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광란의 피닉스오픈'에서 누가 웃을 것인가?

방민준 2023. 2. 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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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피닉스오픈이 열리는 TPC 스콧데일 스타디움코스 16번홀 전경이다. 사진은 2022년 경기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스포츠 중에 정숙을 요구하는 종목을 꼽자면 단연 골프가 으뜸이다. 대부분 스포츠가 선수와 관중이 혼연일체가 되어 열광의 도가니에 휩싸이지만 골프만은 경기 중 정숙을 요구한다. 물론 결정적인 순간 소음이 없는 정숙을 요구하는 것은 골프 외에도 테니스 양궁 사격 역도 등이 있지만 골프만큼 긴 시간, 그리고 자주 정숙을 요구하는 스포츠는 없다.



그러나 오는 10~13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근교 스콧데일의 TPC 스콧데일 스타디움코스(파71·7261야드)에서 열리는 WM(웨이스트 매니지먼트) 피닉스오픈은 예외다. 아무 제약 없이 감정을 표출하는 스포츠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소란한 대회다. 광란(狂亂)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대회다.



 



음주가 허용된 관중석에선 맘껏 환성과 야유를 보낼 수 있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가 하며 일부 갤러리들은 마리화나를 피우며 해방감을 만끽한다. 관중의 상당수는 골프의 문외한이어서 고전적인 골프 에티켓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특히 일부 홀은 스타디움 형태의 관중석으로 둘러싸여 그야말로 야외 록 페스티벌 공연장을 방불케 한다. 로마시대 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결투를 벌이는 콜로세움을 연상시킨다.



맥주 캔을 든 갤러리들은 경기 중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환호와 야유, 잡담을 털어놓고 심지어 오렌지나 캔을 선수를 향해 던지기도 한다. 2001년 대회에서 타이거 우즈는 자신에게 오렌지가 날아오는 봉변을 당한 뒤 상당 기간 대회출전을 포기했을 정도다.



 



스코츠데일 TPC의 관전 풍경이 바뀐 것은 대회 장소가 피닉스 컨트리클럽에서 이곳으로 바뀐 1987년부터라고 한다. 당시 16번 홀(파3) 티잉그라운드 뒤편으로 작은 관람석을 설치하고 부근에 TGIF(Thank God, It's Friday) 텐트를 설치, 맥주를 팔았는데 이 관람석이 인기가 높았다. 공교롭게도 대회 시기가 미국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인 미국프로풋볼리그(NFL) 결승전인 슈퍼볼(Super Bowl) 대회와 겹치면서 PGA 측은 이 대회가 슈퍼볼의 인기에 묻히지 않기 위해 고심 끝에 관람석을 대폭 확대하고 음주가무를 허용, 피닉스오픈이 광란의 대회로 발전(?)하는데 큰 몫을 했다.



 



슈퍼볼은 미국은 물론 세계 최고의 단일경기 이벤트다. 미식축구 양대리그인 NFC(National Football Conference)와 AFC(American Football Conference)의 우승팀이 단판 승부를 가리는 대회다. 미국 최고의 저명인사들이 관람석을 메우고 중계방송은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한다. 대회장 광고료는 천문학적으로 높고 경기 중간에 최고의 가수가 출연해 화려한 공연을 펼친다. NFC의 챔피언 필라델피아 이글스와 AFC의 챔피언 캔자스시티 치프스가 대결을 벌이는 올해 슈퍼볼에선 가수이자 배우인 리한나(35)가 하프타임 공연에 나선다.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바베이도스 출신의 리한나는 2018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소울 R&B 여성아티스트상을 수상했다. 



 



피닉스오픈 마지막 라운드가 열리는 날에 슈퍼볼 대회가 열린다. PGA투어 측이 콜로세움을 방불케 하는 관람석을 만들고 음주와 가무를 허용한 이유가 납득이 된다. 피닉스오픈과 슈퍼볼이 열리는 장소 역시 애리조나주 피닉스 근교로 각각 피닉스 서북쪽과 동북쪽에 있어 관객 유치전을 가열시켰다.



