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출, 5위 일본 넘어서나… 격차 역대 최소

김기훈 경제전문기자 2023. 2. 8.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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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의 경제TalkTalk] 장상식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동향분석실장 ①/③
한국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수출을 꾸준히 늘리면서 수출 규모에서 일본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사진은 일본 가전업체 소니의 도쿄 본사./AFP 연합뉴스

삼성전자가 2022년 4분기에 반도체 경기 악화로 간신히 적자를 면했다는 뉴스가 나온 지난 1월 31일, 필자는 무역협회를 찾았다. 한국의 주력 수출업체인 삼성전자가 경영난을 겪는다면 수출 전선에 빨간불이 켜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높은 국제 원자재 가격 때문에 수입액이 폭증해 무역적자가 나고, 난방비 폭등으로 민심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 아닌가? 수출이 감소하면 달러 부족으로 외환시장에도 불안 요인이 더해진다. 타개책은 무엇일까?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511 무역센터 트레이드 타워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48층에 내리니 무역협회 산하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의 장상식 동향분석실장이 ‘도쿄룸’ 회의실로 안내했다. 무역협회에 10개 해외지부가 있는데, 여러 회의실 이름을 각 지부의 소재지에서 따왔다고 한다. 북쪽 창 밖으로 가까이 아셈 타워가, 멀리 한강이 눈에 들어왔다.

오후 2시, 장 실장과 마주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한국 무역의 최일선에서 안테나를 높이 올려 동향을 탐지하고 대응 방향을 제시하는 31년 경력의 무역 전문가이다. 곧바로 무역에 대한 질문에 들어갔다.

무역수지, 외환위기 이후 최악

—수출입 동향은 어떤가? 먼저 수출부터.

“올해는 1월 한달 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수출 동향을 보려면 작년 상황을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지난해 수출은 전년보다 6.1% 증가한 6837억달러(약 855조원)를 기록했다. 1~5월에 두 자릿수 성장을 했다. 그러다가 6~9월에 한 자릿수 증가를 보이다가 4분기가 시작되는 10월부터 뚜렷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작년 4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9.9% 감소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2020년 2분기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 다행히 상반기에 수출이 괜찮았던 덕택에 작년 연간으로는 6.1% 증가했다. 하지만 올해 1월에도 감소세가 이어지면서 4개월 연속 줄어드는 상황이다. 당분간은 감소세가 불가피하다.”

인터뷰 다음날 산업통상자원부는 2023년 1월 전체 수출액이 462억7000만달러를 기록, 작년 같은 달(554억6000만달러)보다 16.6%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1월 수입액은 589억6000만달러로 작년보다 2.6% 줄었다. 이에 따라 수출액에서 수입액을 뺀 무역수지는 126억9000만달러 적자로, 월간 적자 규모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무역수지는 11개월째 적자 행진을 이어갔는데, 11개월 연속 적자는 외환위기 직전인 1995년 1월∼1997년 5월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다.

수출 언제 바닥?

—수출이 왜 이렇게 좋지 않나?

“미국의 금리 인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세계 경기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 그래서 우리 수출도 타격을 받고 있다.”

—언제쯤 바닥을 칠까?

“상반기에 바닥을 치고 하반기에는 증가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의 수출 위기는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급격히 올리면서 세계 경기가 둔화된 요인이 크다. 미국 금리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지난 2월 1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어떻게 알 수 있나?

“우리나라 수출의 선행지표 역할을 하는 것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경기선행지수와 세계 PMI(구매자관리지수)이다. OECD 경기선행지수는 월별로 발표되는데, 기준선인 100 아래로 내려가면 경기가 장기평균보다 나빠진다는 의미이다. 세계 PMI는 기준선이 50이다.

OECD 경기선행지수는 작년 4월부터, 세계 PMI는 작년 9월부터 기준선 아래로 떨어진 뒤 계속 하락하고 있다. 이 지수들이 기준선을 넘어선 뒤 몇 개월 지나면 우리 수출이 증가세로 돌아선다. 그런데 아직 지수들이 하락하고 있어서 향후 몇 개월 동안은 수출이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 연간 수출 전망은?

