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2∙8독립선언 104주년
오전부터 뭉게구름이 몰려 들었다. 바람도 을씨년스러웠다. 한 청년의 일기에 남겨진 그날의 날씨다. 1918년 2월8일 일본 도쿄에서였다.
그즈음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의미 있는 정강(政綱)을 발표했다. 민족자결주의. 민족의 문제는 민족 스스로 해결하자는 주창이었다. 일본에 유학 중이던 조선 청년들이 도쿄로 모여 들었던 시점도 바로 그때였다. 춘원 이광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앞서 그는 1년 전 조선에서 현상윤, 최린 등과 독립운동을 논의했다. 같은 해 11월 도쿄로 돌아와 와세다대에 다니고 있던 최팔용과 조선 유학생들을 규합해 독립선언을 기획한다. 그리고 마침내 2·8독립선언서가 탄생됐다. 3개월 남짓 걸렸다. 골자는 민족자결주의였다. 이광수는 2·8독립선언서를 한국어와 영어 등 두 가지 언어로 작성했다.
그날 오전 각국 대사관과 일본 국회의원, 조선총독부, 일본 여러 지역 신문사에도 해당 선언문이 발송됐다. 이날 오후 2시 재일본 도쿄 조선YMCA 강당에선 조선유학생 학우회 총회 개최가 예정됐다. 회의가 열리고 난 뒤 최팔용에 의해 조선청년 독립단을 결성하려는 긴급 동의도 나왔다.
선언문은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백관수가 독립선언문을 낭독하자마자 대회장을 감시하던 일제 경찰들이 들이닥쳐 조선 유학생 60여명을 체포했고 강제로 해산시켰다.주모자였던 최팔용과 백관수 등을 비롯해 8명이 기소됐다. 조선 유학생들은 2월12일과 28일에도 도쿄 히비야공원에서 선언문을 낭독하고 거리행진을 시도했다.
그 후 이 사건은 현해탄 건너 조선으로 전파됐고 3·1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꼭 104년 전 오늘 아침이었다. 세월은 무심하게 흘러가도 역사의 흔적은 뚜렷하다. 잊어서는 안 되는 서사이기 때문이다.
허행윤 기자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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