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 고난과 저항의 한국 경제 2023년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경제이론으로 노벨상까지 수상한 거장 로버트 루카스 교수가 더 이상 경기변동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선언하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2003년 전미경제학회에서의 일이었다. 누군가 거시경제학의 역사를 케인스 혁명과 보수주의 반혁명의 교체로 각색한다면, 아마도 그 선언의 순간이야말로 반혁명의 승리가 공표되는 하이라이트 장면이 될 만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선언이었는지 드러나는 데에는 채 5년도 걸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 뒤로는 거꾸로 거의 매년 ‘경제위기’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들려온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위기로 표출된 우리 시대의 체제적 모순을 고민하는 작금의 경제위기 논의가 루카스 교수의 그것처럼 어리석은 빈말일 리는 없어 보인다. 새해 한국 민중 앞에 닥친 고난의 시간 때문에도 그렇다.
세계경제든 국내경제든 2023년 전망에 있어 낙관론이 설 자리는 협소해지고 있다. 본격적인 불황을 내다보는 데에 이견은 별로 없다. 기저에 깔린 장기 정체의 추세적 영향에 최근 인플레이션이 야기한 순환변동 요인이 더해지고 그 위로 정책실패까지 겹치면서 최악의 경제 부진을 벗어나기 힘들어질 공산이 크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경기하강 폭과 브릭스(BRICs) 국가들의 회복 속도가 세계경제 성장경로를 좌우할 것으로 점친다.
최근 인플레이션이 공급 측 요인에 기인하는 점에서 물가 압력이 2023년 내내 해소되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서방의 러시아 경제 제재는 최근 인플레이션에 완전히 새로운 차원을 더했다. 그것은 중·미 갈등과 함께 북대서양과 아시아태평양 양쪽에서 군사동맹과 방위협력 체계의 재구조화를 촉진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군사적 균형이 바뀌면서 기존에 빙하가 녹듯 천천히 진행되던 세계경제질서의 변화도 가속되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지정학적 긴장이 언제든 불거질 수 있는 점은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금리 인상으로 대응한다지만 그 결과는 실물경제는 침체시키면서 물가는 못 잡는 최악의 것이 되고 있다. 고금리 때문에 남유럽 국채위기가 재연되면 국제금융시장의 후폭풍이 한국도 덮쳐올지 모른다.
한국경제는 작년보다 올해 훨씬 더 나쁠 것으로 전망된다. 금리 인상의 정책 시차를 감안하면 상반기보다 하반기가 더 나쁠 것이다. 화두는 민간부채다. 과잉부채 상황에서 경기침체는 신용위험을 증폭시킨다. 그러나 정부는 소극적인 대책으로 포괄적인 부담 해소에 실패하고 있다. 자영업자 대출 중에 한계차주 몫은 저축은행과 카드사를 중심으로 작년 3분기 말 100조원에 육박한 상태다. 고금리와 부동산 경착륙을 계기로 부채위기의 뇌관이 폭발할 가능성은 그래서 제기된다. 해법은 채무재조정이 기본이지만 자영업 매출을 늘려 소득 기반 회복을 돕는 정책도 중요하다. 적어도 지금처럼 유통 재벌을 지원하는 방향이어서는 안 된다.
무역수지도 걱정이다. 이미 작년에 사상 최대 무역적자를 기록했지만 그 기록은 올해 다시 깨질 듯하다. 에너지 등의 국내 도입 가격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 예상되는데 중국이 공급망 자립화에 나선 효과는 점점 더 커져만 가는 탓이다. 그런 점에서도 윤석열 정부가 미국의 중국 배제에 선제적으로 ‘올인’하는 정책은 경제 현실에 맞지 않다. 지금은 중국으로의 수출에 의존해온 2000년대 이후 남한 독점자본의 핵심 축적 전략이 막을 내려가는 산업 전환의 국면이다. 윤석열 정부의 선택은 미국 중심 공급망에 종속적으로 편입되는 것을 전제로 총자본의 활로를 찾아보려는 것이지만, 개별 자본의 이해관계가 총자본의 그것과 일치하라는 법은 없다. 정부가 당장 감세와 민영화, 노동시간 및 임금체계 유연화의 보상을 자본에 반대급부로 제공하려는 맥락이다. 하지만 재편될 공급체계에서 어떤 축적 전략이 가능할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그런 점에서 한국자본주의는 어느 때보다도 지금이 위기다.
경기침체로 실질임금의 회복도 어려워 저임금 노동자들의 처지는 당분간 개선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특히 이윤 기대가 비관적으로 조정되는 가운데 고용을 털어내려는 자본의 욕구가 분출하면서 올해 한국경제는 하반기로 갈수록 독점자본이 주도하는 구조조정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
권력기관이 총동원되는 노동조합 탄압과 공안정국 조성, 사회정책의 전반적인 후퇴, 향후 구조조정과 함께 강제될 노동 유연화 등은 민중운동과 정치권력 간에 긴장을 고조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한국 민중에게 저항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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