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감독 "아니 에르노의 용기에 감탄해 영화화 결정"

김정진 2023. 2. 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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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 다른 설정, 책의 의미 찾기 위한 것…베드신은 사랑이 열정 되는 과정"
"에르노 존중받으며 작업…영화 보고는 '자신을 잊을 만큼 몰두했다'고 칭찬해"
다니엘 아르비드 감독 [Gilles Pansart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정진 기자 = "책을 10여 년 전에 처음 읽었고, 오랫동안 제 호주머니 속에 간직해왔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놀라게 한 것은 아니 에르노의 용기였죠."

영화 '단순한 열정'의 다니엘 아르비드 감독은 아니 에르노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하게 된 계기에 대해 "부끄럼 없이 품위 있게 자신을 드러내는 그(아니 에르노)의 방식이 놀라웠다"며 "순수하고 명확한 스타일 역시 나를 사로잡았다"고 말했다.

영화는 대학교수이자 작가인 엘렌(레티시아 도슈 분)의 열정적인 사랑을 그린다. 엘렌은 러시아 영사관 직원으로 외국인이자 유부남인 알렉산드르(세르게이 폴루닌)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영화 '단순한 열정' [영화사 진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아르비드 감독은 원작의 시간적 배경을 옮겨 휴대폰 등 현대적 장치를 추가했다. 그 외 설정에도 일부 변화를 줬다. 소설 속 주인공은 두 아이를 이혼한 남편이 키우고 있지만, 영화 속 엘렌은 어린 아들을 홀로 양육한다.

최근 서면으로 만난 아르비드 감독은 "여러 허구의 순간을 덧붙였지만 결국 책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였다. 거리를 두기 위해서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혹은 아니 에르노가 살았던 시대에 고정되고 싶지 않았어요. 제게 이 책의 위대함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로든 각색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절대적인 사랑의 열정이라는 본질을 잃지 않는 선에서 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아이를 잊어버릴 만큼 타인 앞에서 순응하고 지워지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또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당시에 12살이었던 제 아들에게 이 역할(엘렌의 아들)을 연기시킬 만큼 밀어붙였죠."

이 작품을 작업하는 과정에서 에르노는 가끔 시나리오를 읽고 간략한 피드백을 해준 게 전부라고 했다.

"저는 혼자 작업했어요. 에르노는 제가 이 책에 주입한 모든 것을 존중하는 총명함을 지닌 사람이었죠. 제가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뒀어요. 에르노는 '영화화가 부적합한 책'으로 제가 무엇을 할지 궁금해했는데,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면서 '자신을 잊을 만큼 몰두했다'고 말해줬어요. 정말로 기뻤죠."

다만 영화 제목에 대해서는 아니 에르노의 뜻을 따랐다는 뒷이야기를 덧붙였다.

"저는 (원작과 다른 제목으로) 바꾸고 싶었지만 아니 에르노는 내게 '내 베스트 셀러예요. 내가 당신이라면 바꾸지 않겠어요'라고 말했어요. 매우 재밌고 솔직한 사람이죠."

영화 '단순한 열정' [영화사 진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영화 '단순한 열정'의 가장 큰 특징은 도발적인 베드신이다. 엘렌과 알렉산드르의 성관계 장면은 여러 차례 등장하며, 엘렌의 야릇한 상상도 그대로 담겼다. 원작 소설에는 성적 묘사가 구체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과 대조적이다.

아르비드 감독은 "에르노가 없애기를 바랐을 내밀한 순간들을 찾아내고 싶었다"면서 "이런 장면들을 통해 커지는 사랑이 열정이 되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베드신 촬영을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베드신은 제게 인상파 그림이나 조각과 비슷해요. 저는 육체의 매력과 배우들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장면을 촬영하죠. 레티시아 도슈와 세르게이 폴루닌이 많이 노력해줬죠. 우리는 마치 춤을 추는 장면처럼 작업했습니다."

두 주연 배우에 대해서는 "도슈의 용기와 폴루닌의 친절함에 감탄했다"고 했다.

동성애 혐오와 성차별적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던 폴루닌을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서는 "그 (논란이 있기) 전에 캐스팅됐다"면서 "촬영을 하는 동안 그는 여성, 동성애자, 일반적인 모든 사람을 존중했다. 내가 아는 가장 관대한 사람 중 하나다"라고 답변했다.

영화 '단순한 열정' [영화사 진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 1일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는 2020년 제작돼 이듬해 러시아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일본, 프랑스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먼저 관객을 만났다. 국내 개봉은 다른 국가에 비해 다소 늦지만, 에르노가 지난해 노벨 문학상을 받으면서 되레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아르비드 감독은 에르노의 노벨상 수상에 대해 "무척 기뻤다"면서 "그가 이 권위 있는 상을 받은 것은 모든 투쟁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줬다"고 반가움을 표했다.

또 "내 영화가 한국에 선보이기를 무척 원했었다"며 "한국 영화의 큰 팬이고,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최근 몇 년간 내가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화 중 하나였다"고 전했다.

"이 영화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사랑하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저는 에르노가 말한 것처럼 모든 사람이 열정 속에서 살기를 바라요. 그것은 사치이고, 행운입니다."

stop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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