를 지원할 수 있다”며 “이곳에 모인 빅데이터는 또 다른 기술개발을 위한 밑거름으로 활용된다”고 설명했다.
사무실에서 특이한 점은 직원 개인 좌석이 아예 없다는 점이다. 모바일 기반 ‘카카오워크’를 도입해 출근 시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간단하게 좌석을 예약할 수 있다. 상무나 전무 등의 임원들 역시 별도 집무실 없이 일반 직원들과 함께 섞여 근무한다. 수평적인 사내 문화와 원활한 소통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의지다. 회장·부회장·사장 등 CEO들도 직급 구분 없이 집무실 크기를 최소화(13평)해 공간 효율성을 높였다.
HD현대는 이곳에 여러 계열사가 입주한 만큼 ‘협업 시너지’를 노리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자주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게 필수다. 그게 가능해지도록 회의실만 700여개를 만들었다. 20인 규모의 대회의실, 8~12인 중회의실, 1인 회의실 등 규모도 다양하다. 외부 미팅도 용이하다. 실제 이날 한 회의실 화면에는 ‘선주사 미팅’이라는 예약 내역이 적혀 있기도 했다.
우선 삼시세끼 밥이 ‘공짜’다. 구내식당에 현대그린푸드와 신세계 2개 사가 들어와 있는데, 일부러 경쟁을 붙여 좋은 품질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구내식당은 1582석으로 조식 4종, 중식 8종, 석식 2종의 다양한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 체중 조절을 하는 직원들이 간단하게 먹을 간편식 도시락 2종도 준비됐다. 이곳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사내 커플에 아이까지 있어서 온 가족이 아이를 등원해주면서 식사를 해결한 적도 있다”며 “식비 부담이 확 줄어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건물 4층에는 심리 상담실과 모성보호실, 헬스케어존과 같은 직원 복지시설도 들어설 예정이다. 은행과 베이커리, 식음료 같은 편의시설도 입주한다. 1층에는 이미 스타벅스가 입주를 마쳤다. 사무공간 전 층에는 층마다 4곳의 탕비 공간인 캔틴을 두고 있는데 과자 종류만 수십 개다. 냉장고와 전기 오븐, 얼음 정수기, 커피 머신은 기본이다. 각종 에너지 음료와 커피 등을 비롯해 견과류·씨리얼바·스낵류 등도 구비했다. 방역에도 신경 썼는지 건물 층마다 현대로보틱스의 방역 로봇이 소독을 책임지고 있었다.
박 팀장은 “GRC는 창립 50주년을 맞은 HD현대가 미래 100년 기업을 향해가며 기술경영 중심 공간을 새롭게 구축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그룹사의 R&D 역량을 집적화해 새로운 도약을 이뤄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은경 (abcde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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