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한 생활력으로… 홀로 하숙 치시며 네 아들 장가 보낸 어머니[그립습니다]

2023. 2. 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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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김옥수 여사(1932∼2023)

몸 고생만 하신 게 아니었다. 마음고생도 적잖은 인생이었다. 1980년대 초반 필자가 중·고등학생 시절, 어머니는 서울 안암동 고려대 부근에서 하숙을 치셨다. 한때 잘 나가던 양복장이셨던 부친께서 늑막염으로 앓아눕자 생계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아들 넷 키우기도 벅찼지만 제대로 된 교육도, 기술도 받지 못하셨던 어머니의 강인한 생활력이 막노동에 가까운 하숙을 지탱하게 했다. 세탁기도, 냉장고도 없던 세간살이 형편으로 매일 손빨래에 하루 세 끼 밥상 차려주고, 새벽마다 연탄불을 갈아줘야 하는 강행군을 어머니는 기꺼이 감내하셨다.

당시 필자의 집은 낡은 2층 한옥이었는데 4개의 다다미방이 있던 2층은 골목길에서 직접 출입이 가능한 문을 두고 있었다. ‘설마’ 했지만 지나고 보니 개구멍이 됐다. 나중에 듣기로는 몇 개월 밀린 하숙비를 내지 않고 야반도주했던 재학생과 재수생들이 여럿 있었다고.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연로한 어머니와 과거를 회상하는 대화 도중 야반도주 하숙생을 떠올리며 “이제라도 사과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후덕한 인심의 어머니였음에도 못내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 당시 어머니는 허리 디스크로 심한 육체적 고통을 겪으셨다. 어머니의 고생을 안쓰럽게 쳐다보며 부박한 신앙심에도 쾌유를 구하는 기도를 밤마다 간절히 했던 기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1932년생이신 어머니의 고향은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에 나오는 영변 바로 아래 평안남도 안주다. ‘내 고향 안주 찬가’(안재근 작사, 김동진 작곡)를 보면 ‘동쪽은 태조봉, 서쪽은 대왕, 남쪽은 마두산, 북쪽은 청천강’을 접한 물 맑고 아름다운 곳으로 묘사돼 있다. 수양제의 침략군 30만 명을 살수에서 수장시킨 을지문덕 장군의 넋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6·25 전쟁 통에 1951년 1월 4일, 이팔청춘의 나이에 나고 자란 곳을 등지고 피란길을 피할 수 없었던 어머니는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셨다. 끝내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그 한(恨)도 모른 채 어머니 입에서 가끔 튀어나오던 특이한 이북 사투리에 키득댔던 어린 시절이 부끄럽기만 하다.

피란 이후 어머니의 간난신고는 동시대를 겪은 한국인 대부분의 경험이었겠지만, 가정과 아내에 대한 남편의 방치 속에 아들 넷 장가보내고 65세부터 91세까지 26년을 홀로 외롭게 사신 어머니이기에 가슴이 더욱 아리다. 특히 인생 말년의 10년 가까운 요양원 생활은 여기저기 다니기 좋아하셨던 어머니의 발을 묶어놓게 돼 죄스러운 마음 가득하다. 처음 가신 경기 안산의 한 요양원을 방문했을 때 “막내야∼ 나 좀 나가게 해달라”는 간청은 여전히 귓전을 맴돈다. 필자에게도 부메랑이 되리라. 나중에 어느 신문 르포 기사에 요양원을 ‘창살 없는 감옥’ ‘죽어야 나갈 수 있는 곳’이라며 ‘자식 입장의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증언에 면죄부 삼기는 했지만 홀로 외로움과 그리움에 밤새 서러우셨을 어머니, 그 어머니를 올해 초 떠나보내고서 필자 역시 며칠을 불면에 시달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언젠가부터 마음의 평온을 찾은 듯 뵐 때마다 환한 미소로 자식들을 맞이해 주셨다. 이번 장례식 빈소에 올린 영정 속 사진이 봄꽃 흐드러진 공원을 어머니와 함께 산책하며 찍은 모습이다. 자신 때문에 자책할 자식을 생각한 어머니의 마지막 선물이리라.

“저는 느낍니다. 말할 수 없이 선한 어머니의 모습이 수천 겹으로 저를 에워싸고 있음을.” 헤세의 시처럼 어머니는 지금도 여전히 자식들을 겹겹이 돌보고 계실 것이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박상현 ㈜ 함파트너스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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