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시론] 여성 친화적 삶의 환경이 답이다

박철화 2023. 2. 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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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화 문학평론가

명절을 맞아 고향을 오가는 풍경을 보면서 떠오른 기억이다. 나는 40대의 정확히 십년을 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했다. 교수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학생들의 고민을 파악하여 학업에 전념하도록 이끄는 일이다. 그 일을 위해 내가 재직한 대학에서는 학생과 교수 모두에게 개별상담이 의무였다. 할 때는 꽤나 성가신 일이었지만 그 상담 덕에 어린 학생들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니 결국 고마운 일이었다.

상담하면서 얻었던 인상적인 깨달음 가운데 하나가 지방 소멸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대한민국의 인구 감소 문제고. 당시 면담을 한 여학생들 대부분의 미래 계획에 결혼과 출산이 들어 있지 않았다. 물론 결혼 적령기란 개념이 많이 사라지기는 했어도 그들의 미래에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는 그림이 거의 들어 있지 않다는 점은 상당히 충격이었다. 특히 지방 출신 여학생들에게는 고민이 하나 더 있었다. 졸업 뒤의 미래가 불안정하더라도 어떻게든 고향으로는 절대 돌아가지 않는 일이 그것이다. 그 친구들에게 고향 부모님 곁에 가서 살 생각이 없냐는 말은 악의적인 주문이었다. 어떻게 올라온 서울인데 자신더러 다시 내려가라 하느냐? 그 말씀만큼은 절대 하지 말아 달라고 기겁을 할 정도였다. 나 자신이 지방 출신으로 서울에 사는 사람이니 그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여학생들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격렬했다. 몸은 서울에 있어도 나는 늘 어머니 곁으로 돌아가는 귀향을 꿈꾸는데, 그들에게는 고향이 불편하고 내키지 않는 곳이다. 대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그 궁금증이 이번 명절 사람들이 오가는 풍경을 보면서 다시 살아났다.

실제로 엄청난 위기다. 대한민국의 인구는 우려를 넘어 공포의 수준으로 줄고 있다. 그 가운데서 서울과 수도권의 인구는 줄지 않는다. 그러면 결국 줄어드는 곳은 지방이다. 출산율이 전 세계 최하위니 이 현상은 갈수록 더해질 것이다. 특단의 이민 대책이 서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인구감소는 되돌릴 수가 없다. 그러면 지금처럼 수도권만 살아남고 지방은 죽어가는 현실 또한 바뀌지 않는다. 시골 빈집이 늘어나고 지방 도심은 텅 비며 지역의 대학들이 무너져 젊은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 무서운 미래를 어떻게 하나?

십여 년 전 미국의 한 언론인이 쓴 ‘남성의 종말’이란 책이 있다. 그 책은 흥미롭게도 한 챕터를 대한민국의 상황에 할애하고 있다. 현직 언론인답게 한국에 와서 직접 취재하고 글을 썼다. 핵심적 내용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된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란 것이다. 남녀 차별의 가부장제 문화를 털어내고 여성의 대학교육 비율이 남성을 앞섰으며, 아들을 특별히 우대하지 않는 부모 세대의 가치관

변화가 놀랍다는 점이다. 시작은 여기다. 여성의 지위가 올라가면서 결혼과 출산이 줄어든다. 과거에 여성이 가정 안에서 가사와 출산 및 육아를 담당했다면, 현대 여성은 자신의 자아실현과 사회적 성취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인권 차원에서 지극히 바람직한 변화다. 그런데 그로 인한 결혼 및 출산율 저하와 인구감소 피해는 왜 지방이 짊어지는 것일까?

그 답은 여학생들의 말속에 있다. 지방의 삶의 환경이 여성 친화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 및 수도권이 글로벌 표준을 따라 남녀평등과 여성의 사회활동을 받아들이고 있다면, 지방은 아직도 그 변화를 좇아가지 못한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존중이 상대적으로 낮고, 삶의 환경 자체가 여성들의 요구와는 거리가 멀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젊은 여성들은 지방을 떠난다.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쁜 권리이자 삶의 선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지방 소멸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해답은 하나다. 여성이 존중받고 그들이 자존감을 느낄 수 있는 여성 친화적 매력을 갖추는 일이다. 탁아 및 육아 시설을 잘 갖추고, 교육 환경을 개선하며, 여성 취업을 돕고 공공 치안을 강화하여 편안하게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일, 어렵지만 그것만이 지방소멸을 벗어날 해결책이다. 지자체가 해야 할 어려운 경쟁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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