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 기후기술 시뮬레이션 탁월…소비 에너지 슈퍼컴의 0.1%”

주영재 기자 2023. 2. 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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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IQM 공동창업자 쿠앤 엔 탄 인터뷰

[주간경향] 양자물리학은 상대성이론과 함께 현대 물리학의 양대 기둥으로 불린다. 양자물리는 분자와 원자, 전자 등 눈으로 볼 수 없는 미시세계에서 적용되는 물리 법칙이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0과 1의 상태를 동시에 표현하는 ‘중첩’과 서로 양자적으로 얽혀 있는 두 입자는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한 입자의 상태가 결정되면 동시에 다른 입자의 상태도 결정된다는 ‘얽힘’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과학기술의 많은 부분이 이런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반도체와 레이저, 양자점 디스플레이, GPS 위성에서 쓰는 원자시계 등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 이후 양자컴퓨터의 개념이 등장하고, 21세기 들어 구글과 IBM 등 거대기업이 초기 단계의 양자컴퓨터를 구현하면서 지금은 새로운 양자혁명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양자컴퓨터는 중첩과 얽힘의 특성을 연산에 활용한다. 여러 변수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서 신약 개발, 신소재 개발을 위한 시뮬레이션 등에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특히 암호화 알고리즘(RSA)을 풀려면 기존 컴퓨터로 수만~수억년 이상의 천문학적 시간이 걸리지만 양자컴퓨터로는 수초 만에 풀 수 있어 군사, 금융 보안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각국이 양자컴퓨터를 전략기술로 육성하는 이유다.

유럽에서 주목받는 회사로 핀란드의 초전도 양자컴퓨터 개발 회사 IQM을 들 수 있다. 핀란드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헬싱키 인근 에스포에 본사를 둔 IQM은 지난해 7월 월드펀드(World Fund) 등에서 1억2800만유로(약 1721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누적 투자 규모로 유럽 내 양자컴퓨터 분야 회사 중 가장 많은 투자를 받았다. 월드펀드는 유럽 최대규모의 기후펀드로 연간 최소 100메가톤(Mt)의 온실가스 절감 효과가 있는 기후기술에만 투자한다. 핀란드 무역대표단의 일원으로 지난 1월 29~31일 방한한 IQM의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기술책임자(CTO)인 쿠앤 엔 탄(Kuan Yen Tan)은 31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주간경향과 만나 양자컴퓨터가 기후기술 개발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등 국내 반도체 회사와 양자 프로세서 제조, 현대기아차 등과는 배터리 최적화를 위한 협업을 기대하고 있다고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핀란드의 양자컴퓨터 개발 기업 IQM의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기술책임자(CTO)인 쿠앤 엔 탄이 1월 31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주간경향과 만나 양자컴퓨터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창업의 계기는.

“회사의 공동설립자는 4명으로 미코 모토넨(Mikko Möttönen)이라는 사람이 주도했다. 알토대학교와 핀란드 국책 연구기관인 VTT 기술연구소의 공동 교수이기도 하다. 양자컴퓨터를 만들어 기업에 판매하는 회사를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내게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거절할 수 없는 완벽한 제안이었다. 당시 대학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양자컴퓨터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 과정이 매우 느리다고 느끼고 있던 터였다. 연구를 하는 것과 그 결과물로 제품을 만드는 일은 정말로 큰 차이가 있다. 기술력이 있는 사람뿐 아니라 자원도 필요하다. 그때 바로 그런 조건을 갖춘 마이크로소프트에 합류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기업은 거대한 구조 때문에 일이 매우 느리게 전개되는 특성이 있다. (인적·물적 자원과 속도감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싶었다. 모토넨 교수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게 우리가 이 일을 함께 시작하게 된 이유다. 2018년 4월에 설립했는데 종잣돈 단계의 투자금을 받는 데만 1년 이상이 걸렸다.”

-반도체 기술이 양자컴퓨터 칩 개발에도 적용될 수 있나.

“양자컴퓨터를 구동하는 건 양자 칩이다. 양자 칩 제조 자체만 보면 필요한 과정의 80%는 삼성의 파운드리에서도 볼 수 있는 기술이다. 물론 초전도 양자컴퓨터와 같은 양자 칩을 만들 때 필요한 소재는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반도체에서 사용하는 재료는 아니다. 반도체 제조에 사용하는 기계는 양자 칩 제조에 사용하는 기계와 매우 유사하다. 삼성전자가 양자컴퓨팅에 집중한다면 출발점부터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IQM의 양자컴퓨터를 어디에 쓸 수 있는가.

