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삼성은 왜 애플스토어 감성을 못 따라갈까

변지희 기자 2023. 2. 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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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유니온스퀘어 근처에 있는 애플스토어에 들렀다. 매장 앞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애플스토어 바로 앞 길가에는 사과를 연상시키는 하얀색 화단이 있었는데, 여기에 사람들이 걸터앉아 잠시 전화를 하기도 하고 친구와 대화를 하기도 했다. 애플스토어 앞에서 누군가와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는지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화단에서는 매장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이 동네에 사는 사람이라면 날씨 좋은 날 예쁜 화단에 앉아서 잠시 쉬다가 매장 안에 들어가 자유롭게 제품을 체험하고 나오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장 안의 직원들도 친절했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필요한 게 없는지 물어봤고, 얇은 천으로 연신 전시된 제품을 닦았다. 누가 오든 새 제품을 체험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고 싶다는 애플스토어의 세심한 배려다.

이틀 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삼성 익스피리언스 스토어를 방문했다. 2019년에 지어진 새 매장인 데다 부촌에 위치하다 보니 매장 내외부가 깔끔했다. 하지만 별다른 특색은 없었다. 한국에 있는 삼성디지털프라자와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매장을 둘러보는 고객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네는 직원도 보이지 않았다. 삼성전자 관계자에게 ‘매장으로 고객들을 끌어들이고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느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그는 “매장에 프리미엄 제품 위주로 전시를 해뒀다”고 답했다. 부정적으로 해석하자면, 좋은 제품을 전시해두고 사람이 방문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고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제품을 사고 싶게 만드는 특별한 전략은 눈에 띄지 않았다.

소비자들이 갖고 싶어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품격있는 공간이 필수다. 전자제품을 판매하는데 기능만 좋으면 됐지 감성적인 공간이 무슨 소용이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제품을 알리는데 있어서 오프라인 매장은 중요하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제품을 직접 만져본 뒤 구매를 결심하기 때문이다.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일수록 더욱 그렇다. 이런 현상은 명품 시장을 보면 잘 나타난다. 매장에서 ‘오픈런(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개장 전 줄을 서는 현상)’까지 하며 어렵게 산 물건을 더욱 아끼기 마련이고, 해당 브랜드에 충성하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 심리다.

유니온스퀘어의 애플스토어처럼 애플은 그들의 철학을 녹인 독특한 형태의 애플스토어를 잇따라 열고 있다.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공간을 만드는 게 아니라 지역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한 장소를 만들고 있다. 애플은 미국 워싱턴D.C에선 100년이 넘은 카네기도서관 건물에 3000만달러(약 376억원)를 들여 2년 동안 보수공사를 했고, 이곳에서 애플의 최신 제품을 사람들이 둘러볼 수 있게 했다. 도서관 시설을 무료로 개방해 지역 주민에서 문화 시설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 국내에 문을 연 잠실 애플스토어만 봐도 비슷하다. 잠실 애플스토어의 체험 프로그램에는 석촌호수를 산책한 뒤 애플 아이패드를 이용해 드로잉을 하는 시간이 구성돼 있다. 실제로 애플스토어의 3.3㎡당 매출은 전 세계 모든 브랜드 중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미국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현대자동차 제네시스도 2021년 미국 뉴욕에 ‘제네시스 하우스’를 개장했다. 제네시스 하우스에는 차량 전시 공간 이외에도 한식 레스토랑, 다도 체험장, 공연장, 테라스 가든 등이 있다. 복합 문화공간을 만들어 사람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제품이 녹아들도록 의도한 것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제네시스 판매량은 전년보다 3배나 뛰었다. 물론 고급차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여러 가지지만 그중에서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프리미엄 공간도 필수적이었던 셈이다.

이번에 출시된 갤럭시S23 시리즈는 역대급 기능으로 중무장했다. 특히 갤럭시S23 울트라의 카메라 기능은 놀라울 정도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언팩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온 관계자들에게 갤럭시S23이 어떠냐고 묻자 “카메라 기능이 너무 좋다”, “카메라 어시스턴트 앱이 편리하다”는 등 호평 일색이었다. 언팩 행사의 ‘조연’이었던 갤럭시 북3 시리즈에 대해서도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한국에서 언팩을 지켜본 소비자들이 ‘갓태문’, ‘노태북’ 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환호할 만큼 최고급 사양에 가성비, 세련된 디자인까지 갖췄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게 ‘갖고 싶은 제품’, ‘좋아하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뛰어난 성능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특히 프리미엄 시장에서 선두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세계 점유율은 1위지만, 프리미엄폰만 놓고 보면 애플 점유율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애플 소비자층을 뺏어오기 위해서는 애플의 감성마케팅을 뛰어넘는 전략이 필요하다.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결국 공간이다. 국내 하이마트 같은 미국 전자제품 판매점에서 애플 아이폰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지만 갤럭시 시리즈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내가 아끼는 스마트폰이 마트에서 싸게 팔리는 걸 좋아하는 소비자는 없을 것이다. 갤럭시 시리즈의 품격에 맞는 멋진 공간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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