 



대회 기간 중 매일 15~20만 명의 갤러리들이 운집하는 피닉스오픈은 관중 수만 놓고 보면 슈퍼볼을 능가한다. 제57회 슈퍼볼 대회가 열리는 글렌데일의 스테이트 팜 스타디움의 최대수용인원은 7만여 명으로 입장객 수만 놓고 보면 피닉스오픈과는 비교가 안 된다. 스타디움의 특성상 입장객 수는 한정돼있는데도 불구하고 경기 중 광고단가가 천문학적으로 비싸고 TV 시청률이 50%에 육박하는 점을 감안하면 슈퍼볼이 북미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나흘 동안 매일 20만이 넘는 갤러리들이 몰려들어 광란에 가까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TPC 스콧데일의 피닉스오픈은 결코 슈퍼볼 대회에 뒤지지 않는다.



 



TPC 스콧데일 스타디움코스는 갤러리의 입장에선 '골프 해방구'나 다름없으나 소음의 도가니 속에서 경기해야 하는 선수들에겐 '고행(苦行)의 코스'이기도 하다. 
15번 홀에서 좁은 터널을 지나 16홀로 들어서면 지금까지 돌아온 홀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코스 주변에는 거대한 관람석이 설치돼 관중이 들어차 있다. 조용하고 품위 있는 관중이 아니라 농구장이나 야구장 미식축구장에서 맥주를 마시며 즐기는 광적인 스포츠팬들이다.



 



16번 홀 자체는 별로 특별할 게 없다. 페어웨이를 따라 긴 인공사막이 펼쳐져 있고 그린은 4개의 벙커로 에워싸인 162야드 파3 홀이다. 평소 같으면 무미건조한 이 홀이 대회가 열리면 상황이 돌변한다. 티잉그라운드 주변에서부터 코스 양옆, 그리고 그린 주변에까지 거대한 관람석이 에워싸 16번 홀 자체가 콜로세움으로 변한다. 그리고 관람석을 매운 관중들은 먹고 마시고 떠들고 노래하며 응원과 야유로 광란에 가까운 열정을 쏟아낸다.



 



스코티 셰플러가 2022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피닉스오픈 연장전에서 우승을 확정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고도의 정신집중을 요하는 선수들에게 16번 홀은 공포의 홀이다. 콜롬비아의 카미오 비제가스는 "팬들이 미쳤다. 술을 마시며 소리 지르고 야유를 쏟아내는 것을 참기 어렵다"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브렌트 스니데커는 "16번 홀로 가는 게 겁난다."고 실토했다. 톰 레이먼은 "16번 홀에서의 플레이는 마치 로즈볼 경기장에서 골프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선수들 대부분이 16번 홀을 어떻게 견뎌 낼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선수들은 라운드를 제대로 하기 위해선 "귀를 막아야 한다." "낯가죽이 두꺼워야 한다." "철심장을 가져야 한다."는 등 나름의 비방을 내놓지만 시장바닥이나 공연장을 방불케 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철저하게 현장의 분위기를 즐기는 길 외에 무슨 묘방이 있을까 싶다.



 



총상금 2000만 달러에 우승상금 360만 달러의 빅 이벤트인 이번 대회에 세계랭킹 1~3위를 비롯해 상위 20위 중 18명이 출사표를 던져 치열한 우승 경쟁이 예상된다. 세계 1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와 2위 스코티 셰플러(미국), 3위 존 람(스페인)의 대접전이 주목된다.



한국 선수로는 김주형(21) 임성재(25) 김시우(28) 이경훈(32)이 출전한다. 갤러리와의 교감에 특별히 강한 김주형, 최근 상승세를 이어가는 김시우 이경훈의 선전이 기대된다. 강성훈(38)은 월요예선을 통해 출전할 계획이었으나 AT&T 페블비치 프로암 대회의 지연으로 인근 공항까지 왔으나 월요예선 티오프 타임에 대지 못해 발길을 돌렸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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