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기 칼럼]노사 함께해야 진정한 노동개혁

여론독자부 2023. 2.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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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 객원교수]
정부, 밀어붙이기식 속도전보다
노동개혁은 사회적 타협이 효과적
이전정부 실패경험 반면교사 삼아
경사노위, 대화 테이블 주선 필요
[서울경제]

사회적 대화와 타협은 어감도 좋고 선한 의지를 담고 있지만 내용을 따져보면 간단한 개념은 아니다. 사회적이라고 할 때 주체가 누구이고 왜 정부나 시장이 결정하지 않고 이익단체 대표와 대화하고 타협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정부는 법에 따라 집행(법치)하고 시장은 가격에 따라 결정하면 그만이지만 사회적 대화의 목표는 이해관계자 합의일 뿐이다. 합의가 보장된 것도 아니고 그것이 최선이라는 근거도 없다. 그런데도 사회적 대화가 한국에 뿌리내리고 제도화까지 된 이유는 여러 분야에서 나름의 효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 개혁의 경우 정부 주도의 밀어붙이기보다 사회적 대화와 타협이 더 효과적이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할 최근 사례 두 가지.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취임하자마자 비정규직 관련 규제를 없애거나 사용 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려고 했다. 2007년 하반기부터 시행된 비정규직보호법 때문에 100만 명의 비정규직 고용이 위태롭다며 시급성을 호소했다. 그러나 2년이라는 기간은 2004년 이후 3년여 노사정위원회의 갑론을박과 국회 차원의 협상을 거쳐 어렵사리 도출된 사회적 합의였다. 1년 만에 이를 뒤집는 것은 무리였다. 노동계와 야당의 거센 반발에 밀려 정부는 태도를 바꿔야 했고 2009년에는 오히려 고용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적 대화에 나섰다.

더 뼈아픈 실패 사례도 있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위한 9·15 대타협’이라는 큰 성과를 내고도 과욕을 부렸다. 정부 여당은 대타협에서 미래 과제로 남겨뒀던 몇몇 킬러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였지만 역부족이었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38개 경제 단체를 내세워 ‘민생 구하기 입법 촉구 천만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대통령이 노동 개혁 4법의 국회 처리를 촉구하는 담화를 발표하고, 거리 캠페인까지 나섰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서명운동도 문제였지만 합의 당사자였던 한국노총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민 여론을 동원해 밀어붙이려다가 정부는 신뢰만 잃고 말았다.

이런 실패 경험은 윤석열 정부의 노동 개혁에 반면교사가 된다. 때마침 개혁 구상이 구체화하고 있다. 정부는 고용노동부의 상생임금위원회와 노동관행자문단,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노사관계관행개선자문단과 노동시장이중구조연구회 등 4개의 전문가 자문위원회를 개혁의 엔진처럼 활용할 모양이다. 여기서 추려진 개혁 과제를 행정부가 바로 처리하거나 경사노위 대화 테이블에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기대하는 바는 전문가 위원회를 통해 노동 개혁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끌어올려 노동계를 압박하는 것이리라.

여기에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정부 주도의 개혁 속도전은 사회적 대화를 통한 점진적 개혁은 포기하겠다는 의미다. 노사 관계의 법치 확립에 대한 지지가 높을 때 단김에 쇠뿔 빼듯이 노동 개혁에 속도를 내겠다는 뜻이겠지만 이는 정부의 오버 페이스로 보인다. 단적으로 노조의 불법을 질타한다고 그들이 모두 엘리트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노동 개혁을 찬성할 것이라고 오판하면 안 된다. 노조 지도부를 건너뛰어 근로자에게 직접 호소한다는 전략도 자칫 화려한 말만 무성할 뿐 개혁이 좌초할 가능성은 커진다. 민주노총이야 차치하더라도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대화와 타협의 파트너로 힘을 합쳤던 한국노총까지 구경꾼 내지는 방해꾼으로 밀어낸다면 그 개혁은 성공하기 어렵다.

노동부가 임금 체계 개편에 발 벗고 나선 것도 무리고 경사노위가 자문단과 연구회를 구성해 공론화를 주도하겠다는 것도 억지스럽다. 이는 사회적 대화 기구라는 경사노위의 기관 사명조차 무색하게 한다. 노동 관행이나 임금 체계야말로 노사가 앞장서고 정부가 지원하는 구조가 돼야 정상이다. 정부는 이런저런 위원회를 띄우기 전에 노동계와 대화에 나서야 한다. 경사노위는 대통령자문위원회답게 모든 개혁 논의에 앞서 대통령과 노사 단체 대표의 대화 테이블을 주선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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