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편집실에서]

입력 2023. 2. 8. 07:36 수정 2023. 2. 8.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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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현대차그룹이 흥미로운 애니메이션 영상 하나를 공개했습니다. 자동차로 상징되는 이동권이 공간의 제약 없이 무한대로 뻗어나가는 미래 세상을 암시하는 내용인데요. 영상 속 등장인물이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업무를 보고 영화도 보고 책을 읽습니다. 주차를 하는가 싶던 자동차가 건물과 도킹을 시도합니다. 출입구의 높낮이를 조절해 허리를 굽히지 않고도 자동차에서 건물로 걸어들어갑니다. 지인을 만나 요리를 하고 환담을 즐기던 주인공이 밤이 되자 자동차로 가서는 잠을 청합니다. 다음날 정시에 사무실로 출근하느라 허덕일 필요도 없습니다. 자동차 안에 웬만한 업무 처리가 가능한 인프라를 다 갖춰놓았네요. 직장과 집의 경계가 없습니다.

현대차가 그리는 꿈의 세상입니다. 사무실과 버스를 합친 ‘오피스버스’까지 나왔지요. 스마트폰이 일상을 지배한 지 이미 오래이고, 자동차 자체가 거대한 IT 기기가 되는 세상을 향해 인류는 나아가고 있습니다. 운전자 없이도 도심을 누비는 자율주행차량 기술의 발전속도로 미뤄 그리 먼 미래의 일만도 아닌 듯싶습니다. 현대차를 비롯한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모터쇼 못지않게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 열심히 참가합니다. 자동차와 IT 기업의 구분이 의미 없어진 세태의 반영입니다.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인 CES 2023 행사에 참석한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는 “미래는 쏟아지는 첨단 기술에 응용될 콘텐츠가 필수 요건이 되는 시대”라며 기술과 문화의 융합을 강조했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업무가 가능한 기술의 발전 때문에 인간은 더 편해졌지만 말도 못 하게 바빠졌습니다. 출근 전 아르바이트를 하고 투잡, 스리잡을 뛰며 365일 에너지를 풀가동합니다. 예전보다 빨라진 일처리 속도 덕분에 남는 시간을 휴식보다 추가 업무에 투입합니다. ‘부캐’를 만들어가며 가상세계까지 누벼야 합니다.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네트워크 아래서 잠시도 쉴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뼈 빠지게 일해도 3040세대는 전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덜 풍요합니다. 부모 세대보다 덜 건강하다는 연구결과까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인간답게 살겠다며 목소리를 내면 경청은커녕 훼방을 놓습니다. 현대차 양재동 본사 사옥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1인 시위를 봉쇄하겠다고 거의 매일 ‘유령집회’를 선점해 비판의 목소리를 원천 차단합니다. 무려 6년 넘게 이러고 있다고 합니다. 현대차는 지난해 4분기에 사상 최대의 실적을 달성했습니다. 지난해 상반기 글로벌 판매량에선 도요타, 폴크스바겐 그룹에 이어 세계 3위에 올랐습니다. 건물과 자동차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세상을 꿈꾸는 글로벌 기업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과는 아예 대화를 차단한 채 불통의 벽만 높이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한 기술이고, 누구를 위한 세상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호 표지 이야기, ‘현대차의 알박기’입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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