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율의 세상 돋보기] 보조금 요지경

경기일보 2023. 2. 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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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국정감사 때 경기도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경기도가 2018, 2019년 2년간 아태평화교류협회에 지급한 보조금은 20억8천만원에 달한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김웅 국회의원이 보조금 지급과 관련한 정산보고서 등을 요구한 것에 대해 경기도는 “공개될 경우 도(道)의 향후 남북협력사업 추진과 남북관계 신뢰 구축에 중대한 장애요인이 될 수 있으며, 보조사업자인 민간단체의 소통창구와 노하우 및 경영·영업상의 기밀 등이 포함됐다”는 이유로 자료 제출을 사실상 거부했다.

경기도 스스로 이 사업이 ‘경기도 남북교류협력기금 등을 재원으로 추진한 것’임을 밝혀 동 기금의 운용 등에 관해 규제하고 있는 경기도 남북교류협력의 증진에 관한 조례를 살펴봤다. 조례 제6조(보고 등)에서는 ‘기금을 지원받은 기관·단체는 그 사업계획 및 집행 결과를 도지사에게 보고’하도록 돼 있다. 이에 따르면 경기도청 내 여러 직원이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을 국회에 왜 제출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이유가 드러나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작년 11월14일자 CBS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급된 보조금 중 ‘8억원은 현금과 수표로 출금돼 원래 지급 용도와 전혀 다르게 쓰인 것으로 보고’ ‘일부는 아태협 직원과 가족 등을 거쳐 나노스(현 SBW생명과학) 주식을 매수하기도 한 것으로’ ‘일부 수표는 추적 결과 룸살롱에서 사용됐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기가 막힌 일이다. 경기도가 밝힌 ‘보조사업자인 민간단체의 소통창구’는 룸살롱이고 ‘노하우 및 경영·영업상의 기밀 등’은 주식 매매에 관한 정보였을까? 아태평화교류협회 안부수 회장은 북한 고위층에 50만달러(약 6억6천만원)를 불법으로 송금하고 아태협 자금 13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작년 11월 구속됐다.

또 있다. 2012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과 관련해 보조금 5억원을 수령했다. 이에 대응되는 정대협 자부담액은 19억4천만원이었다. 모 의원실이 청구해 입수한 후 기자를 통해 확보한 결과보고서에는 보조금 수령과 그에 따른 통장 지출액이 나올 뿐 자부담 지출액을 입증할 수 있는 통장 지출 증빙 등은 찾아볼 수 없다. 오랜 기간 보조금 집행 등에 관한 감사업무를 수행해 본 필자로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내심 추가 자료가 올 것을 기다렸으나 묵묵부답이었고, 이후 국정감사가 열릴 때마다 이와 관련해 추가 검토해야 한다는 말을 여러 경로로 했음에도 어떤 자료도 받을 수 없었다.

작년 12월28일 대통령실 뉴스룸 브리핑에 따르면 “지난 7년(2016~2022년)간 민간단체에 지급한 정부 보조금은 총 31조4천억원 규모이며 2016년 3조5천600억원에서 2조원 증가해 2022년 5조4천500억원으로 추산되며, 지난 정부에서 연평균 4천억원 정도가 증가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지원한 보조금액, 각 시·도교육청을 통해 민간에 지원한 금액 그리고 각 공공기관이 민간단체에 지원한 금액은 빠져 있다고 한다.

지원된 비영리 민간단체 수가 2021년 2만7천215개였다고 하니 단체별로 2억원 안팎이 지급된 셈이다. 덧붙여 여러 부정 수급 사례를 지적했다.

김경율 회계사·경제민주주의21 공동대표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제26조의10(보조사업자 등의 정보공시)에 따르면 1천만원 이상 보조금을 수령한 자는 수입·지출 내역과 정산보고서 등을 ‘보조금통합관리망’에 공시하게 돼 있다. 나아가 3억원 이상인 경우는 회계법인 등으로부터 정산보고서의 적정성에 대해 검증받아야 한다.

사실 보조금의 적정 지출에 대한 감시망(?)은 이게 다가 아니다. 당연히 정산보고 혹은 검증보고를 받은 후 교부 기관에서 살펴볼 것이고, 국회 국정 감사 때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보조금 정산에 대한 경험이 많은 필자로서는 보조금이 줄줄 새는 이유는 적어도 제도가 불비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벌써 제도 탓하는 목소리는 들린다) 글의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이유는 경기도청 또는 여성가족부 어딘가의 책꽂이에 꽂혀 있을 정산보고서를, 마음 먹으면 여러 방식으로 반나절 이내로 전달할 수 있는 자료를 뻗대고 제출을 거부하는 일부 인사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보조금이라면 관련 업계에서는 ‘눈 먼 돈’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이 말씀에 괜히 얼굴 붉히지 않았으면 한다. 모두 다 아는 얘기를 두고 아닌 척하는 것도 한두 번으로 족하다. 매해 닥치는 증세·감세 논란에 대해서도 이제는 한 번쯤 이 같은 식으로 새 나가는 돈에 대해 냉정히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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