“수출은 작년보다 4%, 수입은 8%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반도체 부진

좀 더 깊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산업별로 수출 상황을 분석해 보면 어떻게 나타나나?

“2022년 연간 기준을 보면 석유제품, 자동차, 배터리 소재인 정밀화학원료 등이 두 자릿수 증가했다. 반도체는 1% 증가에 그쳤다. 합성수지, 철강판, 디스플레이, 선박은 감소했다.”

—올들어 1월 상황은?

“반도체 수출이 감소하고 있고, 철강, 컴퓨터, 가전의 수출액도 줄어드는 추세다. 반면, 자동차, 선박, 무선통신 등은 두 자릿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반도체 뿐 아니라 가전제품의 수출도 올들어 줄어드는 추세다. 사진은 LG전자 모델들이 지난 2월 1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미국 최대 주방·욕실 전시회 'KBIS 2023'에서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를 소개하는 모습./LG전자

—반도체는 우리나라 1위 수출품인데 상황이 매우 좋지 않은 것 같다.

“작년 1~6월에 두 자릿수 증가를 보인 후에 8월부터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다. 10월부터는 매월 30%씩 감소하고 있다.”

—원인은?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서 나타난 펜트업(억눌린 수요의 폭발) 효과가 효력을 다해 수출 물량이 감소한데다, 세계경기가 둔화 되기 시작하면서 수출단가도 크게 하락한 탓이다.”

자동차 호조

반도체 수출 상황이 좋지 않으면 다른 제품들이 달러를 더 벌어와야 한다. 다른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 선박, 석유제품에 대해 질문했다.

—자동차 수출 상황은?

“작년 상반기에는 별로 안좋았다가 하반기에 호전됐다. 하반기부터 차량용 반도체 수급 상황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력 수출품목인 전기차 등 친환경차 수요가 전세계적으로 늘면서 수출이 좋아졌다. 작년 전체로 보면 자동차 수출은 재작년보다 16% 증가했다.”

자동차는 작년 하반기 이후 수출이 살아나면서 올해 수출 효자 품목이 될 전망이다. 지난 2월 1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 선적 부두 인근 야적장에 완성차들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뉴스1

—선박 수출은?

“작년에 선박 수출이 21% 감소했다. 선박은 배를 만들어 인도할 때 수출로 잡히는데, 코로나 사태 발발 후 물동량이 갑자기 증가하면서 운송 선박이 많이 필요해 선박 발주가 많았다. 그 때 수주한 선박의 인도가 올해 시작되면서 올들어 수출이 증가하고 있다. 배는 보통 건조에 2년 정도 걸린다. 선박이 올해에 상당한 수출 효자 노릇을 할 것 같다.”

—국제유가가 많이 올라 석유제품 수출이 호조를 보였을 것 같다.

“석유제품은 원유를 가공해서 휘발유나 항공유를 만들어 수출한다. 지난해에 국제유가가 올라가서 수출단가도 많이 상승했다. 재작년에 비해 수출단가가 50% 이상 상승한데 힘입어 수출액이 65% 늘면서 효자 노릇을 했다. 원료인 원유의 국제 가격이 많이 올라 상반기까지는 이윤을 뜻하는 정제마진도 좋았다. 다만 하반기 들어 정제마진이 많이 낮아져 큰 재미를 못봤다.”

수출 효자들

—올해 수출 효자 노릇을 할 품목들을 꼽는다면?

“자동차, 선박, 2차전지 등 3개 품목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선박과 2차전지는 작년보다 20% 내외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은 전기차와 휴대폰 등에 사용되는 2차전지(충전가능배터리) 제조 강국이다. 2차전지 수출은 올해에 작년보다 20% 정도 늘어나면서 수출 효자 노릇을 할 전망이다. 사진은 미국의 한 데이터센터에 정전 대비용으로 설치된 2차전지들./젤슨25(2007년 3월 9일, 위키피디아)

—2차전지 수출이 그렇게 잘 되고 있나?

