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일회용 조장하는 보상금制

박상현 기자 2023. 2. 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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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가 ‘일회용컵 보증금제’ 안착을 위해 한시적 인센티브를 도입했다. 보증금 300원을 내면 반환 시 500원을 돌려준다. 차익(差益) 200원의 재원은 세금이다. 나라가 이 돈을 얹어주는 명분은 “일상 속에서 탄소중립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실천이란 ‘카페에서 플라스틱 일회용 컵에 음료를 담아 테이크 아웃 한 후 다시 반납처를 찾아가 빈 컵을 반납한 행위’를 뜻한다. 다 쓴 일회용컵을 반납하는 수고로움, 플라스틱 재활용 기여에 대해 정부가 보상하는 것이다.

1회용컵 보증금제가 세종과 제주에서 본격적으로 시행된 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민권익위원회에 마련된 매장 외 컵 반납처에서 직원들이 키오스크에 빈 1회용 빈컵을 등록, 반납하고 있다. 세종과 제주 프렌차이즈 카페에서 일회용컵에 음료를 구매할 경우 보증금 300원을 더 내고, 추후 반납할 시 이를 돌려받게 되며, 정부세종청사 주요 출입구에 매장외 컵 반납처가 설치 되었다. 2022.12.2/뉴스1

이것이 “컵 보증금 300원이 붙으면 커피 값이 올라간 것으로 보이는 착시 효과가 생겨 매출에 타격을 입는다”며 ‘컵 보증금제 보이콧’을 선언한 세종·제주 지역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을 달래기 위해 환경부가 내놓은 대책이다. 아메리카노가 1500원인 어느 점포를 기준으로 8번 방문하면 한 잔 값을 벌고도 100원이 남으니 소비자 불만도 누그러뜨린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이 정책은 가장 중요한 가치를 망각하고 있다. 바로 ‘일회용품 줄이기’라는 본래 목적이다. ‘200원 인센티브’의 맹점은 ‘커피를 밖으로 가지고 나가지 않고 매장 안에서 머그컵으로 음용한 소비자’, 즉 일회용품을 전혀 안 쓴 소비자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일회용컵 썼다가 반납한 소비자’를 환경에 더 기여한 것으로 판단해 돈까지 쥐여준다. 일회용품 사용을 조장하는 셈이다. 일회용컵을 쓰고 반납하면 친환경 활동이라는 것 자체가 ‘그린 워싱’이다.

일회용품을 줄이는 확실한 방법은 ‘안 쓰는 것’이다. 일회용컵에 보증금을 매겨 회수율을 높이고 재활용 폭을 확대할 게 아니라 애초 쓰지 않도록 유도하는 설계가 필요했다. 카페에서 쓰는 저가형 일회용컵의 재활용 효과가 얼마나 큰지도 고려해야한다. 분리배출이 강제된 생수 담아 파는 ‘투명 페트병’의 경우 원료가 좋기 때문에 재활용해도 고품질의 물건이 나온다. 하지만 값싼 일회용컵은 재활용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차라리 덜 쓰고 덜 생산하도록 하는 것이 환경에는 오히려 유리하다.

정교하지 않은 상태로 국회 문턱을 통과한 법도 문제다. 컵 보증금제가 시행될 때 카페 점주들로부터 터져나온 불만 중 하나는 배달음식과의 형평성이었다. 코로나 겪으며 플라스틱 발생량을 폭발적으로 늘린 주범은 배달음식인데 왜 카페만 괴롭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자원재활용법에선 일회용컵을 다룰 뿐, 배달음식은 대상에서 빠져있기 때문에 환경부도 카페만 건드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지금이라도 컵 보증금제도를 ‘일회용품 줄이기’라는 큰 틀 안으로 귀속시켜 정책을 재설계해야 할 때다. 소상공인의 반발, 소비자의 불만을 잠재우려할 때마다 등장하는 ‘현금 살포형 인센티브’ 역시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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