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의 책상물림] 어찌할까, 어찌할까
공자는 말 잘하는 사람을 싫어했다. 속은 강하고 굳세면서 겉은 질박하고 어눌한 ‘강의목눌(剛毅木訥)’이 이상적인 인격에 가깝다고 했다. 말은 더듬거려도 행동은 재빠르고자 하는 사람을 높게 평가하고, 화려한 언변을 갖추고 보기 좋은 표정을 잘 짓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이 드물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자가 이렇게 경계한 것은, 실천보다 말을 앞세우고 속을 채우기도 전에 겉부터 꾸미려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공자가 궁극적으로 높인 것은 속과 겉이 모두 훌륭한 사람이다. 내실도 알차게 갖추고 언변과 매너도 세련된 ‘문질빈빈(文質彬彬)’이야말로 공자가 지향한 경지였다. 실제로 공자 자신은 어눌하기는커녕 매우 적절하고 아름다운 말을 구사하는 사람이었고, 필요에 따라 언어의 묘미를 제대로 발휘하고 즐길 줄도 알았다.
“어찌할까, 어찌할까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나도 어찌할 수 없다”는 공자의 말 역시, ‘여지하(如之何)’라는 말의 의도적인 반복을 통해서 곱씹을 만한 의미를 효과적으로 담은 사례다. 이미 주어진 답을 따르기만 하거나 그마저도 포기해 버린다면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고 물을 것도 없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묻는 절실함과 답답함이 있어야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말이다. 꽉 막혀 소통이 안 되는 비(否)괘를 아름답게 할 수 있는 길은 “망하지 않을까, 망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살얼음을 걷듯 전전긍긍하는 마음 자세가 “어찌할까, 어찌할까”이다.
누가 가운데라고 알려준 곳을 꽉 붙잡기만 한다고 중용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수시로 변하는 가운데를 찾아 끊임없이 묻고 섬세하게 움직이는 상태가 중용이다. 파르르 떨리는 나침반 바늘 끝과 같은 긴장 위에 올라서서 모든 게 아무 문제 없이 잘될 것처럼 미사여구를 늘어놓기는 어렵다. 이것이 말 잘하는 것을 경계해야 할 진정한 이유다. 그럴듯한 해답을 보기 좋게 제시하기에는 우리 앞의 상황이 너무도 복잡하고 쉽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어찌할까, 어찌할까 물음을 끝까지 놓지 않는 것 말고는, 사방으로 막힌 벽을 깨고 새로운 길로 나아갈 방도가 없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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