“코로나 사태 와중에도 2차전지 수출은 계속 늘었다. 우리나라가 배터리 강국이다 보니 배터리 완제품 뿐 아니라 소재도 수출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LG·삼성·SK가 일찍부터 과감하게 투자한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장 실장이 잠시 말을 멈추더니 덧붙였다.

“다만 요즘에는 수입국들이 자기 나라에 공장을 지어서 만들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휴대폰과 배터리도 국내 기업들이 유럽과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다. 우리 수출이 제약을 받을 수 있다.”

미국 늘고, 중국 줄고

산업별 수출 동향은 상세히 물어봤다. 지역별 수출 동향은 어떨까? 질문을 이어갔다.

—지역별 동향은?

“1위 수출국인 중국에 보낸 금액이 작년에 4.4% 감소했다. 작년 6월에 감소로 전환된 후 감소세가 점차 확대되면서 지난해 4분기에는 전년보다 22.9% 줄었다. 올해 1월에도 이러한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반면 미국은 14.5% 늘었다. 베트남도 7.5% 증가했다. 대만, 싱가포르, 인도, 호주 지역 수출도 증가세이다. 호주 수출은 92.4%나 늘었다.”

—미국 수출이 늘어난 이유는?

“미국 국내 경기 호조세를 반영해 자동차, 2차전지, 석유제품, 건설기계 등이 좋았다. 건설기계 수출이 늘어난 것은 미국이 인프라 투자를 늘린 덕이다.”

—미국은 산유국이다. 한국산 석유제품의 대미 수출이 늘어난 이유는?

장 실장이 앞에 놓인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며 무역 정보 사이트를 잠시 검색하더니 대답했다.

“항공유, 윤활유, 휘발유 등 3개 품목이 많이 나갔다. 미국은 코로나 사태가 끝난 후에 항공유 수요가 많이 늘어났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2020년에는 항공유 수출액이 전년보다 53% 감소했는데, 2021년에는 바닥효과로 전년보다 72%나 증가했다. 이듬해인 2022년에도 39%나 늘었다.

특이하게도 2022년에 항공유가 383만9000t 수출돼 물량은 전년 대비 17% 감소했으나, 국제유가 폭등으로 수출단가가 뛰면서 전체 수출금액이 39% 늘었다.”

—미국은 산유국이니, 정제 기술도 뛰어날 것 같은데.

“정제 시설은 있지만 수요 변화에 맞춰 시설을 빨리 늘리거나 줄이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다. 초과수요 분은 수입해 쓰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잘 나가는 호주 수출

—앞에서 작년에 한국 제품의 호주 수출이 대폭 늘어났다고 했다. 이유는?

“석유 제품이 무려 200%나 증가했다. 호주가 노후화된 석유정제 공장을 폐쇄하면서 수입 수요가 있었다. 또 중국이 우리나라 경유 제품에 세금을 부과하면서 중국 수출길이 막히자, 한국 기업들이 수출선을 호주로 돌린 효과도 있다.”

자원 수출국인 호주는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돈을 많이 번 덕택에 한국 제품을 많이 수입하고 있다. 호주 시드니의 상징인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릿지./벤 뢰 송(2019년 6월 21일, 위키피디아)

—올해도 석유제품 수출이 그렇게 늘어날까?

“향후 2~3년간은 수출 물량이 계속 늘어나겠지만, 작년에 200%나 늘어났기 때문에 바닥효과로 인해 올해 수출증가율은 높지 않을 것이다.”

베트남을 주목하라

장 실장이 이 대목에서 베트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베트남 이야기를 꺼냈다.

“최근에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향하는 반도체 수출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베트남에 삼성 휴대폰 공장이 있어서 우리가 부품을 보내면 베트남에서 조립해 제 3국으로 수출하는 것이 많다.

