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인생] “쑥쑥 자라는 버섯들…제 눈엔 달콤한 ‘첨밀밀’이죠”

서지민 2023. 2. 8.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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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인생] (1) 노루궁뎅이버섯 키우는 가수 원천씨
중국 출신 가수…‘첨밀밀’ 불러 유명
한·중·일 공연 다니다 하동에 반해
2007년 귀화 후 2020년부터 농사
무대활동 병행하며 영농기술 공부
“대중 앞에 서며 곪아가던 마음의 병
정성들여 키운 작물 보며 위로받아”
경남 하동에 귀농해 노루궁뎅이버섯 전문 농장을 운영하는 가수 원천씨가 수확을 앞둔 버섯을 보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하동=김원철 프리랜서 기자

농촌에서 제2의 삶을 사는 유명인이 참 많다. 연예인·운동선수뿐 아니라 정재계 인사까지 농촌으로 향한 사연은 다양하다. 본지는 그동안 스타로서 혹은 유명인으로서 세상에 널리 이름을 알렸던 이들의 농촌 인생 역정을 들어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삶의 변화로 힐링을 얻는 것은 물론, 농촌 공동체에도 활력을 불어넣는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티엔미미 니 시아오더 티엔미미∼’.

영화 <첨밀밀>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은체하며 흥얼거리는 극 중 주제곡(OST) ‘첨밀밀’이다. 원곡은 대만 가수 덩리쥔이 불렀지만 중국에선 가수 원천씨(元天·55)가 부른 버전이 더 유명하다. 먼 타지에서 온 인기 가수 원씨는 3년 전 홀연히 경남 하동에서 귀농생활을 시작했다. 무대에선 화려한 가수로, 농장에선 노루궁뎅이버섯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는 원씨를 만나봤다.

“제가 몇 살처럼 보이세요? 다들 제 나이보다 10살은 어려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노루궁뎅이버섯을 꼬박꼬박 챙겨 먹어 피부가 좋아진 덕분이죠.”

원씨를 찾아 진교면 양포리 ‘하동농부’에 방문했다. 3300㎡(1000평) 규모의 부지에 시설하우스 9개동이 줄지어 있다. 세번째 하우스 문이 열리고 해맑은 미소로 원씨가 등장했다.

중국에서 17살에 가수로 데뷔한 원천씨는 우리나라에서 ‘헤라’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얼굴이다. 한국에선 ‘헤라’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다.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 출신인 원씨는 17살이란 어린 나이에 가수로 데뷔했다. ‘첨밀밀’ 노래가 흥행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각종 드라마 주제곡을 부르며 큰 사랑을 받았다. 한국에선 ‘가리베가스’ ‘나예요’ 등의 노래로 사람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한국에 귀화한 건 2007년이에요. 그림 같은 자연경관에 반해서 하동에 정착했죠. 제가 물을 좋아하는데 이곳은 강과 바다를 모두 볼 수 있는 멋진 곳이더라고요. 노래 부를 무대를 찾아다니면서 한·중·일 안 가본 데가 없는데 어디보다도 하동이 아름다웠어요.”

원씨는 어렸을 때부터 귀농을 꿈꿨다. 도시생활만 한 탓에 한번쯤은 전원생활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원씨는 마당에 꽃과 과일나무를 심으면서 귀농생활을 시작했다. 여름만 되면 장미 100송이가 마당을 뒤덮고 포도·사과·복숭아 향이 옆집 담을 넘는다.

원씨가 농장을 소개해주겠다고 나섰다. 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뿌연 습기가 눈앞을 가린다. 손을 휘휘 저으니 그제야 노루궁뎅이버섯이 보인다. 원씨는 하우스를 가득 채운 4층짜리 선반에 빼곡히 버섯을 재배한다. 버섯을 가까이서 보니 복슬복슬 털이 나 있는 듯한 모습이 듣던 대로 노루 엉덩이를 닮았다. 둥그런 이 버섯은 두 손을 가득 채울 크기로 자랐을 때 수확해야 알맞다.

“중국 4대 진미가 곰발바닥, 상어지느러미, 제비집, 그리고 노루궁뎅이버섯이에요. 항암 효과가 있고 소화불량을 해소해주죠. 볶아 먹어도 맛있고 된장찌개에 넣어 먹으면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에요. 중국에서부터 노루궁뎅이버섯에 관심이 많아서 작목 선택은 어렵지 않았어요.”

원씨가 키운 노루궁뎅이버섯은 알아주는 인기 상품이다. 비결은 온습도를 시시각각 미세하게 조절해주는 것. 조금이라도 온도가 올라가면 하우스가 건조해져 버섯이 말라비틀어진다.

“남들은 농사에 재능이 있다며 칭찬하는데 사실은 정성을 쏟아부었죠. 농사를 시작하면서 온라인 수업을 듣고 전문 서적을 독파했어요. 전국 체험농장을 다니면서 숨은 고수들도 만났죠.”

원씨는 현재 농사일과 연예계생활을 병행하고 있다. 가수활동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농사를 지으면 전부 해소된다고 한다.

“방송활동 한 지가 벌써 40년 됐잖아요. 항상 가면을 쓰고 웃는 얼굴로 대중 앞에 서다보니까 자연스레 마음의 병이 생기더라고요. 어디 가서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기가 어려웠는데 버섯을 키우다보면 복잡한 머릿속이 차분히 정리돼요. 정성 들인 만큼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버섯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위로받아요.”

원씨의 목표는 귀농·귀촌 학교를 세우는 것이다. 자신이 겪은 농촌생활의 즐거움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다.

“다른 일도 그렇겠지만 연예인은 정말 노후 준비가 중요하거든요. 영원히 대중 앞에 서는 것은 꿈같은 일이니까요. 농사만큼 좋은 노후 준비도 없다고 생각해요. 미리미리 기술만 익혀두면 두고두고 땀 흘려 일할 기회가 보장되잖아요. 남들은 저보다 덜 실패하고 더 빨리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교육기관을 만들어서 도와주고 싶어요.” 

하동=서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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