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피그말리온과 프랑켄슈타인 사이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2023. 2. 8.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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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키보다 더 커다랗고 창백한 피부색을 가진 기계 머리들이 바닥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노진아의 인공지능 로봇을 보면서 처음에는 호기심에 다가가면서도 한참 후에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이유도 언캐니 상황 때문일까? 피조물에 피그말리온의 애정과 프랑켄슈타인의 혐오를 혼합하면 설명이 가능할 듯하다.

피그말리온과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욕망을 쏟아부을 인간 대체물을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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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아, <공조하는 기계들>, 2022, AI 로봇조각 7점, 각 140 x 140 x 180㎝. 사진제공=부산현대미술관

어른 키보다 더 커다랗고 창백한 피부색을 가진 기계 머리들이 바닥에 놓여 있다. 그 앞을 걸어가면 눈동자들도 따라 움직인다. “너 참 예쁘구나” 하고 한 머리에게 말을 붙이면 눈꺼풀을 천천히 껌벅이면서 “자주 듣는 말이에요”라고 받아치고 옆에 다른 머리들도 덩달아 중얼거린다. 이 머리들은 전통 조각과 첨단 과학을 접목해 작업했던 노진아(1975년생)의 최근 작품으로 인공지능 로봇 조각품 <공조하는 기계들>이다. 3월26일까지 부산현대미술관의 <친숙한 기이한> 전시에서 선보인다.

<친숙한 기이한>이라는 전시 제목이 암시하듯 이 작품은 친숙한 것을 대할 때의 편안함과 기이한 것을 봤을 때의 불편함을 동시에 다룬다. 몸은 없고 난데없이 잘린 머리통만 살아남은 모습이 문득 섬뜩해 보이기도 한다. 1906년에 독일의 정신과 의사 에른스트 옌치는 생기 없는 것에 영혼이 깃들었다거나 숨을 쉬는 듯 느껴질 때의 서늘한 기분을 ‘언캐니(Uncanny)’라고 불렀다. 언캐니란 낯익으면서도 낯설어서 이끌리면서도 두려운 이중적인 감정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모호한 불안감을 유발하는 언캐니 상황은 훗날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가 심층적으로 논의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노진아의 인공지능 로봇을 보면서 처음에는 호기심에 다가가면서도 한참 후에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이유도 언캐니 상황 때문일까? 피조물에 피그말리온의 애정과 프랑켄슈타인의 혐오를 혼합하면 설명이 가능할 듯하다. 피그말리온과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욕망을 쏟아부을 인간 대체물을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피그말리온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조각가인데, 자신이 만든 조각품에 사로잡힌 나머지 진짜 사람은 아예 만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는 조각품에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짓고 정말로 살아 있는 여인을 대하듯 했다. 피그말리온이 불어넣은 애정으로 갈라테이아는 생명력을 얻어 사람으로 변했다.

반면 메리 셸리가 저술한 소설 <프랑켄슈타인>(1818년)에서는 과학자인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주인공인데, 그는 생명에 관해 관심이 많아 인간을 되살리는 실험에 몰두한다. 묘지에서 모은 살과 뼈를 꿰매고 붙여 마침내 해부실에서 한 인간이 탄생하지만 빅터는 그 인간을 괴물로 여기며 혐오하게 된다. 괴물은 창조자 빅터를 원망하고, 빅터는 결국 파멸에 이른다.

최근 뜨거운 화제로 부상한 ‘챗지피티(ChatGPT·대화 생성 인공지능)’도 일종의 인간 대체물이다. 이제는 일상생활 속에서 인간과 기계가 공조하며 산다지만 생각하는 기계들로 인간세계 질서가 혼란스러워지는 듯해 싱숭생숭하기도 한다. 과연 인간으로서 진정한 내 존재 가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챗GPT에게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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