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윈 - ‘올해 가장 신선한 충격’? 글쎄요[시네프리뷰]

2023. 2. 8.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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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반쯤 휴대전화를 살짝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43분. 영화가 어떤 길을 갈까 대충 알아차린 시점이었다. 그리고 예상을 벗어나진 않았다. A24 영화사라고 매번 홈런 치는 영화만 발굴해낼 수 있는 건 물론 아닐 것이다.

제목 트윈(The Twin)
제작연도 2022
제작국 핀란드
상영시간 108분
장르 공포
감독 타넬리 무스토넨
출연 테레사 팔머, 스티븐 크리, 트리스탄 루게리
개봉 2023년 2월 8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배급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영화 시사회를 보고 돌아와 홍보사가 보내온 e메일을 찬찬히 다시 봤다. 들풀인지 보릿대인지 모를 소재로 엮은 관을 쓰고 있는 여성. 곰곰이 생각해봤다. 저런 장면이 있었던가. 설정 샷이다. 제목은 <트윈>, 그러니까 쌍둥이인데 여성이 안고 있는 아이는 하나이고, 모자 뒤엔 험상궂은 표정을 한 아이의 그러데이션이 희미하게 덧붙여져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쌍둥이 중 하나에 어떤 문제가 생겼고, 거기에 기인한 공포를 다루는 영화라는 설정이다.

포스터는 “A24 <멘> 제작진 참여”라는 것을 강조하며 “<유전>, <미드소마>보다 미친 영화”라는 제목을 메인카피로 뽑고 있다. <유전>, <미드소마>의 감독은 아리 에스터다. 포스터 콘셉트를 보면 이 코너에서 리뷰한 <미드소마>가 떠오르긴 한다. 스웨덴 오지에 여행을 간 대니 일행이 겪게 된 낯설고 섬뜩한 토속문화를 다룬 <미드소마>의 포스터엔 머리에 꽃장식을 한 주인공이 체념한 듯, 웃는지 우는지 모르는 표정으로 있는 얼굴이 클로즈업돼 있다. ‘미친 영화’라는 것은 못 만들었다든가, 막 나간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으리라. <유전>, <미드소마>를 능가하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라는 뜻일 것이다. 과연 그럴까.

A24 영화사와 <미드소마>를 내세운 까닭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 아이를 데리고 차를 운전하던 레이첼은 뜻밖의 사고를 당한다. 병원에서 깨어난 레이첼은 같이 타고 있던 아들 네이트(한글로 번역된 자막은 네이트라고 돼 있는데 아이의 이름은 네이든(Nathan)이다)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울부짖는다. 상념에 사로잡힌 레이첼은 남편의 고향인 핀란드의 시골 빈집으로 이주한다. 남편 안토니는 유명작가다. 남편에게 유명세를 안겨준 소설은 자신이 어린시절 경험했던 핀란드의 그 시골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환영파티에 모여든 사람들에 따르면 동네 사람들은 전 세계적으로 히트 친 그 소설을 집마다 한 권씩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동네 사람들, 조금 이상하다. 레이첼과 그 ‘교통사고에서 살아남은’ 쌍둥이 아들 엘리엇을 바라보는 태도가 어색하다. 그리고 아들 엘리엇이 보이는 이상행동. 자기 방에 죽은 네이트의 침대를 놔달라고 한다든가, 부모의 눈에 보이지 않는 네이트가 살아 있는 듯 대화한다. 때때로 엄마의 시선에서 사라져 남은 아들 하나마저 잃을 듯한 트라우마를 건드린다.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는 레이첼에게 홀로 사는 과부 헬렌이 접촉해온다. 자신의 남편이 악령에 씌워 죽었다고 말하는 헬렌은 동네 사람들이 은밀한 사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과 그들과 작당한 남편은 하나 남은 자식마저 악마에게 바치려고 하는 걸까.

평탄한 이야기 전개, 연출의 문제

“올해 가장 신선한 반전과 충격을 전할”. 영화사가 택한 홍보 문구다. ‘신선한 반전과 충격’이었을까. 글쎄. 영화 중반쯤 휴대전화를 살짝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43분. 영화가 어떤 길을 갈까 대충 알아차린 시점이었다. 그리고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다시 찬찬히 생각해봤다. 왜 오컬트영화라고 한 걸까. 사려 깊은 동네 사람들이 알고 보니 밀교의 숭배자들이었고, 자신의 순결한 아이를 뺏어 악마의 재림을 위한 희생양으로 사용한다, 는 주제와 관련해서는 이미 <악마의 씨(Rosemary’s Baby)>(로만 폴란스키 감독·1968)와 같은 걸작 영화가 있다. 레이첼네 가족이 이사한 집 앞에는 웅덩이가 있다. 엘리엇이 사라져 혹시 웅덩이에 빠져 죽은 것이 아닌가 전전긍긍하며 뛰어다니는 레이첼의 모습에서 역시 스릴러 영화의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돈 룩 나우(Don’t look now)>(니콜라스 뢰그 감독·1973)와 같은 영화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스토리가 뒤집히는 반전을 이야기하기엔 영화가 깔고 있는 장치가 너무 허술하고 불친절하다. 앞서 영화 시작 후 43분 즈음에 영화가 깔고 있는 ‘트릭’을 눈치챘다고 했지만, 전반적으로 서스펜스의 고조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이야기 전개는 너무 평탄하게 흘러간다. 연출의 문제다. 영화사는 여러 장르에 걸쳐 독특하고 훌륭한 영화를 발굴하는 것으로 유명한 A24 영화사가 관여돼 있다고 전면에 내세우지만, 그 영화사라고 매번 홈런 치는 영화만 발굴해낼 수 있는 건 물론 아니리라.

디지털기기를 배제한 감독의 스토리텔링 전략

경향신문 자료사진


영화를 가만히 보다 보면 주인공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레이첼은 전직 사진작가다. 사진작가의 도구도 디지털로 넘어간 지 오래인데, 레이첼은 고집스럽게 필름카메라만 고집하고 있다. 남편을 잃은 적이 있는 헬렌은 사진을 찍어보면 그 전조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디지털카메라라면 액정이나 PC로 옮겨 그 결과물을 바로 확인할 수 있겠지만 레이첼은 시내에 있는 사진 가게에 가서 현상해오고 며칠이 지나서야 그 결과를 알 수 있게 된다. 분명 그네를 타는 아이의 사진을 찍었는데도 아이는 온데간데없고 빈 그네만 찍혀 있다. 아이는 어디로 간 것일까.

앞서 여러 고전 공포/스릴러영화를 거론했지만 “휴대전화가 없는 시대”를 설정해놓은 것은 과거 걸작 오컬트영화를 떠올리게 하려고 감독이 일부러 의도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스마트폰이나 SNS와 같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우리의 일상을 근본적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형태로 바꿔놓았다. 일본 공포영화사의 전후를 나누는 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링>(1998)에서 괴물 사다코의 전파 수단은 비디오테이프인데, 이제는 역사의 유물이 된 비디오테이프의 ‘공포’는 과거의 시대 속에 영화를 박제해놓고 있다.

한 국회의원의 페이스북 친구들을 살펴보다가 이미 고인이 된 많은 사람이 필자와 공통된 친구로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상념에 빠졌다. 2~3년 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도,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넘은 사람도 프로필 사진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는 듯 싱긋 웃으며 화면 넘어 필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아예 SNS와 같은 CMC(컴퓨터를 매개로 하는 커뮤니케이션)나 CCTV 등 전자매개 기록물만으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한 시대(<서치>·아니쉬 차칸티 감독·2018·사진)를 우리는 살고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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