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이해'로 확인한 문가영의 엄청난 포텐셜

아이즈 ize 조이음(칼럼니스트) 2023. 2. 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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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조이음(칼럼니스트)

'사랑의 이해' 문가영, 사진제공=SLL

'사랑의 이해'는 문가영에 대한 오해를 깨준 작품이다. 아니 이해를 높여준 작품이라고 해야겠다. 새로운 작품, 새로운 캐릭터를 만날 때마다 그 작품과 캐릭터에 맞춰 옷을 갈아입고 얼굴을 달리하는 게 배우임을 분명 알고 있음에도, 나도 모르게 '배우 문가영'을 밝음 혹은 맑음이란 틀 안에 넣어뒀다. 그래서 낯설었고, 그래서 놀랐다. '사랑의 이해' 속 안수영이란 얼굴로 만난 문가영이.

JTBC 수목드라마 '사랑의 이해'(극본 이서현 이현정, 연출 조영민)는 제목 그대로 각기 다른 이해(利害)를 가진 이들이 서로를 만나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이해(理解)하게 되는 연애기를 그린다. 마치 실존하는 KCU 은행 영포점의 매일을 들여다보는 듯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는 이 드라마는 핑크빛 무드 가득한 여느 멜로드라마들과는 다른 결로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그 중심에는 문가영이 연기하는 안수영이 있다. KCU은행 4년 차 주임으로 '영포점 여신'이라 불릴 만큼의 미모와 미소, 친절까지 두루 갖춘 인물이다. 선배들도 기피하는 진상 고객 상대도 척척해내는가 하면 지점 내 귀찮은 일들마저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소화하고, 영업 실적도 지점 내 1위를 달성하는, 이른바 만능캐릭터다. 이런 수영에게 근무 첫날부터 마음을 빼앗긴 하상수(유연석)는 3년간 품어온 마음을 고백한다. "애매한 관계는 싫다"는 수영과 "확실한 게 좋다"는 상수는 둘 사이를 공고히 할 데이트를 기약하지만, 이 약속이 어그러지면서 둘의 사이는 이전보다 더욱 어색해진다. 사실 틀어진 약속 이후에도 상수는 수영에게 내내 제 마음을 표현하지만, 그런 상수를 수영은 모른 체한다. 

"괜한 오기를 부리게 하고, 흔들렸으면서도 끝내 솔직하지 못했던 이유. 그 남자의 망설임을 나조차 이해해버렸으니까.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권리가 나한테 없다는 거. 발버둥 쳐봤자 내가 가진 처지라는 게 고작 이 정도라는 거."

'사랑의 이해' 문가영, 사진제공=SLL

5화 말미에 등장한 이 내레이션은 수영의 상황을, 속내를 관통한다. 고졸 계약직 사원이라는 남들과는 다른 출발선은, 열거하기엔 지난한 가정사는 수영이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때문에 상수의 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제 손을 잡으려는 순간 망설이는 그의 '잠시간'에 매몰차게 돌아선다. 바닷가에서 모래성 쌓는 것을 좋아했지만,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 모래성이 무너지는 건 아닐까 두려워져 제 손으로 모래성을 무너트렸다던 어린 시절의 수영은 어른이 된 후에도 같은 선택을 한다. 무너질 것 같은 사랑에 불안해하며 마음을 쓰기보다 자라나는 마음을 잘라내 아프더라도 시작하지 않는 쪽을 택한 것이다. 이후에도 서로를 향하는 두 사람의 마음은 이어지지만, 결국 수영은 다시 모래성을 제 손으로 무너뜨린다.

앞서 밝혔듯 '사랑의 이해'로 만난 문가영은 낯설었다. 웃는 낯으로 속내를 숨기고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감정의 진폭이 인물이 된(게다가 목소리 톤마저 한층 무거운) 문가영이 낯설었다. 어린 시절 데뷔해 수많은 작품에서 연기 경험을 쌓은 그이기에 단순하게 몇 단어로 그의 필모그래피를 정의할 순 없지만, 필자의 기억에 강렬히 남은 드라마 '질투의 화신' 속 이빨강부터 최근 문가영이 주연을 맡은 작품들을 떠올려보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감정에 솔직하고 씩씩한, 안수영과는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들이 떠오르는 탓이다. 문가영이 소화하기엔 작품도 캐릭터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내 판단은 섣불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삼키기만 해서, 표현하지 않아서 답답하게만 느껴졌던 안수영이건만, 말의 내용과 말투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온도차로, 차가운 행동과는 달리 마음이 담긴 눈빛으로 안수영의 감정을 쌓아가는 문가영의 섬세함이 '사랑의 이해'를 만들어가는 중이었다.

'사랑의 이해' 문가영, 사진제공=SLL

몇 해 전 한 매거진 인터뷰에서 문가영은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속 캐릭터의 영향인지 많은 분이 내 밝은 모습을 좋아해 주신다. 밝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캐릭터들이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준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밝은 캐릭터를 연속적으로 만나는 데에 대한 두려움보다 그 속에서 '다름'을 찾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말도 더했다. 하지만 인터뷰 이후 그의 선택은 미스터리 스릴러 '링크: 먹고 사랑하라 죽이게'였다. 장르가 주는 무게와는 달리 그가 연기한 노다현은 특유의 씩씩함과 발랄함으로 일련의 사건들을 겪은 뒤에도 굳건하게 제 삶을 지키고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자신을 꽁꽁 숨기고 살아가려 하지만, 이런 노력과는 달리 제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는 남자를 만나고 이야기를 펼친다.

결국 익숙한 이미지만 떠올리며 잘하는 것만 잘 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오해를 장르적 선택으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와 인물로, 스펙트럼을 입증한 문가영. 그의 다음 작품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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