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낭암 어떻게 생기나...韓 의료진이 처음으로 비밀 풀었다
분당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김지원 교수팀(강민수 교수, 병리과 나희영 교수, 삼성서울병원 병리과 안수민 교수)이 정상 담낭 상피 세포가 전암성 병변을 거쳐 원발 담낭암, 전이성 담낭암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세계 최초로 발표했다. 이는 돌연변이를 가진 종양 클론의 시간·공간적 변화 추적의 중요성을 강조한 연구로, 환자에게서 보다 효과적인 표적항암제를 선택하는 데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담낭(쓸개)은 지방의 소화를 돕는 쓸개즙을 농축·저장하는 주머니다. 여기서 생기는 암세포 덩어리가 담낭암이다. 담낭암의 전 세계 평균 발병률은 암 중에서 20위로 낮은 편이다. 하지만 한국(8위)을 포함한 태국·중국·칠레 등 일부 나라에선 높은 발병률을 보이는데, 상당수가 진행된 후에야 발견되는 탓에 완치가 쉽지 않다.
최근 암 관련 유전자에 발생한 돌연변이를 표적으로 하는 표적항암제 치료가 주목받는다. 이론적으로는 특정 환자의 암세포가 모두 같을 때 한 가지 표적항암제 투여만으로도 손쉽게 암세포를 박멸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이러한 암세포의 내성 기전을 이해하려면 암의 발생·진화 과정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그런데도 그간 담낭암의 발병·전이 기전에 대한 연구는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었다.
이에 김지원 교수팀은 전이성 담낭암으로 사망한 환자 2명을 신속 부검해 다수의 정상조직, 전암성 병변, 원발암·전이암 병변을 확보해 연구를 시작했다. 담낭암 환자 9명을 추가로 분석해 담낭암의 발병·전이 과정을 관찰했다.
연구 결과, 암 전(前) 단계인 전암성 병변에서부터 세포들의 돌연변이 분포가 매우 다양했다. 하나의 전암성 병변은 병변을 이루는 세포들의 돌연변이 분포에 따라 여러 개의 세포군집(클론)으로 구성되는데, 클론끼리 서로 경쟁하면서 이긴 클론이 선택되는, 즉 '다윈의 진화론'에서 '적자생존의 원칙' 또는 '선택적 싹쓸이'라 불리는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원발암으로 변했다.
이렇게 진화한 원발암을 구성하는 클론도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돌연변이를 획득하면서 새로운 여러 개의 클론으로 진화했다. 이후 경쟁을 통해 이긴 클론이 선택됐고, 그중 일부가 다른 장기에 전이됐다. 이 과정에서 암세포 1개 또는 클론 1개가 다른 장기로 전이되는 게 아니라 여러 개의 암세포 또는 클론이 동시에 전이됐다. 전이된 암세포나 클론 역시 돌연변이 획득→ 다양한 클론으로 진화→ 경쟁 단계를 거쳤다.
연구팀은 이렇게 복잡한 과정이 담낭암 환자의 몸속에서 지속해서 발생하기에 담낭암의 치료가 어려운 것이라고 해석했다. 따라서 담낭암을 치료할 때 종양 클론의 시간·공간적 변화를 추적해 최적의 표적항암제를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의 1 저자인 분당서울대병원 강민수 교수는 "담낭암의 대표적인 유전자 돌연변이는 전암성 단계에서부터 존재하지만 돌연변이 중 상당수는 암세포 일부에서만 관찰된다"며 "유전자 돌연변이를 표적으로 삼는 표적항암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암 유전체 데이터에서 단순히 돌연변이 존재 여부만 확인하지 말고 돌연변이를 가진 종양 클론의 시간과 공간적 변화를 추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신저자 김지원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담낭암의 발병·전이 기전을 보다 깊은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었지만, 연구 결과를 실제 환자에게서의 치료 효과로 연결하려면 각각의 유전자 돌연변이를 무력화하는 신약 개발이 필수"라며 "연구를 시작할 수 있도록 '시신 기증'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주신 환자 두 분과 유가족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연구는 2018년 교육부의 한국형 SGER(Small Grant for Exploratory Research) 과제로 선정돼 3년간 지원받았으며, 의생명과학분야에서 저명한 국제학술지인 '이라이프(eLIFE)'에 실렸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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