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기 칼럼] 지하철 무임승차로 눈치보는 노인들

기자 2023. 2. 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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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노인은 가난하다. 전체 노인 중 소득수준이 중위소득의 50% 미만 비율인 빈곤율은 2020년 38.9%였다. 노인 빈곤율은 2011년 이후 줄곧 40%대 초중반이었다. 그나마 개선돼 처음 40% 밑으로 내려간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3.5%(2019년 기준)의 약 3배로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급증하는 노인 셋 중 한 명은 빈곤이라는 절벽에 맞닥뜨리는 게 현실이다.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58년 개띠’가 올해부터 만 65세 이상인 노인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보통 1955~1963년에 태어난 이들을 가리킨다. 출생인구가 급증해 100만명가량인 58년생은 베이비붐 세대의 대표적인 연령대다. 노인 인구는 내년에 1000만명을 넘어서고, 내후년에는 전체 인구의 20%를 돌파한다. 총인구는 2020년 5183만6233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이미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통계청 예측을 보면 2070년에는 1418만명(27.4%) 급감한 3765만5867명에 그치게 된다. 반면 노인 인구는 같은 기간 두 배가량인 1747만여명으로 불어난다. 인구의 46.4%를 65세 이상이 차지한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58년생이 노인에 진입한 올해 초부터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논쟁이 뜨겁다. 그들은 고교 진학 때 본고사가 폐지돼 ‘뺑뺑이’로 학교를 배정받았고, 성년이 돼서는 유신정권 몰락과 5공화국 탄생 등 격변을 지켜봤다. 1980년대 경제호황을 이끌었지만, 40대에 들어서자마자 외환위기를 맞아 등떠밀려 조기퇴직당한 세대다. 2년 차이로 정년연장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58년 개띠가 변화의 소용돌이에 또 휩쓸리고 있다.

지하철은 노인에게 큰 복지 서비스다. 웬만한 곳은 다 연결되고, 쾌적하고 편리한 데다 무료다. 노인들이 지하철을 타고 서류나 작은 화물을 배달하는 실버택배도 있다. 서울시내 요금은 거리에 따라 7000~1만1000원이고, 서울 중구에서 천안까지는 3만원이다. 요금의 70%가 배달원 몫이다. 노인 30여명이 일한다는 한 실버택배 회사 대표는 “한 달에 200만원 정도 버는 이도 있다”고 전했다.

노인 무임승차에 대한 논란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는데, 서울지하철 적자가 계속 불어났기 때문이다.

서울교통공사 재무제표를 보면 2017~2019년 당기순손실이 각각 5000억원대에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는 해마다 1조원 안팎으로 급증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노인) 무임승차 등 때문에 지하철 적자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2021년 서울지하철을 공짜로 이용한 승객이 2억574만명으로 전체의 15.9%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이들로부터 받지 않은 요금은 2784억원이다. 무임승차의 83%는 노인이었다.

서울지하철 노인 무임승차는 2019년 22만명을 웃돌았으나 2020년 16만여명, 2021년 17만여명으로 감소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이동이 줄어든 영향으로 보인다. 그런데 서울지하철 적자는 노인 무임승차가 줄어들기 시작한 2020년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전체 적자에서 무임승차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7~2019년에는 60%대에서 2020년 이후는 20%대로 낮아졌다. 무임승차를 없앤다고 해서 그만큼 요금수입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가 경영실패를 덮기 위해 적자의 원인을 노인 무임승차로 돌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무임승차를 핑계삼기 전에 경영에 어떤 잘못이 있었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물론 고령화 시대를 맞아 노인 연령기준을 높이는 문제는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됐다. 실버택배 회사 대표조차 “실버택배원 연령을 당초 65세에서 75세까지로 했었는데, 요즘에는 80세 넘은 노인도 일 잘한다. 70세 정도로 올려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교통연구원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하철 무임승차는 노인의 활동을 증가시켜 자살 및 우울증, 교통사고 등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의료비와 기초생활급여 예산 등을 절감시키고, 관광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이들 편익을 합한 경제적 효과는 2012년 기준 3360억원으로, 무임승차 비용보다 훨씬 크다. 적어도 취약계층에는 무임승차 혜택이 사라지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사회는 과거의 협력 시스템을 벗어나 각자도생을 모색하는 길로 빠져들고 있다. 스스로 살길을 찾으라며 노인들까지 내몰아서는 안 된다.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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