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은 ‘선별적 디커플링’으로 가야”…무슨 뜻?

김기훈 경제전문기자 2023. 2. 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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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의 경제TalkTalk] 장상식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동향분석실장 ③/③
향후 한-중 무역은 품목에 따라 선택적으로 교류가 늘거나 줄거나 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다. 사진은 중국 상하이의 야경./로드리고 아르젠톤(2018년, 위키피디아)

☞ ②/③ 편에서 계속

장상식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동향분석실장과 한국 무역 동향, 전망, 정부 대응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화제를 세계 무역의 흐름과 세계화 문제로 바꾸어 대화를 이어갔다.

—세계 무역 추이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배제한 교역물량 기준으로 세계 무역은 작년 10월부터 전월 대비 감소세로 전환했다. 당분간 세계 교역 감소세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막 내리는 ‘세계화 3.0′ 시대

—미·중간의 갈등으로 세계 무역이 점점 더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세계화 시대는 끝났나?

“세계화를 따지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가 세계 GDP(총생산) 대비 세계교역의 비중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 비중이 점차 낮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중 갈등으로 상품 교역은 감소하는 추세이다.

여기에 전세계 GDP 대비 FDI(해외직접투자) 비중도 줄고 있다. 다만 전세계적으로 데이터 이동, 서비스 교역이 증가하고 있어서, 상품 교역의 감소 만으로 탈세계화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자료=장상식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동향분석실장

—상품 교역만으로 본다면?

“산업혁명 이후 ‘세계화 1.0′, 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시작된 ‘세계화 2.0′에 이어 1991년 냉전 종식 후 지난 30여년을 풍미했던 ‘세계화 3.0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세계화와 함께 찾아왔던 골디락스 경제, 즉 물가안정 속 고성장으로 세계경제가 번영하던 시대도 끝나가고 있다.

다만 재닛 옐런 미국 재무 장관은 세계화의 종언이 아니라, 재세계화라고 주장한다. 미국이 주장하는 자유주의와 다자주의는 끝난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다.”

미-중 갈등으로 세계 경제는 블록화되고 있다. 그러나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세계화가 끝난 것이 아니라, 재세계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1월 26일 남아공 수도 프리토리아 방문 당시 기자회견 하는 모습./로이터 연합뉴스

—비교우위 무역론의 관점에서 볼 때 세계 무역의 감소, 즉 세계화의 퇴조는 전세계인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아닌가?

“그럴 수 있다. 탈세계화가 맞다면 물가가 오르고, 투자가 줄며, 자유무역 쇠퇴로 실질소득이 감소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둔화될 것이다. 공급망도 이제 세계화가 아니라 지역화될 것이고, 해외투자기업들이 자국으로 되돌아가는 리쇼어링도 한층 가속화될 것이다.

최근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의 추정을 보면 타국에 생산설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국이 자국 내 재투자‧건설에 나서면서 낭비되는 비용이 세계 연간 GDP의 3.2~4.8%로 31억~46억 달러에 달한다.”

—과거의 한국처럼 못사는 나라들이 해외기업을 유치해서 경제를 발전시키는 사례는 더 이상 어렵지 않을까?

“인류공영 측면에서는 마이너스이다. 미·중간의 패권경쟁과 각국의 각자도생 현상이 이러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미·중 갈등과 한국

미·중간의 갈등과 세계화 이야기가 나온 김에, 미·중간의 갈등 속에서 한국 무역이 가장 타격을 작게 받으려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물어보기로 했다. 안보 동맹인 미국과 최대 수출국인 중국 사이에 끼인 한국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동맹 위주로 공급망 체인을 재편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를 각각 어떻게 정립해야 하나?

“선별적 디커플링(분리)으로 가야 한다. 미·중 갈등 이후 미국 수입시장에서 중국의 비중이 줄기는 했으나, 미·중 교역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결국 핵심산업에서는 디커플링, 여타 일반산업에서는 분업관계로 선별적 디커플링이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점을 활용해 어렵더라도 사안에 따라 다르게 대응하면서 미국과 중국 양측 모두에 대한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 미국에 대해서는 한국이 중국 제조업을 대체할 최우선 파트너라는 것을 각인시키며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 중국에 대해서는 중국이 잘하는 부분에서 우리가 부품 공급 같은 사항을 협력해야 할 것이다. 말은 쉽지만 어떻게 행동으로 옮길지는….”

장 실장이 애가 타는 듯 물컵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말을 이어갔다.