“우리 회사는 이미 ‘온프레미스’(클라우드 서비스가 아닌 현장에 물리적으로 설치해 고객의 접근성을 완전히 보장하는 방식) 제품인 5큐비트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 이 컴퓨터는 실제 고객의 연구개발(R&D) 목적으로 사용된다. 우린 핀란드의 CSE라는 슈퍼컴퓨팅 제공업체와 함께 양자컴퓨터를 ‘루미 슈퍼컴퓨터’ 센터에 연결했다. 루미 슈퍼컴퓨터는 유럽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세계 3위)다. 양자컴퓨터와 슈퍼컴퓨터를 통합하는 연구가 중요하다. 양자컴퓨터는 오늘날의 고전 컴퓨터를 결코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터는 지금의 그래픽 카드가 클래식 컴퓨터에서 가속기 역할을 하는 것과 비슷한 가속기 역할을 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와 슈퍼컴퓨터의 통합이 필요한데 현재는 아직 구현된 사례가 없다. 많은 연구개발이 필요하다. IQM은 이미 회사 내부에서 20큐비트 양자컴퓨터를 만들어 시험 중이다. 올해 이 컴퓨터를 VTT와 독일의 슈퍼컴퓨팅 센터인 LRZ에 제공할 계획이다. 특정 문제 해결에 특화된 양자 ASIC(특정 용도용 집적회로)와 칩도 공동설계하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양자의 고유한 특징인 중첩과 얽힘을 사용해 다수의 패턴을 동시에 계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53개의 큐비트(양자비트)를 탑재한 양자컴퓨터가 있다면 2의 53승, 즉 약 1경까지의 패턴을 중첩하고 그 상태를 변화시켜 계산할 수 있다. 현대의 컴퓨터는 중첩상태를 나타내는 1경개의 진폭과 위상을 모두 기록하면서 그것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하나하나 계산해야 한다. 최첨단 슈퍼컴퓨터로도 어려운 작업이다. 현재 50큐비트 정도의 양자컴퓨터로 슈퍼컴퓨터를 능가하는 ‘양자 우위’를 누릴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처음 읽는 양자컴퓨터 이야기>(다케다 슌타로·2021.11) 참고). 큐비트는 서로 다른 두 상태를 가질 수만 있다면 어떠한 양자계(분자·원자·전자 등)로도 만들 수 있다. 빛과 자기장으로 이온 혹은 원자를 포획하는 이온 덫(트랩), 극저온에서 전기저항을 0으로 만든 초전도 회로에 극초단파를 가해 전류를 중첩상태로 만드는 초전도 루프와 실리콘 조각에 전자를 넣어 극초단파로 전자의 양자 상태를 제어하는 실리콘 양자점 등이 이용된다.

-VTT와 54큐비트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2024년 54큐비트 양자컴퓨터를 VTT에 인도할 예정이다. 54큐비트는 칩 자체에 알고리즘을 실행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 큐비트가 54개 있다는 의미다. 지금의 컴퓨터가 트랜지스터 개수가 많을수록 더 강력하듯 양자컴퓨터도 큐비트가 많을수록 (확장성 면에서) 좋다. 하지만 품질(계산의 정확성)도 매우 중요하다. 큐비트가 많아도 품질이 낮으면 거의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54큐비트라면 양자우위가 가능한가.

“슈퍼컴퓨팅 성능이 개선되고 있지만 54큐비트는 여전히 양자 우월성을 달성하는 데 충분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문턱이 아니다. 사람들이 (고전 슈퍼컴퓨터의) ‘느림’을 깨달아야 한다. 만약 54큐비트가 양자우월성을 달성하는 문턱인데, 56개의 큐비트를 갖고 있다고 치자. 고전 컴퓨터가 이 양자 우월성을 따라잡으려면 4배의 성능 향상이 필요하다. 큐비트가 늘어날수록 그 격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핀란드의 초전도 양자컴퓨터 개발 회사 IQM의 연구진들이 자사가 개발한 양자컴퓨터를 살펴보고 있다. IQM
IQM 직원이 핀란드에 있는 양자컴퓨터 조립 시설에서 일하고 있다.

-맥킨지는 양자컴퓨팅을 사용해 개발된 기후 기술이 2035년까지 연간 7기가톤(Gt)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양자컴퓨터가 기후위기 해결에 도움이 되나.

