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藥의 악순환
노인 환자들을 진료하다 보면 늘 진료 시간이 부족하게 마련이다. 노년(老年)에 접어든 환자들은 지병으로 복용하는 약도 많고 이것들이 서로 영향을 끼치며 복잡하게 꼬여있는 경우가 많다. 꼼꼼히 증상을 물어 그 꼬인 매듭을 탁 풀었을 때 환자가 빠르게 건강을 되찾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의사로서 큰 보람이다.
노년 환자들은 병의 종류뿐 아니라 몸의 특성도 젊은이와 달라 개별 질병만 보고서 치료하다가는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약이 약을 부르는 이른바 ‘처방 연쇄’ 현상이다. 예를 들어 소화불량으로 첫 번째 의사에게 소화제를 받고, 그 약으로 인해 발생한 인지(認知) 부작용으로 두 번째 의사에게 치매약을 받고, 다시 그 부작용으로 요실금을 경험해 세 번째 의사에게 방광약을 받는 식이다. 이 악(惡)순환으로 잘 걷던 노인 환자가 불과 몇 달 만에 침대에 몸져 눕는 와상(臥牀) 상태가 되기도 한다. 개별 진료엔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도, 여생을 누군가의 간병을 받으며 지내야 하는 것이다.
복잡하게 꼬인 노년 환자의 의학적·기능적 문제를 정리하고 풀어내는 일은 해외에선 노인과 의사의 주요 업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일을 하는 의사가 드물다. 복잡도가 높은 ‘어르신 환자’들을 30~40분씩 진료해도 진료수가는 3분 진료와 다르지 않다. 이는 노인 진료 시스템을 질병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꾸려 노력하는 해외의 흐름과도 반대다.
최근 이 문제를 해소해보려고, 차분하게 15분 진료를 할 수 있는 보건복지부의 이른바 ‘심층진찰’ 시범사업에 신청했다. 하지만, 노년 환자들은 심층진찰이 필요한 ‘중증난치질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중증난치질환의 정의는 ‘치료법은 있으나 완치가 어렵고,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며,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 사망 또는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여 진단 및 치료에 드는 사회·경제적 부담이 상당한 질환’이다. 약과 질병, 노쇠가 복잡하게 꼬여 처방 연쇄를 경험하며 기능이 나빠질 수 있는 노인 환자야말로 정확히 이 정의에 부합하는데, 정해놓은 목록에 진단명으로서 존재하지 않기에 심층진찰의 대상이 아니라는 논리다. 질병 또는 진단명만 보는 우물 안에 들어가 있는 개구리의 눈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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