“공급망 측면에서 살펴보면 미·중 디커플링이 되면 한국이 중국에 대해 시간을 많이 벌게 된다. 첨단 장비가 중국에 못들아가면서 중국이 기술 추격에서 시간이 더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확보한 시간을 경쟁력을 더 높이는 데 이용해야 한다.”

중국은 미-중 간 디커플링 때문에 첨단 장비 수입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한국의 첨단 산업 추격에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한국은 미국과 밀접하게 협력하며 중국의 추격을 늦춰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오른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2022년 5월 20일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둘러보며 대화하는 모습./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선별적 디커플링 대응의 사례를 들면?

“최근에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에 대해 말이 많다. 미국이 네덜란드와 일본을 설득해서 첨단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그래서 네덜란드와 일본이 승낙했다는 보도가 있다. 작년에 반도체 장비 수출 상황을 보면 미국, 일본, 한국, 네덜란드의 중국 수출이 줄었다. 벌써부터 줄이고 있는 것이다.”

—그게 선별적 디커플링과 무슨 관계가 있나?

“반도체는 종류가 많고 공정마다 특화되는 것이 달라 서로 주고 받는 것이 많다. 그래서 아직 전면적인 디커플링이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장비에서는 그런 디커플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것을 선별적 디커플링 대응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제 2의 중동 진출

시계가 벌써 5시를 향해 간다. 장상식 실장은 인터뷰 내내 준비해온 자료를 보며 수치를 꼼꼼히 제시하고 표와 그래픽을 보여주며 설명을 보충했다. 모두 자기가 직접 뽑아 정리한 자료라고 했다. 자료에 없는 질문을 하면 노트북으로 무역통계 사이트에 접속해 새로운 사실과 수치를 제시했다. 무역 수치와 현상 분석 뿐 아니라 대안에 대한 견해도 분명했다.

한국 무역 동향에서 시작해 세계화의 퇴조에 이르기까지 긴 대화를 마무리할 시간이 됐다. 마지막 질문은 정부가 수출 확대를 위해 추진중인 ‘제 2의 중동 진출'을 골랐다.

중동 국가들이 고유가로 벌어들인 돈으로 새로운 초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한국에 '제 2의 중동 진출' 바람이 불고 있다. 사진은 사우디 아라비아가 사막에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일직선 모양의 신도시 '네옴'의 조감도./네옴

—정부가 제 2의 중동건설 붐을 추진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산유국이 국제유가 상승으로 돈을 많이 벌었으니 산유국을 수출확대 대상으로 하는 것은 옳은 전략이다. 실제로 최근 산유국들의 수입이 많이 늘면서 우리나라 수출도 확대되고 있다.”

장 실장이 컴퓨터를 뒤져 사우디 아라비아와 UAE(아랍에미리트) 무역 통계를 찾더니 말을 이어갔다.

“작년에 우리나라는 사우디 아라비아에 49억달러를 수출해 수출액이 전년보다 46% 증가했다.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9년 수출액이 37억달러였으니 그것에 비해봐도 많이 늘었다.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이 다녀온 UAE의 경우 작년에 40억달러 수출해서 전년보다 0.2% 감소했지만, 2019년 수출액이 35억달러였으니 꾸준히 늘고 있는 셈이다.”

금융이 뒷받침해야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나?

“중동 지역 수출은 상품과 서비스 수출이 혼재된 턴키 방식의 플랜트 수출이 많다. 장기간에 걸쳐서 진행되는 사업이다 보니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래서 이를 뒷받침할 한국의 금융경쟁력이 필요하다.

또 플랜트는 엔지니어링 기술이 중요하다. 과거에는 한국 근로자들이 중동에 많이 갔지만, 지금은 우리 근로자보다는 미얀마나 인도 근로자를 쓰고 있다. 그래서 과거처럼 단순 시공보다는 핵심 부가가치 기술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의 중동 진출은 장기간에 걸쳐 많은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 금융회사들의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지난 2월 5일 서울 시내 은행 현금인출기(ATM) 모습./연합뉴스

—우리가 그런 기술을 갖고 있나?

“엔지니어링 기술 수준은 아직 그리 높지 않은 것 같다. 서울에서 초고층 건물을 올릴 때에도 핵심 엔지니어링 기술은 영국, 미국 회사가 제공하고 한국 업체는 단순 시공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장 실장이 국제유가와 천연가스 가격 상승으로 집 난방비 부담이 크게 늘지 않았느냐고 물어봤다. 무역 전문가답게 그의 생각은 항상 수출입 동향에 꽂혀 있는 듯 했다. 며칠 동안 한국을 휘감았던 강추위가 풀리면서 날씨가 조금 누그러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상식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이 지난 1월 31일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무역 위기 상황과 대응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김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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