“직접적으로는 양자컴퓨터를 사용해 탄소포집을 가능하게 하는 촉매와 탄소의 상호 작용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기 필터를 통해 공기에서 직접 탄소를 포집하는 화학물질을 만들 수 있다. 태양 전지판과 배터리의 효율을 높이거나 전력망 최적화를 위한 시뮬레이션을 할 수도 있다. 더 적은 에너지로도 세계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 그만큼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도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성능을 보여주는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의 슈퍼컴퓨터는 40메가와트(미국 내 3만 가구의 전력 수요)의 전력을 사용한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같은 양의 계산을 할 때 최대 1000배 적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양자컴퓨터가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간접적인 방법의 하나다.”

-노트북 같은 양자컴퓨터도 나올까.

“상온에서 작동할 수 있는 양자컴퓨팅 기술은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일반적으로 양자컴퓨터의 크기가 큰 건 극저온 상태(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영하 269℃)를 유지하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터는 실제로는 냉동고와 같다. 양자 칩 자체는 스마트폰에 들어 있는 칩보다 더 작다.”

-구글과 IBM 같은 선두주자와 IQM의 특장점은 무엇인가.

“구글과 IBM은 잠재적으로 수백만 큐비트를 갖춘, 그러면서도 소위 말하는 양자 오류를 수정한 미래의 양자컴퓨터를 지향하고 있다. 지금의 양자컴퓨터는 오류가 많다. 오류 없이 알고리즘을 실행할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제한적이다. 우리 장점은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양자컴퓨터, 그리고 향후 2~5년 안에 나올 양자컴퓨터로 이미 할 수 있는 일부 응용 프로그램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노이즈(오류)에 강한 알고리즘을 갖고 있다. 일부 알고리즘은 노이즈에 취약하지만, 정보가 손실되기 전에 이러한 알고리즘을 충분히 실행할 수 있을 정도다. 따라서 양자 오류를 수정하는 일 없이도 이미 유용한 양자 계산법을 통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투자자들이 주목한 점은.

“회사 내에 매우 강력한 팀을 보유하고 있다. 연구뿐만 아니라 실제로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엔지니어 기술과 생산시설 확장을 시도 중이다. 칩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는데 도움을 주는 극저온 시스템을 제공하는 블루포스(Bluefors) 같은 회사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 동시에 우리 시스템 개선에 필요한 연구를 하는 학계의 지원을 받고있다. 알다시피 양자 엔지니어들은 정말 드물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양자 엔지니어 확보는 매우 어려운 과제다. 작은 회사나 지역에서 거대한 팀을 갖추는 건 정말로 큰 노력이 필요하다. 투자자들이 우리에게 주목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투자자들은 우리가 매우 설득력 있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연구만 하는 게 아니라 양자컴퓨터를 어떻게 판매할지 알고 있고, 데이터센터 등 잠재적 시장을 개척하고 있어서다.”

-한국 방문에서 기대하는 바는.

“한국이 양자 기술을 매우 전략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들었다. 한국은 디지털 기술의 거의 모든 측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지금은 양자 기술이 새로운 기회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한국의 연구기관들은 이미 모든 기반 기술을 개발 중이다. 전체 시스템을 구축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이 기술을 통합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규모를 키우고 성능을 높여 사람들이 실제 접근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IQM은 양자컴퓨터 시스템 통합과 확장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한국과 협력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양국이 양자 기술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도록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고 싶다. 기업 측면에서 우리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산업에서 많은 잠재력을 보고 있다. 파운드리 기술을 활용하면 양자컴퓨팅 칩 생산에 나설 수 있다. 현대·기아차 같은 자동차회사도 협력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미 이 회사 내부에 배터리 최적화를 목적으로 하는 양자컴퓨팅 팀이 있다고 들었다. 배터리의 무게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에너지 저장 용량을 키운다면 주행거리를 크게 늘릴 수 있다.”

-한국이 취해야 할 추격 전략은.

“한국은 양자컴퓨팅의 기초 연구에서 엄청난 R&D 역량을 갖고 있다. 파운드리, 극저온 기술뿐만 아니라 초전도 큐비트, 이온 트랩, 실리콘 스핀 큐비트 등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기술 가속화를 위해서는 연구개발의 집중과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실험실에서 뭔가를 구축하는 것과 실제 현장에서 제품을 구축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양자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학계·산업계·정부 세 영역이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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