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평 대기실에 아픈 아이들 600명 몰려들었다… 위기의 소아과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2023. 2. 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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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중의 아웃룩] 소아 응급 의료 현장 가보니

지난 5일 일요일 오전 11시 서울 구로구에 있는 우리아이들병원 소아과 외래. 아기를 둘러업은 엄마 아빠로 20여 평 대기실이 꽉 찼다. 아침 9시부터 시작된 진료에 몰려온 환자들로, 2시간 만에 진료 대기 번호가 300번을 넘겼다. 앉을 자리가 없어 엄마 아빠 절반이 아기를 가슴에 안고 어르며 서 있다. 문을 연 4개 진료실마다 보호자 한 명이 아기를 붙잡아 앉아 있고, 간호진 두 명이 아기에 달라붙은 채 진찰을 하고 있다. 열 나는 아기는 중이염 합병 여부를 보기 위해 귀 고막 상태를 꼭 들여다봐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기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지난 5일 일요일 오전 서울 구로구에 있는 우리아이들병원 소아과 외래에 몰려든 아기 환자와 부모들이 대기실을 꽉 채우고 있다. 휴일에 문을 연 소아 응급실이 사라지면서 서울 밖에서도 아기 환자들이 온다./김철중 기자

무너진 휴일 소아 진료 인프라

인천서 온 세 살 아기는 열이 나고, 콧물이 누렇고, 숨소리가 거칠었다. 기관지염이 상당히 진행되어 바로 입원하라는 조치를 받았다. 엄마에게 “왜 인천서 여기까지 왔느냐”고 묻자, “휴일에 아기 봐 줄 소아과가 없어서 왔다”고 답했다. 경기도 부천, 광명, 서울 양천구, 관악구, 동작구 등에서도 아기 환자들이 몰려왔다. 그 시간대에 세 살 아이가 열이 38.5도이고, 기침이 심하게 난다며 인근 병원 응급실 2곳에 전화해보니, 휴일에는 소아과 의사가 없어 진료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이날 소아과 외래에는 남매 아이 둘이 모두 열 나서 오고, 쌍둥이가 같은 옷을 입고 기침하며 나란히 들어오고, 어린이집에 독감이 발생했다고 동네 아이들 여럿이 오고, 설사가 며칠째 계속된다고 오고, 변이 안 나와 배 아프다는 아이가 엄마 손에 이끌려 왔다. 엄마와 아기가 같이 열 나서 아기 진료 후 엄마도 진료받는 경우도 흔했다. 전체 진료 중 10% 이상은 아기와 같이 사는 어른 진료로, 소아과가 내과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전날 토요일에 이어 600여 명의 아기가 진료를 받았다.

최근에는 휴일 진료임에도 중증 환자가 상당수 온다. 잦은 구토가 있어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횡격막 탈장 진단되어 급히 대학병원 응급센터로 이송된 아기, 대장에 대변이 꽉 차서 관장 치료를 받은 다섯 살 어린이, 13세 초등학교 여학생이 뛰다가 가슴 통증이 생겨 왔는데 심장 기형이 발견된 경우가 있었다. 다섯 살 남자 아이가 가슴 통증을 보였는데, 심전도를 찍어본 결과 부정맥으로 진단되기도 했다. 책상에서 떨어져 두개골이 골절된 여덟 살 아이도 있고, 열 나고 처진 8개월 아기가 뒤늦게 코로나 감염으로 확진되어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옮겨간 사례도 있었다. 남성우 우리아이들병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휴일 외래에 중한 환자가 많다는 것은 소아 응급실 문 닫은 곳이 많아 갈 곳이 없는 데다, 평일에도 소아과 진료 접근성이 취약하다는 의미”라며 “소아 감염성 질환은 전염이 빠르고 증세가 급속히 나빠질 수 있기에 조기 진료가 필요한데, 요즘은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하다”고 말했다.

