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타령한 UAE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이오성 기자 입력 2023. 2. 8.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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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산유국들이 새로운 먹을거리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원전 비중을 올리고 재생에너지 비중은 낮추려는 윤석열 대통령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볼 책임이 있다.
1월16일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바라카 원전 3호기 가동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랍에미리트(UAE)가 요즘처럼 한국 사회에서 뜨겁게 회자된 때가 있었던가. 그러므로 ‘2023 기후경제 전쟁’의 두 번째 이야기는 UAE에서 시작해보자. 윤석열 대통령은 UAE 방문에서 두 가지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UAE의 적은 이란”이라는 발언으로 외교 문제가 불거진 점은 잘 알려져 있다. 또 하나는 “원전(핵발전) 생태계를 빠르게 복원하겠다”라는 발언이었다.

두 발언은 공통점이 있다. ‘남의 나라 사정’을 잘 모른다는 점이다. “UAE의 적은 이란” 발언에 대해서는 이미 이란 외교부가 “이란과 UAE 관계에 대한 한국 대통령의 발언은 완전히 무지하다”라고 밝혔다.

“원전 생태계를 복원하겠다”라는 발언은 해설이 필요하다. 이 발언은 ‘아부다비 지속가능성 주간’ 기조연설에서 나왔다. 윤 대통령은 한국의 2050 탄소중립 계획을 소개하며 “양국 우정의 상징인 원전 협력에 재생에너지 등 청정에너지 협력”까지 나아가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양국 우정의 상징인 원전 협력’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UAE에 한국 최초로 원전을 수출한 것을 말한다.

윤 대통령은 “두 나라가 힘을 모아 UAE 내 추가적인 원전 협력과 제3국 공동 진출 등 확대된 성과를 창출할 때”라고 말했다. 한국이 원전 생태계를 복원할 테니, 앞으로 UAE도 원전으로 함께 먹고살자며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글쎄. UAE가 윤 대통령의 이런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이 나라의 에너지 이슈를 살펴봐야 알 수 있다.

아랍에미리트에 짓고 있는 세계 최초의 탄소 제로 도시 ‘마스다르시티’ 조감도.

UAE가 에너지 전환을 하려는 이유

화석연료가 풍부한 UAE는 놀랍게도 ‘에너지 수입국’이다. 두바이, 아부다비 같은 지역의 경제 개발과 인구 증가로 에너지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보조금 정책으로 전기료가 너무 싼 것도 원인이다. 사용량에 따라 다르지만 한국과 비교해 가정용 전기료가 적게는 10분의 1 수준이다. 두바이 에어컨은 365일, 24시간 내내 돌아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UAE는 전력의 80% 이상을 천연가스 발전에 의존하고 있는데, 천연가스는 석유나 석탄에 비해 발전량을 조절하기 쉽고, 탄소배출이 적다는 게 장점이다. 문제는 UAE의 천연가스 상당 부분이 처리 공정이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드는 사워가스(Sour Gas)라는 점이다. UAE 자체적으로는 천연가스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 인근 카타르 등에서 꾸준히 천연가스를 수입하고 있다. 그만큼 천연가스 외 다른 발전원이 필요하다. 2009년 한국의 원전 수출은 그런 배경 속에 이루어졌다. 그 전까지 UAE에 원전은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UAE가 원전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걸까. 에너지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원전 등을 통해 에너지 다변화에 나서는 것은 맞지만, 원전 산업 확대가 목표는 아니다. 오일머니로 막대한 부를 쌓으며 ‘중동의 허브’로 발돋움한 이 나라의 최대 관심사는 오히려 ‘에너지 전환’이다. 화석연료 대신 재생에너지로 에너지 공급 체계를 바꾸는 것이다. 넓은 사막, 많은 일조량 등 태양광발전에 유리한 자연조건을 갖춘 UAE로서는 해볼 만한 도전이다.

UAE 정부는 2017년 ‘에너지 전략 2050(Energy Strategy 2050)’을 발표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재생에너지 비중을 대폭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272억 달러(약 33조 5000억원) 규모의 ‘두바이 그린 펀드(Dubai Green Fund)’를 조성했다. 재생에너지 산업에 싼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2021년에는 한 발짝 더 나갔다. 중동 국가 중 최초로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재생에너지 분야에 1630억 달러(약 200조8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신재생에너지(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에 더해 목재 등을 태워 만드는 바이오매스, 수소에너지까지 합친 것) 산업 규모가 25조원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액수다.

UAE의 에너지 전환 드라이브를 상징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마스다르시티(Masdar City)’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빈살만이 짓겠다고 해 화제가 된 친환경 도시 ‘네옴시티’의 모델이 바로 마스다르시티라고 할 수 있다.

2008년부터 건설 중인 마스다르시티는 아부다비 도심에서 17㎞ 떨어진 사막에 인구 4만~5만명 규모로 들어서는 신도시다. ‘탄소, 폐기물, 내연기관 차량’이 없는 ‘3무(無) 도시’를 지향한다.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내연기관이 아닌 궤도차(PRT:Personal Rapid Transit)나 전기차만 다닐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로 계획이 늦어지면서 현재 공정률은 30%에 미치지 못하지만, 마스다르시티는 현재 진행 중이다. 한국의 삼성물산이 최근 마스다르시티에 수소와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는 양해각서를 UAE 측과 체결하기도 했다. 재생에너지 정책을 담당하는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본부도 마스다르시티 내에 있다. 윤 대통령 역시 이번 방문에서 마스다르시티를 ‘세계 최초의 탄소 제로 도시’라고 추어올렸다.

