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회지도층이 주로 쓰는 묵비권/힘없는 국민엔 저것도 특권이다

경기일보 입력 2023. 2. 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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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법무장관 재판에서 짚고 갈 부분이 있다.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이뤄졌던 극단적 묵비권이다. 수사 단계에서 진술거부권(묵비권)을 사용했다. 항변 빠진 검찰의 주장이 그대로 법원에 넘어갔다. 조 전 장관의 묵비권은 법정으로까지 이어졌다. 대단히 드문 경우였다. 그가 든 이유는 형사소송법상의 ‘친족에 대한 증언거부권’이다. 배우자·자녀가 피고인·사건 관계인이므로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 질문 때마다 ‘형소법 148조에 따르겠다’며 묵비권을 행사했다. 이른바 7대 스펙의 허위 여부를 따지는 재판이었다. 일부 범죄 행위에는 본인게 연루돼 있었다. 그런데도 묵비권을 행사했다. 법조인들에조차 생소했던 ‘가족 관계 진술 거부권’이었다. 결과는 어땠나. 그 재판에서 정경심 피고인은 징역 4년을 선고 받았다. 조 전 장관도 결국 징역 2년의 실형이었다. 전문가적 소송 기술이 무색해진 엄한 판결이다.

유명했던 묵비권 사건들이 있다. 조 전 장관의 묵비권이 그런 예였고, 앞서 한명숙 전 총리 사건도 그랬다. 한 전 총리는 검찰에서 시종 묵비권을 행사했다. 첫 번째 사건과 두 번째 사건이 있다. 첫 번째 사건은 무죄가 선고됐고, 두 번째 사건은 실형이 선고됐다. ‘양심의 법정에서 나는 무죄다’라는 말을 남겼지만 실형이란 결과는 영원히 남았다. 최근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주목 받는다. 진술서로 대체하는 ‘변형된 묵비권’이다.

한 전 총리, 조 전 장관, 그리고 이 대표의 공통점은 진보 진영이라는 점이다. 보수 진영 인사에서는 좀처럼 목격되지 않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이후 검찰에 출두했다. 구속 기소가 뻔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치열히 진술했고, 장시간 수사기록을 고쳤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변호인을 통해 일일이 항변했다. 진보 진영 인사들의 묵비권 선호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 묵비권이 재판에 주는 영향은 있는 것일가. 일반인들은 궁금하다.

선호하는 이유라면 이걸 것이다. 민주화운동 시절부터 몸에 익은 경험칙이 있다. 사법부, 특히 보수 정권의 사법부에 대한 근원적 불신이다. 구속·기소를 정해 놓고 수사를 한다고 믿는다. 그러니 애써 진술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또 다른 이유라면 유리한 결과를 여론 대결로 풀려는 시도다. 사법부보다는 여론으로 심판 받는 게 낫다고 판단한다. 대중 선동은 독재 시절부터 진보 진영의 무기였다. 그 무기로 끌고 가려는 것이다.

묵비권을 탓할 건 아니다. 법이 정한 피의자 권리다. 다만, 지도층의 묵비권은 달리 보일 수 있음이다. 일반인의 그것과 지도자들의 그것이 현장에서는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썼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다. 검찰·경찰 조서가 여전히 재판의 절대 증거다. 뒤늦게 항변을 늘어놨다가는 ‘왜 검찰에서 입 닫고 있었냐’며 질책 받기 딱이다. 결국 힘없는 국민 눈에는 정치인들의 묵비권도 흉내 낼 수 없는 특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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