갈 곳 없는 소아 응급 환자들

일요일인 5일 오후 서울대 어린이병원 소아전문 응급센터, 중증 환자를 처치하는 12개 병상이 다 찼다. 도봉구에서 저혈당 쇼크 증세로 실려온 두 살 아기는 혈당 수치가 16이었다. 의식을 잃을 정도로, 긴급히 혈당 올리는 주사제가 투여됐다. 경기도 동두천에서 열 나고 토하는 다섯 살 아이도 왔다. 아이가 구슬을 삼켰다며 멀리 충남에서도 왔다. 응급으로 소아 내시경을 하여 구슬을 꺼내줄 병원이 그 지역에는 없다고 해서 서울까지 온 것이다. 6세 아이가 놀다가 이마가 찢어졌는데, 소아 환자 수면 마취를 하며 봉합술을 해줄 병원이 없다고 해서 의정부에서 왔다. 김도균 소아응급의학과 교수는 “경기도는 물론 전라도에서 구급차를 몇 시간 타고 오는 아기 환자도 수두룩하다”며 “응급센터 전담 소아과 의사가 태부족한 데다 소아 응급 환자를 다루는 정형외과, 외과, 신경외과 의사들도 줄어든 결과”라고 말했다.

지난 5일 일요일 오전 서울 구로구에 있는 우리아이들병원 소아과 외래에 몰려든 아기 환자와 부모들이 대기실을 꽉 채우고 있다. /김철중 기자

금요일인 3일 오후 소아과 전문의 한 명이 근무하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응급센터에 한 시간 반 동안 몰려온 환자 목록을 보면 전쟁터가 따로 없다. 장이 꼬인 장중첩증 아기 두 명, 천식 증세로 질식 위험이 있는 아이, 혈변과 황달로 염증 수치가 정상보다 100배 높은 아이, 구토로 식사를 못 해 저혈당 쇼크에 빠진 아기 등이 줄줄이 왔다. 그 와중에 119 구급대에서 경련이 지속된 아이를 태우고 가고 있다며 연락이 오고, 담도염 증세가 심한 아기가 외래를 받다가 응급센터로 내려왔다. 외부 병원 CT상 뇌정맥 혈전이 있는 아기는 접수 대기하다 진료를 못 받고 돌아갔다. 윤서희 소아응급의학과 교수는 “환자가 너무 많아 매일 119에 이송 자제 요청을 보내는데도 갈 곳이 없다며 환자가 몰려온다”며 “사고가 날까봐 진료에 나서기가 두렵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당장 소아응급 전담 의사 늘려야

소아 의료 전문가들은 응급과 휴일 진료 인프라가 붕괴 직전이라고 말한다. 최근 수년간 소아과 의사 지원과 배출이 크게 줄고, 기존 소아과 전문의 상당수가 진료 현장을 떠났다. 그 여파가 의료진 확보가 힘든 응급실과 휴일 진료에 가장 먼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전국에 소아 전문 응급의료센터는 8곳뿐이다. 경기 북부, 전북 전남, 부산, 충북, 강원 등에는 없다. 인구 1000만 서울에 24시간 소아 응급실은 여는 곳은 14개 대학병원 중 6곳이다. 토, 일, 야간 외래 진료하는 소아병원도 2~3곳뿐이다. 전국 대학병원 중 36%만 24시간 소아 응급실을 운영한다. 특히 지방은 야간 응급실 진료가 거의 다 사라졌다.

중증 소아 응급 환자가 발생했을 때, 입원이나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주는 시스템은 없는 것과 같다. 환자 측이 각자도생해야 한다. 소아과 의사가 되겠다고 지원하는 전공의는 해마다 줄어, 2019년 모집 정원(약 200명)의 80%에서 2023년에는 25%로 줄었다. 비슷한 기간 신생아 수 감소 폭(2018년 33만명~2021년 26만명)보다 훨씬 가파르다. 이제 한 해 50명 정도의 소아과 의사만 나올 판이다.

소아청소년과학회에서는 소아 의료 재건을 위해 정부에 입원 및 응급센터 전담 전문의 고용 지원, 적자에 시달리는 소아 입원 진료비 개선, 연령별, 중증도별 소아 진찰료 인상 조정, 신생아실과 중환자실을 전문의 중심 진료로 전환토록 수가 개선, 아동-청소년 건강정책국 신설 등을 제안하고 있다. 윤서희 소아응급의학과 교수는 “붕괴 직전의 소아 응급의료 현장에 전담 전문의가 신속하게 투입될 수 있도록 인력 확보 지원만큼은 당장 이뤄져야 한다”며 “안 그러면 소아 응급 의료 대란이 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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