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신장개업 공화춘… 짜장면에 담은 화교의 삶

윤상진 기자 2023. 2. 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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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김보섭 ‘한국의 화교’ 펴내
40여년간 인천 중국인 거주지 기록
중화요릿집에는 화교의 역사 담겨
2012년 인천 중국집 ‘신일반점’ 주방 풍경. /눈빛출판사

짜장면은 한때 그 유래를 두고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중국 산둥성의 ‘작장면(炸醬麵)’에서 기원해 한국식으로 변주된 음식이라는 것이 다수설이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를 따라 들어온 중국 상인들이 인천에 정착했고, 1948년 인천에서 화교(華僑) 왕송산이 춘장을 첨가한 짜장면을 개발하며 우리가 오늘날 즐겨 먹는 짜장면이 탄생했다는 것. 짜장면은 1907년 화교 우희광이 설립한 인천의 고급 음식점 ‘공화춘’에서 판매되며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짜장면 그릇에 근대의 한∙중 관계 역사가 담겨있는 셈이다.

사진가 김보섭은 1980년대부터 기록한 인천의 중국인 집단 거주지 청관(淸館)의 생활상을 신간 사진집 ‘한국의 화교’(눈빛)에 담아냈다. 그는 40여 년간 자신의 고향 인천을 무대로 활동해 온 사진가. 화교들을 렌즈에 담은 것은 1883년 제물포항 개항 이후 인천에 터를 잡은 화교들이 시간이 지나며 인천 역사의 한 부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공화춘·빈해원·중화루… 사진집엔 짜장면의 성지(聖地)와도 같은 중화요릿집과 화교들의 ‘또 다른 고향’ 인천 청관 거리가 변화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화교들이 개업한 중화요릿집엔 화교들의 부침 또한 서려 있다. 김 작가가 화교들의 모습을 기록하기 시작한 1980년대는 많은 화교들이 한국을 떠나며 인천 청관이 쇠락한 시기. 1970년대부터 이어진 짜장면 가격 통제 정책 여파로 공화춘을 비롯한 많은 화교 음식점들이 문을 닫았고, 한국을 떠나는 화교의 수가 증가했던 때였다. 김보섭의 작품엔 화교 가족의 단란함과 쓸쓸함이 공존한다. 우리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화교들의 삶을 전시한 사진집에서, 작가는 이들이 우리가 어깨를 맞대고 살아야 할 이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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