다보스포럼에서 유럽연합(EU)의 ‘그린딜 산업 계획’을 발표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UPI

다시 윤석열 대통령의 UAE 방문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대통령실은 이번 방문의 최대 성과로 UAE로부터 300억 달러(약 37조2000억원) 투자 약속을 받았다는 점을 꼽는다. 대통령실은 1월24일 순방 성과 브리핑을 통해 재차 “원전과 방산, 에너지 등 첨단기술로 수출 활로를 모색해온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과 탈석유로 새로운 계기를 모색하는 UAE의 지향점은 맞아떨어진다”라며 원전을 ‘맨 앞에’ 내세웠다.

UAE가 탄소중립을 앞당기기 위해 한국과 원전 협력을 맺기로 한 것은 맞다. 그러나 원전은 태양광, 수소, 바이오, 방산 등 UAE가 약속한 여러 투자 분야 가운데 하나다. 원전이 최우선 투자 대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눈에 띄는 건 한국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UAE 에너지인프라 장관 사이에 맺어진 ‘수소 협력 MOU(양해각서)’이다.

미래의 친환경 에너지로 떠오르는 수소에 대한 투자, 연구개발, 교역 협력 등 전 분야에 걸쳐 양국이 힘을 모으기로 했다. 앞서 삼성물산이 마스다르시티에 진출하기로 한 사업 역시 수소와 재생에너지 인프라 분야다. 이번 UAE 방문에 참여한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에 따르면 UAE 측이 관심을 보이는 협력 분야는 바이오, 인공지능, 친환경 에너지 등이다. 모두 미래산업의 먹을거리다.

윤석열 대통령 방문 직전 UAE에서는 기후위기 문제와 관련해 ‘사건’이 있었다. 올해 말 UAE에서 열릴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의장으로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ADNOC)’ 회장이 지명됐기 때문이다. COP28 의장은 매년 개최국에서 지명한다. 환경단체들은 석유회사 회장이 기후위기 회의 의장이 될 수는 없다며 일제히 비난했다. 영국 〈가디언〉은 담배회사 대표에게 금연 정책을 맡기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의장으로 지명된 술탄 알 자베르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 회장.ⓒAP Photo

석유회사 회장이 어쩌다 전 세계 기후위기 문제를 다루는 중요한 국제회의 의장으로 지명됐을까. COP28 의장으로 지명된 술탄 알 자베르 ADNOC 회장은 사실 그리 간단한 인물이 아니다. UAE 기후변화 특사를 오랫동안 지냈고, 현재 UAE 산업첨단기술부 장관이다. 마스다르시티 개발을 총괄하는 국영 재생에너지 기업 ‘마스다르’의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존 케리 미국 대통령 기후특사는 술탄 알 자베르에 대해 가스와 석유에서 탈피해 미래의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조차 친환경으로

ADNOC는 물론 악명 높은 탄소배출 기업이다. 그러나 최근 행보는 다르다. 신재생에너지, 그린수소 등에 집중하면서 세계 최대 규모 청정에너지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청정에너지와 탄소포집 및 저장(CCS) 등에 150억 달러(약 18조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그린워싱(친환경인 척 가장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기에는 행보가 매우 과감하다. ADNOC 홈페이지는 언뜻 봐서는 석유회사인지 친환경 에너지 회사인지 모를 정도다.

화석연료 국가 UAE가 이렇게 파격적인 변신을 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탄소배출로 기후위기를 일으킨 과거를 반성하려고? ‘미래’를 보기 때문이다. 유럽 최대 석유회사인 영국의 BP는 2020년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적 탄소중립 정책의 추진으로 인류의 석유 수요가 정점을 찍고 더 이상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석유 시대의 종말’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낮은 경제성장률로 인해 석유 소비가 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니까 UAE의 변신은 기후위기 시대에 사활을 건 몸부림이다. 화려했던 화석연료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그들도 절감한다. UAE뿐만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오만 등 중동의 산유국들은 그동안 석유로 벌어들인 돈을 새로운 먹을거리에 쏟아붓고 있다(〈그림〉 참조).

물론 UAE를 비롯한 중동 국가의 에너지 전환이 당장 이루어질 리는 없다. 전 세계의 석유 소비가 하루아침에 멈추지 않는 한 그들은 석유를 지렛대로 삼고 새로운 에너지 산업에 대해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생존을 위해 과감하게 변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UAE 방문을 마치고 스위스로 건너간 윤석열 대통령은 1월19일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또 원전을 강조했다. “한국에서 원자력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는 것뿐 아니라 전 세계의 탄소중립 목표 국가들과 원전 기술을 공유하고 다양한 수출과 협력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다보스포럼에서 유럽연합(EU)은 ‘그린딜 산업 계획(Green Deal Industrial Plan)’을 공개했다. 유럽을 녹색산업의 본거지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올해 10월부터 발효되는 ‘EU 탄소국경세’에 이은 강수다(〈시사IN〉 제801·802호 ‘기후위기의 무서운 얼굴, 탄소국경세가 온다’ 기사 참조). 한마디로 돈을 쏟아붓고, 규제를 풀고, 세금을 감면해가며 청정에너지 산업 등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전체 발전량에서 원전 비중을 끌어올리고 재생에너지는 낮추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원전을 국내 최대 전력원으로 만든 것이다. 해외 순방 때마다 무성한 뒷말을 낳는 윤 대통령은, 지금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볼 책임이 있다.

참고한 자료:〈2050 에너지 제국의 미래〉(비즈니스북스), ‘UAE 주요경제 동향’(주UAE 대사관, 2022.12), ‘UAE, 신규 가스전 발견으로 천연가스 자급시대 열리나’(KOTRA, 2020.4)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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