그동안 한국의 베트남 수출은 휴대폰 부품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휴대폰 부품 수출은 작년에 24억달러로, 전년보다 29% 감소했다. 이에 반해 반도체는 162억달러에 달해 한국이 베트남에 보내는 전체 수출액의 26.6%를 차지했다. 베트남으로 보내는 전체 수출의 4분의 1이 반도체인 셈이다.”

한국 삼성전자가 베트남에 공장을 세운 까닭에 한국 반도체의 베트남 수출이 점점 늘고 있다. 사진은 베트남 박닌 옌퐁현 삼성전자 생산공장./삼성전자

—반도체 비중이 커진 이유는?

“베트남이 반도체 후공정 OSAT(조립·테스트) 기지로 부상하면서 전공정을 끝낸 반도체 수출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정에는 전공정과 후공정이 있는데, 베트남이 후공정의 기지로 중국을 대신해 부상하고 있다.

요즘 미국 인텔, 한국의 삼성전자 등 각국 반도체 기업들이 베트남에 공장을 많이 세우고 있다. 인건비가 싸서 그렇다. 전공정은 기술 집약적이고, 후공정은 상대적으로 사람 손이 더 많이 가는 노동집약적인 공정이다.”

—베트남 쪽으로 향하던 휴대폰 수출은 어디로 방향을 틀고 있나?

“인도다. 인도가 휴대폰 생산기지가 되면서 한국 휴대폰 부품의 주요 수출 상대국으로 바뀌고 있다. 휴대폰 부품 뿐 아니라 반도체, 철강, 선박 등 한국 주력 품목의 인도 수출도 늘고 있다. 한국이 주목해야 할 새로운 수출 시장이다.”

수출 동향에 대한 질문이 모두 끝났다. 화제를 수입 부문으로 옮겼다.

수입 급증

—수입 동향은?

“작년에 7312억달러로 1년전보다 18.9% 증가했다. 2021년의 31.5%에 이어 2011년 이후 두번째로 높은 증가율이다.”

—왜 이렇게 수입이 많이 늘었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많이 올랐다. 원유·석탄·가스 등 3대 에너지를 제외하면 수입이 7.7% 증가하는데 그쳤다. 7.7%라면 다른 연도보다 늘기는 했지만 아주 큰 폭으로 증가한 수치는 아니다. 작년 수입 증가에는 에너지 요인이 가장 컸다고 봐야 한다.”

2022년 국제원유 등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한국의 수입액도 크게 늘었다. 사진은 텍사스주 미드랜드 남쪽의 석유채굴 시설./에릭 카운스(2008년 8월 22일, 위키피디아)

—품목별로 보면?

“원유 수입액이 전년보다 58%, 천연가스가 97%, 석탄이 93% 각각 증가했다. 리튬 같은 2차전지나 반도체 소재로 쓰이는 정밀화학원료가 전년보다 61.2% 늘었다. 반도체도 중국에서 반(半)제품이 들어오는 물량이 있어서 22% 증가했다.”

반도체 수입도 늘다

—한국은 반도체 강국인데, 반도체 수입이 왜 많이 늘어나고 있나?

“요즘은 반도체 공정도 나라마다 특화되어 있어서,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는 수입으로 잡히고 부품을 내보낼 때는 수출로 잡힌다. 반도체 기술이 어려워지고 복잡해지니 나라마다 각국이 잘하는 쪽으로 특화되어 가고 있다.”

반도체 제조 공정이 복잡해지면 전세계 반도체 업체들은 각자 잘하는 분야에 특화해 생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중저가 제품에 경쟁력을 갖고 있는 중국 반도체 제조업체 SMIC의 상하이 본사./SMIC

—한국은 주로 어떤 나라에서 반도체를 수입하나?

“중국과 대만에서 크게 증가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메모리와 시스템(비메모리) 반도체를, 대만에서는 시스템 반도체를 주로 수입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국내 반도체 업계가 국내에서 생산한 반도체 제품을 중국으로 보내 후공정을 거친 뒤 재수입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수입도 늘고 있다. 대만은 차량용 반도체 등 대만이 강한 파운드리(시스템 반도체) 반도체 중심으로 수입이 늘고 있다.”

한국 공략 나선 대만 반도체

—대만 기업들이 한국의 시스템 반도체 시장 공략에 나선 것 같다.

“시스템 반도체는 전세계 반도체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는데, 중화권 반도체 업체의 저가 공세와 국내 경쟁력 저하로 해외 의존이 심화되는 추세이다. 업계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최근 공급망 위기로 국내 IT(정보기술) 제조사들이 원가절감을 위해 저가 공세에 나선 중국과 대만 반도체를 선택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한다.”

중국과 대만의 반도체 업체들은 적극적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사진은 세계 최대 시스템 반도체 제조업체인 대만 TSMC의 타이중 공장./孟必思(2020년 6월 25일, 위키피디아)

—2차전지와 반도체용 정밀화학원료 수입품은 어떤 것들인가?

“2차전지에 쓰이는 수산화리튬, 양극재, 전구체, 탄산리튬 등의 수입이 증가세다. 수산화리튬은 특히 중국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반도체용 정밀화학원료로는 크세논, 네온, 크립톤, 황린 등 희귀가스들의 수입이 늘어나고 있다.

물량보다는 단가 증가율이 더 높다. 작년에 전기차 수요가 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물량 확보가 어려워 가격이 많이 올랐다. 국제원자재 시장에서는 공급이 부족해지거나 수요가 증가한다고 하면 투기세력의 가수요가 가격을 더 끌어올린다.”

외환위기 이후 최대 적자

지역별 수입 동향은 어떨까? 질문을 이어갔다.

—어느 지역 수입이 많이 늘었나?

“에너지 수입이 늘다 보니 호주, 사우디, 카타르, UAE 등 자원 부국의 비중이 증가했다. 자원 부국이 아닌 경우에는 중국, 미국, 대만, 베트남에서의 작년 수입이 전년보다 10~20%씩 증가했다.”

현재 무역적자 상황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악으로 평가된다. 사진은 임창열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앞줄 왼쪽)과 미셸 캉드쉬 IMF 총재(오른쪽)가 1997년 12월 3일 오후 세종로청사에서 내외신 보도진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국제통화기금(IMF) 긴급자금지원 최종 협상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조선일보DB

—수출과 수입을 종합한 무역수지 상황은?

“작년에 무역수지가 475억달러 적자를 기록하면서 적자액이 사상 최대치이다. 교역액 대비 적자 비중도 3.4%나 된다. 1996년 외환위기 직전의 7.4%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다.

또 최대 무역흑자 국가가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바뀌었고, 대미무역 흑자도 사상 최대로 늘어났다. 대일무역 적자는 좀 완화됐다.”

줄어드는 대일 적자

—대일 무역적자는 어느 정도 완화됐나?

“작년에 대일무역 적자가 241억달러였다. 가장 많았을 때가 2010년 361억달러였다. 12년 사이에 3분의 1 정도 준 셈이다.”

한국의 소재, 부품, 장비 제조 기술이 발전하면서 대일 무역 적자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사진은 도쿄 시부야 지역./벤 뢰 송(2018년 10월 9일, 플릭커)

—대일 무역적자가 줄어드는 이유는?

“수입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의 일본 의존도가 점점 낮아지는 영향이 큰 것 같다. 한국 기술이 계속 발전하므로 이런 감소 추세는 이어질 것 같다. 2019년에 일본이 한국에 반도체 소재 수출을 통제했는데, 그 때의 대일 무역적자가 192억달러로 가장 적었다. 이후 수출이 재개되면서 무역적자액도 늘어났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줄어들고 있는 추세가 분명하다. 한국의 기술 자립이 이뤄지고 있는 측면도 있고, 일본이 해외 공장을 통해 한국에 우회 수출 하고 있는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주로 어떤 품목에서 적자가 많이 나나?

“일본과의 무역에서 최대 적자 품목은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이다. 일본에서는 통신용과 차량용 반도체, 전력 반도체, 웨이퍼 소재 등을 수입하고 있다.”

한국 무역의 특징 ①

:어려운 여건에서도 선전

수출입 동향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를 들었다. 전반적인 평가를 들어보기로 했다.

—한국 무역의 특징을 꼽는다면?

“3가지이다. 첫째, 한국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2022년 우리나라 수출 순위는 세계 6위이다. 홍콩을 제치고 전년보다 1단계 올라섰다. 중계무역 국가인 네덜란드를 제외하면 세계 5위이다.

세계 5위 수출국가인 일본과의 격차가 역대 최소인 617억달러로 줄었다. 일본보다 한국의 수출이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난 결과다.”

한국은 2022년에 홍콩을 넘어 세계 6위 수출국가가 됐다. 사진은 빅토리아 피크에서 내려다 본 홍콩 전경./시메온(2017년 12월 21일, 위키피디아)

—일본은 한국에 대해 위기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본 입장에서는 한국의 성장에 대해 충분히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주요 수출국인 일본과 독일에 비해 보면 한국의 성적표는?

“무역수지 악화가 일본, 독일에 비해서는 양호하다. 지난해 한국의 무역수지는 전년보다 768억달러 줄었는데, 일본의 1355억달러, 독일의 1270억달러 감소보다 작은 수준이다. 교역액 대비 비중으로는 일본 8.4%, 한국 5.4%, 독일 3.5% 감소로 한국의 무역수지 악화 정도가 일본보다 낮다.”

한국 무역의 특징②

:수출 블록화 조짐

—두번째 특징은?

“한국 수출이 점점 블록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인도, 유럽연합, 미국·캐나다·멕시코 지역 수출이 늘고, 중화권 수출이 둔화되고 있다. 이는 세계 무역시장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블록, 권위주의와 전체주의 블록으로 나누어지고, 미국 중심으로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중국에 있던 각국의 생산기지가 아세안이나 인도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도 중간재를 수출하므로 중국에서 아세안 등으로 수출축이 이동할 수 밖에 없다.”

인도는 한국 휴대폰의 새로운 수출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진은 인도의 상징적 관광 명소인 타지마할./위키피디아(2016년 8월 20일)

—구체적인 수치가 있다면?

“중국과 홍콩을 합친 중국 지역 수출이 2021년 32.1%에서 2022년 26.8%로 줄었다. 반면 북미 지역 수출은 같은 기간 17.7%에서 19.1%로 늘었다.

작년에 유럽 지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경제가 좋지 않았는데도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늘었다. 아세안과 인도의 비중은 19.3%에서 21.0%로 증가했다. 중국 의존도가 줄고 수출선이 다변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탈세계화의 영향 때문에 탈중국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탈중국화 현상이 나타난다면 수출 감소와 더불어 중국 제품 수입도 줄어야 할 것 같다. 수입은?

“아직 줄지 않고 있다. 배터리 소재인 정밀화학 원료와 소비재 수입이 줄지 않고 있다. 그래서 중국과의 무역수지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수출 측면에서는 탈중국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수입 측면에서는 아직 아니다. 탈중국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한국 무역의 특징③

:신산업 수출 증가

—세번째 특징은?

“시스템 반도체, 2차전지, 전기차, OLED, 항공우주 같은 신산업 부문 수출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신산업 부문의 수출 증가세가 전체 수출 증가세를 웃돌면서 신성장 동력 산업이 우리 수출을 견인하는 양상이다.

반도체의 경우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는 잘하는데, 시스템 반도체는 약한 상황이다. 이러한 와중에도 한국이 만드는 시스템 반도체는 상당히 고가이며, 수출이 잘되고 있다.”

—신산업 가운데 부진한 부분은?

“태양광, 로봇, 신소재, 바이오헬스는 2022년에 활발히 해외 진출에 나섰으나, 수출이 크게 증가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향후 유망 종목이 될 것이라고 본다.”

한국 무역의 현황과 특징에 대해서는 충분히 들었다. 화제를 올해 무역 전망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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